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1
브라이언 프리맨 지음, 이승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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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뷔작이며, 2006년 MWA 최우수신인상 후보작이기도 하다.(수상은 다른 작품이 했다.) <이데아의 동굴> 대타로 읽게 되었다. 아파서...

길지 않은 기간에 두 건의 10대 가출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추적하는 조나단 스트라이드는 사건을 해결해야한다는 중압감-이전 사건이 미제로 종결되었기에...-과 개인적인 상실감 속에서 용의자를 잡고 재판으로 끌어낸다. 그러나 재판에서 새로운 증거들이 등장하고, 용의자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3년이 지난다. 3년 후에 진실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분명한 건 이 작가가 30년간 읽은 추리소설의 양이 적지는 않았을거라는 점이다. 미국 하드보일드의 전통이 살아 있다. 고독한 늑대, 부르조아들의 가식적인 삶, 추악한 변호사, 그리고 10대의 팜프파탈까지...소재부터 주제까지 모두 하드보일드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리고 데뷔작치고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 짧지 않은 분량 속에서 법의학적 스릴러, 변호사들의 공방전, 경찰소설 등 영미권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하위장르를 한 권에 녹여 놓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다양한 재료들에 비해 레시피가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 독창성과 장인적 세련됨 모두 아쉽다. 시놉시스를 짠 후에, 작품에 필요한 내용에 대한 조사는 충실한 것 같은데, 막상 조사한 내용들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고 해야할까. 눈에 거슬리는 설정이 많았다. 특히 캐릭터.

주인공 조나단 스트라이드, 외로운 늑대. 외로운 경찰 캐릭터는 진부하다. 해리 보슈만큼의 독자성을 가졌으면 하는 했다. 하드보일드의 재미는 주인공의 개성이 좌우한다고 믿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심심하다. 아내와의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지만, 별로 영향받지 않고, 미결사건으로 종결된 사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것 같은데,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의 강인한 의지로까지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의 주위를 맴도는 외로운 여자들도 진부하고. 그들이 얽히는 방식은 진부하다기 보다는 어설프다. 첫번째의 만남은 나중에야 이해가 갔지만, 차라리 따로 떨어트렸으면 하는 바램이었고, 두번째의 만남은 성애묘사 이외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만남이었다. 둘을 엮어주고 싶다면 말미에 암시만 주고 끝냈어야 한다.(물론 신인작가가 흥행에 실패하면 다음 작품이 없겠지만...) 그렇게 욕지거리를 듣는 미키 스필레인이나 <아이거 빙벽>이 훨씬 낫다.

그리고 등장하는 구성인물들이 작가의 노력에 비해 덜 소비된다는 느낌도 든다. 스트라이드의 고통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신디'나 학교 상담교사로 나오는 '낸시 카버'는 그렇게 의미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3년 뒤에 등장하는 경찰 트리오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작품에서 낭비되는 경향이 있다. 별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에 맞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를 가져가던가. 아니면 등장인물의 수를 줄였어야 했다. 그 중간에서 멈춘 것이 아쉽다. 데뷔작이 가지는 의욕과잉이라고 할까? 의욕을 실력이 메꾸어주지 못한 케이스라고 해야하나.

여기까지 쓰고 나니 데뷔작에게 가혹한 평가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신인다운 패기나 장인적 세밀함 중에 하나만 만족시켰더라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텐데. 무난히 읽기는 좋은데,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찾기에는 심심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헐리우드 스릴러'류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에 냉담한 한국독자들을 사로잡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다음 작품에서는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추신)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소설의 제목을 잘못 지은 사례라고 본다. 원제는 Immoral인데, 직역하면 '부도덕한' 정도가 될 것이다. 의역하면 '음란한' 정도가 될 것이고. 작품의 번역제목인 <진실게임>이 암시하듯이 숨겨진 진실이 무엇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트릭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거니와,-어설픈 구성이 궁금증을 떨어트리는 약점도 있다.-정작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진실 속에 가려진 등장인물의 추악하고 음란한 '부도덕성'이었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면서 작품 자체의 이미지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이 작품에는 '게임'이라는 용어 속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을 속여서 이기겠다는 경쟁심 따위는 없다. 원제의 의미를 살린 제목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추악한 진실>이니 <사라진 진실> 류의...이건 너무 진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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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난하죠. 전 차라리 씨에쓰아이였었다면 했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5-03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si이였으면 아마 3년 뒤는 없었겠죠. ^^ 증거를 다 찾아냈을테니...

