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혜윤PD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에야 꽤 열심히 독서기록장을 써 두지만, 말 그대로 요즘 와서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마지막 장을 덮기가 무섭게 잊기 시작했다. 아주 인상적인 몇 권이 아니고서야 망각의 바다로 사라지는 것도 운명이지 뇌까리면서(별로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혜윤의 이름 석 자를 마음 속 어딘가에 강하게 새기게 한 책은 지금도 알고 있다. 



이 책이 좋아서, 정말 너무 좋아서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 할 진리들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실패해서 밤새 이불을 걷어찬 경험이 없을 사람은 없을 듯하니까, 내가 왜 말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책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리고 아래에서 언급할 다른 책은 또 왜 그렇게 좋았는지를 곰곰 생각하다가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자기 목소리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자아가 비대하게 튀어나온 책은 껄끄럽고 불편하다. 꼭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땐 네에네에 하고 읽지만, 뭐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 그런데 정혜윤의 책들은 희한케도 그런 톤이 없다. 그렇다고 글쓴이의 정체성이 없는가하면 그런 건 아닌데, 그림자처럼 행간에서 조용히 문장과 문장을 바느질해 이어붙이는 정도의 존재감만 있다. 줄여 말하자면 겸손하다. 그건 아마 그녀의 직업과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거다. 정혜윤은 기본적으로 타인과 그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거기서 중요한 것을 건져 보기좋게 손질할 줄 아는 사람인 까닭에 정혜윤의 글들은 조용해도 힘이 있다. 정혜윤이 담은 타인들의 목소리가 책을 떠받치는 뿌리여서. 


질문은 같아도 대답은 다양하더라는 말이 아니야. 질문은 같아도 예상을 벗어나는 말은 늘 있었어. 우리의 타인에 대한 상상력은 늘 우리를 배신해. 타인은 우리의 상상력보다 클 수 있어. 나는 예측할 수 없음에 열광하게 되었어. -23쪽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지. 프로그램으로 기획력으로 청취율로. 아마 다들 사정이 비슷할 거야. 각종 인사고과 평가가 있고 각종 자격증이 요구되고. 이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을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지. 그러나 증명이 우리를 끝없이 강박적으로 만든다면 반대로 우리를 끝없이 풍요롭게 만드는 세계가 있어. 그건 '발견'이야.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할 때가 있어. -53~54쪽


우리는 어떤 가능성의 사람들일까?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누구일 수 있었을까? 혹시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의 모차르트일 수도 있었을까? 기회를 갖지 못한 셰익스피어나 링컨일 수도 있었을까? 확실한 것은 말이야.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천국과도 같이 대단한 일일 거란 거야. 누군가에게 천국 한 채를 지어주는 거지-68쪽


그분은 이렇게 물었어요. '정 피디, 브람스 좋아해요? 브람스 교향곡 4번 4악장. 변주만 서른 번에 이르는 4악장. 파사칼리아의 무한한 변주. 정 피디는 정 피디 인생의 중요한 모티프를 서른 번 변주할 수 있나요?' -182쪽


우울증을 이겨낸 두 번쨰 방법은 동화책을 읽는 거예요. 어려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어린애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엄마의 마음이 다시 찾아와요. 동화책 읽을 때 제 자식 잘못되라고 읽어주는 사람 없잖아요. 제 자식 잘되길 바라는 사람은 자기 삶도 대충 살지 않잖아요. 내가 이러면 안 되잖아 생각하잖아요. 피곤해도 힘내잖아요. 그 마음이 살아나더라고요. -293쪽



이슬아는 그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이 책의 어떤 페이지를 통째로 외웠다고 말했다. 그 부분이 너무 좋아서(그게 뭔지는 당연히 책에 나온다) 그렇게 했다고 한다. 사실「마술 라디오」에도 비슷한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프롤로그 부분에 나오기는 한다. 

정혜윤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핵심 낱말들이 있는데, 정혜윤이 살아내는 낱말들의 목록의 최상위단에 올라있는 게 틀림없다. 그 중 다른 하나는 확장이다. 인간을 한 두마디의 낱말로 축소시키지 말자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음을 말한다.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한다. 타인도 나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열심히 설득하려 한다.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말자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타인과 타인에게 존재하는 나를 잊지 말자고.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때 내 마음속의 생각은 우리가 변화해야만 그날이 온다는 것이었어. 우리가 변화해야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뀐다는 말이었어. 이것이 희망을 이 사이에 넣어둔다는 말이야. 희망은 별처럼 먼 곳에 있지만 그 별을 입으로 옮겨놓는 거야.

