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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사키와 트럼프의 부자 -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말하는 부의 공식
로버트 기요사키 외 지음, 김재영 외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로버트 기요사키. 아마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나열한다면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시리즈는 꼭 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책, 출판 시장의 지형도를 재테크/자기계발로 변화시킨 책,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한번에 각인시킨 책 등, 이 시리즈가 가지는 가치는 영어표현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책 자체만 놓고 보자면, 기요사키의 충고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귤이 강남에 가면 탱자가 되듯이 미국에서의 방식으로 한국에서 성공하라는 무리인데다가, 가난한 직장이었던 시절에도 정말 건방진 생각이지만, 기요사키의 방식은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부자아빠와의 경험담이 아닌 구체적인 조언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많았다. 오히려 이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을 읽고 얻은 것이 컸으니까.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기요사키에 대한 난감함은 어떤 재테크 책을 읽어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물론 실천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지금도 신뢰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상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절반정도는 믿지는 셈 치고 그의 생각대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지금보더도 더 어리석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가치관이던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의 상황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요사키의 방식을 따를 게 아니라 기요사키의 통찰력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게 재구성하고 실천했어야 하는데, 천둥벌거숭이처럼 잘난척을 했던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솔직히 가쉽거리 란에만 오르내리던 부동산 투기꾼인 줄 알았다. 게다가 늘 회자되는 파산위기에 대한 기사와 이혼과 재혼에 대한 기사만 읽은 나로써는 그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백수초기에 도서관에서 뒹굴던 그의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위대한 자수성가인 중에 한 명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특유의 거만함이나 자아도취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사업가적 기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로써는 이런 자신만만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의 이야기가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업을 할 용기가 생겼거나 노력을 했다는 것은 없지만-이러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최소한 리더쉽이나 통찰력에서 배운 점은 많았다. <어프랜티스>는 보지 못했지만, 의도한 것이던 치밀한 계산의 결과던 간에 자신의 경험을 노련하게 노출하는 모습만으로도 책 속에서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들이 뭉쳐서 만든 책 역시 이 두 사람의 장단점이 고루 섞였다. 어떤 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면에서는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뮤추얼 펀드를 회피하고 부동산에 투자해라 등의 구체적인 방안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요사키의 경우, 교육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신에 관여한 상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노출하고 있다.(물론 그걸 찾아보는 실천의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같다. 모든 사람이 기요사키+도널드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체성을 제거하고 나면, 담론차원에서의 원칙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그리고 자기계발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쓴 모든 책의 엑기스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은 생략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의 통찰력은 정말 냉정하다. 국가가 개인을 돌볼 수 없다라는 말. 누구나 알지만, '설마 그렇게 되겠어?'하면서 막연히 회피하는 문제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부자가 되라고 권한다. 이제 '잘난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못난 놈'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내 주위의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심리적으로 쪼그라든 상당히 공감했다.(더 늦기전에 정신 차려야 하는데...) 뒤로 갈수록 몰입의 강도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도 정글터에 던져진 무언가처럼 부의 축적을 '생존의 논리'로만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전세계의 탐욕과 무능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나? 정글에서 살아남으라고 서바이벌 기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정글을 바꿀 것을 호소할 수는 없는 것인가?(그런 아버지를 둔 기요사키는 특히 냉소적이다.) 하다못해 탐욕의 화신인 '해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도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칼 포퍼의 충실한 제자답게 개인적 기부를 통해 정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데 말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파이가 급속도로 늘어나지 않는한 많은 사람이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막무가내로 부자가 되라고 권유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성공 혹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공이나 부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자명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과 성향, 가치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추신) 이 책 못지 않게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 권하고 싶은 책은 부자아빠 시리즈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이다. 기요사키를 비판한 통찰력은 부자아빠에 대한 맹신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한국형 부자'의 시초인 세이노의 통찰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사실 배울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하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