비연 2006-05-0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읽어봐야 하나 안 읽어봐야 하나..고민하게 하는 리뷰입니다..ㅋㅋ^^;;;

상복의랑데뷰 2006-05-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면서 리뷰를 쓰다 보니 ^^;;;
 
4일간의 기적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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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차라리 지금부터 읽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렇게 기분이 처져있을 때는 이 작품처럼 상투적이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좋은 테라피였을 텐데...게다가 나는 당연히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읽었기 때문에-'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의 제1회 대상 수상작이라는 홍보문구는 오히려 이 작품의 장점을 깎아먹는 홍보문구이다. (신인 작가가) (정도의 필력을 보여준) 미스터리(한 작가의 글재주) 대단하다는 뜻인가?-몰입은 커녕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도대체 '어떤 트릭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으니, 가슴이 울려야할 판국에, 머리가 쥐가 나 버란 상황이 되었다. 이 정도의 트릭을 설명하려면 교코쿠도가 와야하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 포함해서 상투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별 무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뛰어나다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작가가 음악과 잡지라는 분야에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피아니스트라는 약간은 희소성이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깊은 음악적 소양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풀어내는 기본적인 필력과 구성은 탄탄한 편이다. 데뷔작답게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한 것이 성공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다만, 비슷한 이야기를 다뤘다고 할 수 있는 <레인 맨>의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 내지는 <말아톤>의 김미숙, 조승우와 같은 반짝반짝하는 재기는 없는 편이다. 그게 아쉽다. 주요 등장인물 3명은, 각각의 환경이 특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신인다운 신선함이나 혹은 기성작가의 노련함을 보이지 못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세 명을 엮은 것도 불만족스러웠고, 4일간의 제한된 시간 치고는 이야기 전개가 느슨한 편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복받쳐 올라오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밀어올리는 힘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절정부분의 감동이 그냥저냥 지나쳐버린다.

신인작가-물론 연배를 보면 신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상투적이더라도 강추 한 방을 때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인데, 그런 면에서 아쉽다. 전부 '우'를 받은 학생 같다고 해야할까. 평균 80점이라도, 100점과 60점을 받은 학생이 80점과 80점을 받은 학생보다 더 인상에 남는 것처럼...

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 읽으시면 의외로 공감하실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타이밍과 방향이 너무 달랐던 안타까운 책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보기는 찝찝한 그런 책이다. 가뜩이나 죽음이 두려운데...

추신) 김난주씨의 성의없어 보이는 해설은 이 책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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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1 밀리언셀러 클럽 19
엘러리 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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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콜렉터>의 제프리 디버가 엮은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중 1권입니다. 원제는 입니다. 몇 작품이 원저자의 요청으로 수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권으로 나온 것은 아쉽습니다. 두 권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데...

(당연하게도 1권만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이 단편집을 읽고 나서는 약간 당혹스러웠습니다. 수록된 단편들의 수준이 나뻐서가 아닙니다. 작품별로 편차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선정이라고 보여집니다. 작가들도 충분히 좋습니다. A.K. 그린에서부터 최근의 막스 알란 콜린스까지 범위가 넓어서 좋았구요. 디버의 오지랍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구요. (그러면서 본인의 단편을 슬쩍 넣는 센스란!)

그런데, 제목에 적합한 선정인가? 라는 점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책 뒤편에 실린 서스펜스의 정의대로라면 1권에서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사라진 13쪽> 같은 고전물은 예외로 치더라도-전 이 단편이 별로였기 때문에 예외라고 보지 않습니다만-<배트맨의 조력자>나 <힐러리 여사>는 서스펜스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꼭, 이 단편들이 아니더라도 1권에 수록된 단편들의 분위기는 서스펜스의 긴박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느슨한 느낌입니다. 다른 단편들도 그렇게 긴장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더군요. 제 취향상, 웬만큼 쎄지 않고는 긴박감을 못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전 여기 묶인 단편들의 특징이자 장점은 모호한, 그래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후반부의 단편들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불만스러웠습니다. 음식점에서 코스요리를 먹다가 중간에 일어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왜 이런식으로 끝내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 결말의 뒷맛으로 인해 머릿속에 잔상도 많이 남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 점이 이 단편들의 장점이자 가치인 듯 싶습니다.

