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이후 야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야구를 주제로 한 추리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그 완결편입니다. 사놓고 잊고 있었다가 나혁진님이 일깨워 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하베이 블리스버그라는 유대인 야구선수를 탐정으로 내세운 추리소설이고, MWA 1985년 신인작입니다. 작가는 Richard Dean Rosen 이구요. MWA에서 검색해보니 데뷔작 이후 어떠한 작품도 에드거 상 후보조차 오른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정상에서 출발해서 내려온'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이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야구미스테리를 몇 권 더 쓴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하베이 블리스버그는 신생팀 프로비덴스 주엘즈(Jewels)의 중견수이자 팀타선의 핵인 선수입니다. 그는 은퇴하면 남북전쟁사를 연구하겠다는 학구파 유태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교수'입니다.) 그는 자신의 룸메이트였던 구원투수 루디 파스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루디 파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독자적으로 수사를 벌이다가 수사를 중지할 것을 종용하는 경고장을 받게 되는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현직 야구선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이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평이 꽤 갈릴 것 같습니다.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전에 읽었던 다른 야구 미스터리들-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와 로버트 B 파커의 <최후의 도박>은 야구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사립탐정물이라서 야구장의 열기나 야구 자체를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떠나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주인공도 현직 야구선수고, 사건역시 정규시즌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주인공의 수사활동은 메이저리거들의 일상과 함께 흘러갑니다. 메이저리거들의 일상, 중계하듯이 보여지는 경기장 안밖의 풍경을 따라가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부동산 운운하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은퇴를 걱정하는 모습, 카드를 수집하고 팬레터를 보내는 팬들.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락커룸 분위기...일어 중역의 느낌이 나는 엉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년 꼴찌 팀이었던 삼미를 응원했던 저로써는 AL 동부리그에서 현 템파베이처럼 신생팀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엘즈(팀 이름이 보석들이라니!!!!) 팀의 모습도 공감이 갔구요. 중간에 라인업이 한 번 등장하는데 타율을 보고 있자니 안구에 습기가....전체적으로 물타선이라 타율이 가장 좋은 주인공이 2번을 치는 사태가 발생하더군요. DH가 2할 5푼 대를 치고 있으니 말 다했죠.(혹시 최희섭? ^^) 그렇다고 투수진이 좋은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데뷔작에서는 보통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택하거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상당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묘사도 리얼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살해동기에 공감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 살인자에게 쉽게 공감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이 작품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군요. 범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저도 살인충동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살인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의외로 그럴 듯 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메이져리그 팀의-계속 언급하게 되는 팀이군요 --;;;-트레이드 소식과 맞물려서 비즈니스 세계의 비정함-이 작품에서는 비열함이지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미국의 진정한 No. 1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습니다. 폴 오스터도 보스턴의 광팬이라고 알려져 있고, 파커의 작품에서는 아예 레드삭스가 주된 이야깃거리이며, 하다못해 이 작품에서도 레드삭스 이야기는 '살인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소재 중에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레드삭스에서 데뷔했다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볼티모어로 이적했다가 Expansion Draft로 신생팀에 와서 꽃을 피운 케이스입니다. 작품 중간에는 보스턴에서 나간 것을 아쉬워하는 팬도 등장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 팀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라는 궁금즘도 생겼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주인공은 나이든 카를로스 벨트란 정도 될 듯 하네요. 85년 작품이니 당시 작가가 모델로 삼은 선수도 있었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더니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네요. 

다만 대부분의 데뷔작이 그렇듯이 문체가 약간 거칠고, 뒤로 갈수록 산만해지다가 일거에 해결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은 과도한 영웅주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부분의 감동이 더 어필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부분은 보스턴의 골수 팬들 아니면 동감하기 힘드실 내용일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이 보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야구의 팬으로써 즐겁게 읽었습니다. 구하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읽어보실만 합니다. 

추신1) 프로비덴스라는 지명이 계속 익숙해서 생각해 봤더니, 아마 베이브 루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프로데뷔를 볼티모어에서 했는데, 첫 해에 자리를 못잡고, 일종의 마이너리그 격인 팀으로 가게되는 데 팀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그 마이너리그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헷갈리네요. 계몽사 문고로 20년전에 읽었던 내용이라 정확성은 고사하고, 사실여부도 모르겠구요.  

추신2) 한 권이 더 있는데 필요하신 분께 공급가에 팔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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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습니다. 이 책 에드거상 후보였나 수상작인가 그렇죠.

상복의랑데뷰 2006-03-2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쓰여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