하지만 글이 여기서 종료된 것은 아니야. 아직도 할 말이 많아. 죽은 사람과 죽은 사람을 연결하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했던 존 버거는 내게 영감을 줬어. 나는 '살고 싶어 하는 자'와 '살고 싶어 하는 자'를 연결하는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어. 우리는 아직은 오지 않은 아름다운 미래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24쪽


해마다 우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지.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런 결단으로 다시 듣고 보고 행해보자는 말이야. '다시'라는 말 아름답지? 아름다움의 역사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만한 단어야. 우린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거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힘 있게. 우리가 맺는 관계가 바뀐다면, 혹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꾼다면, 세상도 바뀌어, 이건 진리야.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눈을 뜨게 하는 관계로, 서로 쉼터가 되는관계로, 서로 안고 있는, 서로 팔베개를 해주는 관계로 존재한다면 그 미래는단지 미래뿐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까지도 바꿔놓을 거야.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미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이정표가 될 거야. -30쪽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에게는 수많은 눈이 있다.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다'라고 고쳐도 됩니다. 수많은 눈이 있다는 것은 근심 걱정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진짜 외로운 것은 나 말고 달리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나처럼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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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맞을텐데-


책을 읽는 내내 존재하지 않는 설계도를 그려가며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서는 도무지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윤회랄지... 인생2막이랄지... 아무튼 아주 비슷한 느낌으로 읽히는 책들인데 난해하기로는 앳킨슨의 책이 더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적어도 2권을 덮고 나니 느낌표 백 개가 머리 위로 우르르 쏟아지는 듯했는데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고 나서도 예,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바가? 싶어... 추운날 쨍하게 시린 딱 그 느낌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해설집이라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안 그래도 달리는 머리가 고생했으니 보상차원에서 나도 청소년책 읽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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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괜찮은 게 맞을까.

나는 종종 눈에 통증을 느끼는데, 지나치게 눈이 피곤하고 힘든데...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해보면 '실로 아무 문제 없으십니다'라는 이야기만 듣고 온다. 스크린을 보는 시간을 극도로 줄여서 하루에 한 시간을 채 볼까말까 싶은 생활을 한 달 남짓 지속해 보면 이게 또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 아야 정상인데, 맨날 애들이랑 집에서 (누군가는 집에 있는 학교 스케줄이란... ㅋ)부대끼다 보면 모니터로 통하는 문이라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지도 못하면 이건 뭐 정신병 걸리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된다. 

열 다섯인 첫째, 열 셋이 둘째가 번갈아 집에 있는데(아홉 살 막내는 매일 등교한다. 그나마. 만세)여기까지만 말하면 대부분 아 그래, 중2가 사람 미치게 하지 그러고 말을 받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희 집에선. 


우리 중2님은 중2가 맞나 싶게 평온하고 어른친화적이며 몹시 교과서적인(물론 어느날 손바닥 뒤집듯 증상이 발현될 수 있음은 알지만)태도와 사고방식으로 학교에서도 이름을 떨치는데, 이 2호께서 종종 중2병에 비견되고도 남음이 있는 발작적 신경증으로 집안을 종종 뒤집어 놓는다. 때이른 사춘기인가 싶기도 하고, 무슨 사춘기가 이러냐, 이건 미친개 시즌이지... 라고 씹다뱉듯 말했더니 기저귀 찬 시절부터 이 아이를 보아온 이웃 언니가 밖에서 착하게 잘 하느라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럴 거란다. 뭐래... 밖에서 백날 잘하고 제 부모한테 이따위로 하면 그게 잘 하는 거야? 라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막 웃으면서 나의 십대 시절을 반추해 보란다. 정색하고 말씀드리건대 저는 진심 저러지 않았거든요. 아이고 조상님, 이건 분명 바깥양반댁 핏줄일 겁니다. 라고 앓는 소리를 중얼거리니 이 입만 살아 나불대는 2호 왈, 자기는 쇼펜하우어의 염세론 실현버전이라고. 이 색기가 정말. 



꼭 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여즉 그냥 내가 지금 견디고 있는 상황이 너무 힘에 부쳐서 거기에 심적인 부담감을 더 얹을 엄두가 안 난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두었다. 이제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그 옛날의 전화번호부처럼, 집집마다 꼭 하나씩 비치해두어야 하는 그런 책일 거다. 분명히. 내가 돈만 넘쳐흘렀어도 아는 집들에 한 권씩 다 사서 꽂아넣어줬을 거다. 지금은 그냥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열심히 차곡차곡 모으는 일밖에 하지 못하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https://ppseoul.com/mill



나는 책에서 위로와 공감을 찾는 주의지만, 책장 한 장의 무게가 천근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 꼭 필요한 지침서가 아닐까.



나무가 좋다. 근교에 나무가 울창한 (도심치고는) 곳이 가까운 지역에서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에 대해 쓰고 그린 거라면 뭐든지 좋다.