무리하게 추측해 보자면, 디버가 사용한 Suspence라는 용어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넒은 의미의 '추리소설'을 가리키고 있는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의 선정이나, 작품들의 고른 품질을 돌이켜 볼 때 전혀 엉뚱한 생각은 아니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만, 2,3권을 읽을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해야겠죠? 어쩌면, 제 개인적인 느낌이 마이너한 느낌이라 대다수의 추리소설애호가분들은 이 단편집에서 서스펜스를 느끼실 수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종의 정중동서스펜스라고 해야할까요?

결론삼아 말씀드리자면, 제목에 구애받지 않고 읽으신다면 충분한 재미를, 만약에 제목에서 연상되는 일반적인 의미의 서스펜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칭찬에 비해, 별점 평가가 낮은 이유도 제가 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뷰를 쓰기 위해서긴 하지만, 다시 읽을수록 호감도는 높아지네요.

불평하나만 하자면 명색이 서스펜스 걸작선인데, 서스펜스의 대가인 윌리엄 아이리시의 단편이 없다는 건 팬 입장에서 서운하군요. <밤 그리고 두려움>의 <담배>같은 단편만 되도 실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는데. 그리고 리뷰를 쓰려고 서문을 다시 한번 읽었는데, 결말부분이 좀 의아하네요. 

끝으로 지난 100년간 쓰여진 서스펜스 단편의 핵심 작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이 책에 실린 작가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 엘러리 퀸으로 알려진 사촌지간 맨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더네이, 비평가이자 평론가인 에드워드 호치는 평생 단편만 써 온 미국 내 극소수의 작가에 속한다. 

EQ가 평생 단편만 썼다는 번역도 웃기지만, 왜 이 말만 하고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라고 서둘러 끝맺음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원문이 그런 건지 번역 과정에서의 실수인지는 모르겠네요. 이어지는 내용이 혹시 18금이었나?

엉뚱한 소리는 이만하고, 각 단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황태자 인형의 모험, 엘러리 퀸
황태자 인형을 둘러싼 대도의 예고와 이를 막기 위한 퀸 부자의 분투를 다룬 단편입니다. 엘러리 퀸의 장점 중에 하나는 등장인물에 대한 꼼꼼한 설정이라고 믿는 독자 중에 하나인데, 서두에 인형 소유주의 일생을 서술하는 장면은 역시 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필로 이루어진 인물화는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난리법석 속에서 느껴지는 왁자지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좋았구요, 나중에 약간 거드름 피우면서 사건을 설명하는 퀸의 모습도 귀엽습니다. 

2. 사라진 13쪽, 안나 카타린 그린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소개를 보니 '추리소설의 어머니'라고 하는군요. 역사상의 의미를 제하고 나면 그렇게까지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문의 비밀이 버무려진 고딕호러풍의 단편입니다만, 잘 읽히지가 않더군요. 내용 전개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래도 고전기의 작품이니 심심한 맛도 있구요. 특히 후반부의 비밀이 폭로되는 부분에서 정보가 너무 부실합니다. 같은 내용을 포가 썼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아, 생각해 보니 비슷한 작품도 있긴 하군요. 역설적으로 포의 천재성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3. 숨겨 갖고 들어가다, 리사 스코토라인
아직 아버지는 아닙니다만, 이 작품이 이 단편집의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검사보 톰 모란의 눈물겨운 분투기가 이어집니다. 예전 코엔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을 보는 듯한 블랙 코메디가 압권입니다. 유머와 적절한 해피앤딩까지 모든 것을 갖춘 대단한 단편입니다. 물론 저는 아직 총각이라 블랙 코메디로 읽히지만, 육아를 경험하신 분들께는 진정한 서스펜스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히 일독을 권하는 단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번역 제목은 어색합니다. 4자 대구를 맞추기 위해 '숨겨 갖고 들어가다.'라는 제목을 쓴 것 같은데,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없었을까요? 숨긴 채로 들어가다. 숨겨 가지고 들어가다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4. 배트맨의 협력자들, 로렌스 블록
작품의 발표 연도는 <800만 가지의 죽음>과 <백정들의 미사>의 중간 쯤에 있는 단편이지만, 읽으면서 초기작의 느낌이 강하더군요. 경찰에서 쫓겨난 뒤 사립탐정을 갓 시작했지만, 일거리가 없어서, 철거용역반 노릇을 하는 스커더라고 할까요? 느릿느릿하게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스커더의 심리묘사와 미국의 밀입국자들에 대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후자는 약간 인종차별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지만 말이죠. 단편 자체는 마음에 드는데, 서스펜스라는 느낌은 약합니다. 아마 스커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인상적이지만, 사전 정보가 없는 분들께는 심심한 단편일 수도 있습니다. 

