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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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타인의 비밀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는 아무려나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의 비밀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것이든, 얼마나 끔찍하건 무섭건, 혹은 무겁건. 다만 그것이 나의 비밀, 혹은 내 인생의 주요한 목표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드는 순간 그에게 그 비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건 나는 그 비밀을 빛이 드는 곳으로 끌고 나와야만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갈등이, 다툼이 발생한다. 비밀을 쥔 자와 캐려는 자, 그 중 누군가는 반드시 크게 다치고 또 어떤 사람은 핏빛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인간사가 그런 감정적 대립과 충돌의 연쇄인데 가상의 세계인들 무엇이 다르려나. 


때는 정조 승하 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어 남인 숙청과 가톨릭교도 박해가 시작되었던 시기다. 양반 집안의 아가씨가 야심한 시각에 피살되어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살인 사건의 수사에 투입되어 시신을 조사하는 일을 맡는 것이 주인공인 다모 설이다.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진 뒤, 포도청에서 설이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근래 들어 줄달아 발생했던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 정치적 격변의 시대에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어떻게 엮이어 있을지 어린 다모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설이가 믿는 것은 있다. 


모든 멍과 상처에는 사연이 있었다. 그런 증거들을 꿰맞추면 분명 삶도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46쪽


이토록 순진하리만치 굳센 믿음을 가진 십대 소녀 다모 설이가 겪은 사람과 세월이 얕아 세상에 대해 가진 믿음 역시 곧기만 하다. 설이가 동경하던 종사관은 설이의 세계의 도덕이자 모범이었다. 


"다모 설, 네 덕목은 무엇이지?"
나는 아랫입술을 잠시 깨물고 있다 대답했다.
"충성입니다. 흔들릴 때도 있지만 늘 그 마음을 되찾으려 노력합니다. 나리는요?"
비가 오기 시작해 빗방울이 창호지를 톡톡 때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하인들이 돌아다니며 진흙을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치심." 
한참 많에 한 종사관이 대답했다.
"그 마음만큼은 아주 크지." -141쪽 


설이는 한 종사관의 삶을 관통하는 덕목이 때에 따라 구부러지고 휘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이답게 휘어짐 없는 원칙을 덕으로 삼아 따르는 설이의 곧은 기준이 한 종사관을 추동하는 원칙과 내내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은 곧 드러난다. 


살다 보면 정직하게 대면해 왔던 생이 자신을 배반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기에 저마다의 삶은 질곡의 세월을 거쳐 쉬이 읽을 수 없는 저마다의 층을 가진 대지가 되곤 하지만 그런 것을 알기에 설이는 너무 어리다. 그런 까닭에 언젠가 제게 튼튼한 동앗줄이 되어주리라 믿고 진심으로 따랐던 한 종사관이 순식간에 돌변한 듯한 모습을 보였을 때 설이가 받았을 충격은 쉽게 짐작할  있다. 


수상한 증거가 한 종사관을 의심하라 가리켰을 때도 나는 의심을 거부하고 충심을 지켰다. 언제나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향한 믿음을 너무도 빠르고 간단히 의심으로 덮어버렸다. -248쪽


사람들이 모여 사노라면 결국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장치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반드시 얽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공정하고 불의하게 여겨진다. 사람은 대체로 타인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고 자신의 마음이  다치기를 바란다. 각자의 대의를 위하여 다투고 마침내는 타협에 이른다.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성장하고 다른 사람은 몰락할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잃을 것이 많기에 솔직하게 세상에 맞서는 사람보다 쉽게 무너지곤 한다.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에 '존재했을 법한' 인물들을 엮어 넣어 자신들이 추종하는 가치관에 어떻게 휘둘리고 혹은 성취하는지를 읽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진짜 진실은 뭘까? '누가 죽였을까' 보다, '대체  그랬을까whydunit'가  궁금해지는 미스터리. 역사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으니만치 범죄 자체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원인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도대체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종사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애매한 결론은 2/3분량의 가제본 리뷰이기 때문입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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