이런 기획물 취향 아닌데, 어쩐지 여기서는 내게 필요한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거? 여유, 절대적인 여유. 뭔가 아닌 행동과 태도와 말을 들었을 때도 격조있게 (하아...) 화내기 위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법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같이 있지 못해도,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어도,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도 언제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함께 기분좋은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을 듯한 그림책. 사실 지금 우리 막내에게 이런 방법론이 제일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람은 오롯이 혼자일 때 타인과 가장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 집단과 집단으로 만날 때 이데올로기가 부딪히고 개인의 인간됨과 존엄성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첨예한 대립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두 집단 간에 과연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이 든다. 먼저 한 '사람'으로 다가서려 노력한 저자의 애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서라도 뽑아보고 싶어진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마음을 모으고 이야기를 건네며 한 시절을 건너오게 마련인가보다. 그게 전염병의 시대라고 해도. 



말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니 말을 풀이하는 책도 그래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책들이 굉장히 구경하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가뭄에 콩나듯이라도 이런 책들이 나와주면 반갑고 손잡아주고 싶고, 그런 기분이다. 



나는 이런 책을 정말 좋아한다. 번역이라는 직업인의 세계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게끔 도와주지만, 그에 더하여 제대로, 바르게, 충실하게 읽는 일에 대해서 살펴 일러주는 책들. 이 책 한 권으로 꽤 밀도있는 지식을 두 분야에 걸쳐 얻을 수 있음이 목차에서부터 바로 읽힌다. 이런 게 남는 장사인 것. 



산다는 건 뭘까. 많은 작가들이 그만큼 많은 책들로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 좋은 삶에 대해 말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낸다. 여기저기서 표현하는 좋은 삶에 대한 제가끔의 정의들을 모아 놓으면 정말 잘, 사는 방법이 뭔지 알게 되는 걸까? 



너무너무 불편해 보이는 책이다. 아. 늘 책을 읽을 때면 기꺼이 좋아서 당겨놓고 읽는 책이 읽고 불편하다 불편해, 문장에 체할 것 같네, 이러면서도 꾸역꾸역 집어삼키게 되는 책이 있는데 결국, 어디서 누군가 말했듯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정신을 키우고 인간으로서의 나를 확장시키는 것은 불편한 사실들을 다루는 책이다. 



여행의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내게도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여행의 습관이 있고 남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리베카 솔닛의 여행 방식은, 관광명소도 사진도 기념품도 아니고 그저 그 여행지에 녹아있는 오래 묵은 시간들과 공간이 엮은 문화와 역사를 자기 안에 살려내는 것인가보다. 좀처럼 쉽게 흉내낼 수 있는 방식이 아니어서 그냥 감탄만 하겠지만,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눈이 조금 괜찮아졌다고 유튜브에 빠져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보니 재미는 있는데 시간을 공중에 잿가루로 만들어 뿌리고 있는 느낌적 느낌이 과하게 강렬해진다. get back o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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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실레스트 잉 지음, 이미영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한 달 전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아는 모든 '지인'의 범주에 드는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으세요! 라고 느닷없이 권유를 했다. 고맙게도 내가 권하는 책을 꼬박 읽고 감상을 전해주는 이가 하나 있는데, 이렇게 물었다. 


"물론 괜찮긴 했는데, 어떤 점에서 이걸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는지 진짜 궁금했거든. 왜 좋았어?" 


이 질문에 어떤 명쾌한 대답을 주진 못했다. 애시당초 무 자르듯 한두 마디로 재단할 수 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일 수 있을까? 다만 내게,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소설도 이만큼의 결과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떤 방향으로든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다. 어떤 인물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선하지 않다. 세상을 나눠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미혼모이면서 예술가인(포토콜라주를 주로 작업하는 듯한) 미아가 10대 딸을 데리고 리처드슨 부인의 세입자로 등장한다. 리처드슨 부인은, 지루할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극도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미아 모녀를 규정짓는다. 엘리너 리처드슨은 자신을 '베푸는 자', 미아를 '수혜자'로 정의한다. 미아는 엘리너의 속을 훤히 꿰뚫어보지만, 모르는 척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아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정의, 믿음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미아의 정신적 척추를 위협하는 제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까짓 자선가 놀음, 맞춰주면 그만이지. 아마도 그게 미아의 본심일 것이다. 엘리너는 자신이 있는 자로서 너그럽게 처신했다는 허영심에 충분히 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위선적인 평온이 흐르는 이 거리의 풍경은 그럭저럭 유지됐을 거다.