5. 주말 여행객, 제프리 디버
편집자인 제프리 디버의 작품입니다. 영국추리작가협회 단편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후반부의 결말을 일치감치 예측해버려서 약간 김이 새버렸습니다. 하지만 강도와 인질범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중동의 심리변화와 대화는 인상적입니다. 

6. 그 여자는 죽었어, 프레드릭 브라운
<교환 살인>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브라운의 단편입니다. SF작가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직 SF단편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몰락했지만 재기를 노리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진행과정은 상투적이지만, 프레드릭 브라운의 필력이 심심함을 달래줍니다. 주인공의 독백이 맛깔스럽게 진행되죠. 이 작품이 전 의외로 마음에 들었는데요. 결말 때문입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할까요? 결말 부분의 모호함과 뒷맛만 놓고 보자면 이 단편집 중에서 최고라고 봅니다. 저만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해피앤딩일까요? 아니면 언해피앤딩일까요? 이상하게 다양한 생각이 오고가더군요.

그리고 이 작품은 <옥스퍼드 운하사건>이랑 제목이 같더군요. 그냥 신기했습니다.

7. 원칙의 문제, 맥스 알란 콜린스
딱, 제 취향입니다. 아마도 다른 분들에게는 범작이었겠지만,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전에 나혁진 님이 말씀하신대로 <신 시티>스타일입니다. 선악구분이 모호한 등장인물, 은퇴한 청부업자, 변태납치범, 납치된 부자집 아가씨. 그리고 노골적인 폭력. 실제로도 대부인 미키 스필레인의 추종자인 콜린스의 진가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CSI는 모르겠지만, <딕 트레이시> 소설판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이 소개가 안된 작가인데, 앞으로 소개가 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8. 힐러리 여사, 안윌렘 반 드 비터링
힐러리 여사는 힐러리 클린턴을 이야기하는 것 같더군요. 파푸아뉴기니 추장의 입을 빌려, 미국의 제국주의를 점잖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대의에는 공감하는데, 진행과정이 심심했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현실인식에는 공감하는 바입니다. 예전 <암호 미스테리 걸작선>에 수록된 오 헨리의 단편을 연상케 하는 단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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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이런 단편집은 몇편에 만족하게 되더라구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수에는 불만족 하게 되지 않나요? ㅋㅋ 너무 노골적인 야유인가...^^

oldhand 2006-04-2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툼한 부피에 비하면 단편 8개의 압박이.. OTL

상복의랑데뷰 2006-04-2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길사에서 나온 단편집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울 따름입니다.
 