미아의 딸은 자신의 모녀가정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적 풍요로 채워진 리처드슨 가에 매혹되고 리처드슨 가의 아이들은 비자본주의적 풍요를 누리는 미아와 펄의 집에 흐르는 분위기에 매료된다. 그러나 초반의 이 화기애애한 풍경이 흐르는 동안에도 읽는 이들은 마음이 답답해지고 초조해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씨가 군데군데 흩뿌려지고 있는 것이 행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반부쯤 가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기가 쉽지 않다.


이제 티딕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한 아주 미미한 불씨지만, 모두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속도를 내어 갈등의 봉우리로 달린다.

엘리너의 친구 부부가 버려진 중국인 아기를 입양하려는 절차를 시작하면서, 미아는 우연한 기회에 그 아기가 자신의 중국인 동료가 되찾고 싶어하는, 그녀의 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아의 개인적 신념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미아에게도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못할 자신이 믿는 정의가 있다. 그 믿음을 위협하는 이는 누구라도 미아의 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기를 입양하려 하는 친구의 편에 선 엘리너와 아기를 엄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 미아는 적이 되어 마주보지 않을 수 없다. 


미아와 엘리너가 빚는 갈등의 원인은 밝혀보면 극히 단순하다. 내가 옳다는 믿음. 그런데 그 믿음의 근거는 뭐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절대적 정의라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행위가 불러 일으키는 문제들이 점점 커지는데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감정이 생각의 구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정신 승리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다.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비구름처럼 감정이 증폭되면 대개 감정은 부정적으로 발산된다. 이성적 시스템은 통제구역을 통솔할 능력을 상실하기 일보직전에 놓인다. 이쯤 오면 스파이더맨의 그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하고 싶어진다. 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강력한 믿음에는 강력한 회의가 필요하다. 


정리.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면서 어디에도 취하지 않고 명료한 사고를 유지하기를 요구하는 소설이었다. 아마도 그게 내가 많은 책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했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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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을 만나면 아마도 측두엽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부위를 지긋하게 누르는 순간이 온다. 마치 거기를 누르면, 파워램프가 깜빡이면서 기억해내라_빨리좀기억해내라고.pdf 파일이라도 불러올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책들은 책 자체로 기억되고, 어떤 책들은 다른 책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책들로 기억된다. 



나한테 이 책은 그런 책...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책들에게 손을 뻗게 하는 책이었던가보다. 

『살면서 가끔 괴로울 때 그 책을 다시 읽는데 그냥 나한테는 그런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하는 문장이다. 괴로울 때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 나한테는 뭘까. 



아... 마지막 책이 잘 안 보이네. 오지은 씨의 「익숙한 새벽 세 시」인데.



어디서나 참 많이도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이 책이 열 여섯살의 나를 지금까지 독서가로 살게 한 책이면서, 힘들고 가라앉을 때마다 다시 읽게끔 하는 그냥 그런, 일 번 책이다. 페넬로프 킬링 부인에게는 세 남매가 있다. 대놓고 속물적이고, 조금 뻔뻔하고, 툭하면 자기연민에 빠지고 감정에만 충실하게 사느라 자식들로부터도 남편에게서도 그닥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중년의 맏딸 낸시, 항상 엄마의 편에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는 둘째 올리비아, 아버지를 꼭 닮아 삶의 겉쪽에 치중하고 사는 듯 보이는 막내 노엘. 어느 날 페넬로프는 자신의 삶 전체라고 해도 좋을 아버지의 유작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가족간의 갈등과 페넬로프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에지간한 자기계발서나 행복전도서보다 낫다, 고 나는 생각한다. 치에코 씨와 사쿠 짱은 아이 없이 둘만 사는 부부다. 그들도 딱히 유별난 삶을 사는 건 아니어서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다투기도 하고 밥 먹으러 나가 처음 가 본 식당에서 메뉴를 성공적으로 고른 것으로 굉장히 기뻐하면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하게 소소하고 시시하게 (!) 산다. 

그러나 치에코 씨에게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 소소시시한 일상에서 항상 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거리를 찾아낸다. 내지는 뭉클해할만한 것을 찾아내고 아주 잠깐, 감동한다. 그러라고 가르쳐 주는 책을 보면 웬지 반감이 들지만, 치에코 씨가 행복해하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즐거워진다. 



오지은 씨를 TV에서 봤을 때, 굉장히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활기찬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후에 이 에세이를 읽었을 때 그만큼 역으로 놀랐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지만, 이 사람의 그림자는 유난히 불투명하게 짙은 회색이고, 아주 두꺼웠겠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덮어놓는 방법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덮어 가리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오지은 씨는 밝은 곳에서 직시하는 쪽을 골랐다. 이제는 바삭바삭하게 말라서 어쩌면 얇아졌을 수도, 투명해졌을수도 있겠다. 책을 덮고 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다시 펼쳐보기에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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