WBC 이후 야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야구를 주제로 한 추리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그 완결편입니다. 사놓고 잊고 있었다가 나혁진님이 일깨워 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하베이 블리스버그라는 유대인 야구선수를 탐정으로 내세운 추리소설이고, MWA 1985년 신인작입니다. 작가는 Richard Dean Rosen 이구요. MWA에서 검색해보니 데뷔작 이후 어떠한 작품도 에드거 상 후보조차 오른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정상에서 출발해서 내려온'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이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야구미스테리를 몇 권 더 쓴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하베이 블리스버그는 신생팀 프로비덴스 주엘즈(Jewels)의 중견수이자 팀타선의 핵인 선수입니다. 그는 은퇴하면 남북전쟁사를 연구하겠다는 학구파 유태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교수'입니다.) 그는 자신의 룸메이트였던 구원투수 루디 파스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루디 파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독자적으로 수사를 벌이다가 수사를 중지할 것을 종용하는 경고장을 받게 되는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현직 야구선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이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평이 꽤 갈릴 것 같습니다.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전에 읽었던 다른 야구 미스터리들-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와 로버트 B 파커의 <최후의 도박>은 야구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사립탐정물이라서 야구장의 열기나 야구 자체를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떠나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주인공도 현직 야구선수고, 사건역시 정규시즌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주인공의 수사활동은 메이저리거들의 일상과 함께 흘러갑니다. 메이저리거들의 일상, 중계하듯이 보여지는 경기장 안밖의 풍경을 따라가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부동산 운운하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은퇴를 걱정하는 모습, 카드를 수집하고 팬레터를 보내는 팬들.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락커룸 분위기...일어 중역의 느낌이 나는 엉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년 꼴찌 팀이었던 삼미를 응원했던 저로써는 AL 동부리그에서 현 템파베이처럼 신생팀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엘즈(팀 이름이 보석들이라니!!!!) 팀의 모습도 공감이 갔구요. 중간에 라인업이 한 번 등장하는데 타율을 보고 있자니 안구에 습기가....전체적으로 물타선이라 타율이 가장 좋은 주인공이 2번을 치는 사태가 발생하더군요. DH가 2할 5푼 대를 치고 있으니 말 다했죠.(혹시 최희섭? ^^) 그렇다고 투수진이 좋은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데뷔작에서는 보통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택하거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상당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묘사도 리얼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살해동기에 공감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 살인자에게 쉽게 공감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이 작품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군요. 범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저도 살인충동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살인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의외로 그럴 듯 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메이져리그 팀의-계속 언급하게 되는 팀이군요 --;;;-트레이드 소식과 맞물려서 비즈니스 세계의 비정함-이 작품에서는 비열함이지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미국의 진정한 No. 1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습니다. 폴 오스터도 보스턴의 광팬이라고 알려져 있고, 파커의 작품에서는 아예 레드삭스가 주된 이야깃거리이며, 하다못해 이 작품에서도 레드삭스 이야기는 '살인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소재 중에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레드삭스에서 데뷔했다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볼티모어로 이적했다가 Expansion Draft로 신생팀에 와서 꽃을 피운 케이스입니다. 작품 중간에는 보스턴에서 나간 것을 아쉬워하는 팬도 등장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 팀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라는 궁금즘도 생겼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주인공은 나이든 카를로스 벨트란 정도 될 듯 하네요. 85년 작품이니 당시 작가가 모델로 삼은 선수도 있었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더니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네요. 

다만 대부분의 데뷔작이 그렇듯이 문체가 약간 거칠고, 뒤로 갈수록 산만해지다가 일거에 해결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은 과도한 영웅주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부분의 감동이 더 어필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부분은 보스턴의 골수 팬들 아니면 동감하기 힘드실 내용일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이 보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야구의 팬으로써 즐겁게 읽었습니다. 구하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읽어보실만 합니다. 

추신1) 프로비덴스라는 지명이 계속 익숙해서 생각해 봤더니, 아마 베이브 루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프로데뷔를 볼티모어에서 했는데, 첫 해에 자리를 못잡고, 일종의 마이너리그 격인 팀으로 가게되는 데 팀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그 마이너리그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헷갈리네요. 계몽사 문고로 20년전에 읽었던 내용이라 정확성은 고사하고, 사실여부도 모르겠구요.  

추신2) 한 권이 더 있는데 필요하신 분께 공급가에 팔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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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습니다. 이 책 에드거상 후보였나 수상작인가 그렇죠.

상복의랑데뷰 2006-03-2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쓰여있네요 ^^;
 
계간 미스터리 2006.봄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번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계간 미스테리 봄호가 왔다. 이번에는 내가 아는 분들의 글들이 다수 실려서 기대를 했다. 낯뜨거운 아부지만, 읽고나니 그만한 지식이나 글재주가 없는 나로써는 그저 부럽기만 했다. 물론 그분들이 그 동안 쌓은 내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지만... 

읽고 나서 기획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다. 왜 여기는 기획자의 역할이 눈에 안들어오는 걸까? 에드 멕베인의 가상인터뷰는 지난 호에 실리고, 특집은 이번 호에 실린 아이러니는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 계간지는 기획자의 숨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글을 청탁하고 게재해주는 투명한 공간의 느낌만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고급평론가들이 다수 등장하지 않는 한 콘텐츠의 빈약함이 바뀔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 늘 투덜대는 것 같아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그나마 이번 호는, 늘 신뢰할 수 있는 필자분들과 새롭게 참여하신 분들의 글이 좋아서 덜 투덜거릴 수 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지난 호에 지적했던 문제들은 대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그나마,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이 신선해서 좋았다. 대부분 기존 장르의 모방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일반 작가들의 치기어린 엉터리 작품보다는 거칠어도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 더 낫다고 본다.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린다.

다음 호에서는 더 만족스러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2006년 올해의 추리소설은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큰 마음 먹고 구입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늘 평이 좋았던 우리나라추리소설도 조금씩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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