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는 첫사랑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있다. 특히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첫사랑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미화되어 자신의 청춘의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설레 말도 제대로 못 걸고 실수만 잔뜩 하고 상대방의 눈빛, 손짓 하나하나에 민감해지고.. 그야 말로 가련한 스트레이 쉽이 되어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나의 진심과 상대방의 진심 사이를 죽어라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산시로가 스트레이 쉽이라는 것은 머리 좋은 미네코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아가 형성됐던 고향의 품을 떠나 완전히 타지인 도쿄에 동 떨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산시로는 다 자란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머니로부터 잔소리 가득한 편지를 받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거기에 첫눈에 반한 차가운 도시 여자 미네코는 그런 산시로를 안심시켜주기는 커녕 혼란의 소용돌이로 아주 밀어 넣는다. 그놈의 호소에 가득찬 관능적인 눈동자가 뭐고, 기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쌍커플이 뭐길래! 그 외에도, 부모님이 연락하라고 알려준 노노미야는 미네코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며 질투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밥을 사주겠다며 건들건들 다가온 요지로는 산시로의 하숙비를 날려 먹고 철학을 콧구멍으로 내뿜는 히로타 선생은 다 자란 스트레이 쉽 같으니 모두가 똑똑하고 잘나 보이는 도쿄 한 복판에서 산시로는 그저 헤맬 뿐이다.
그렇다면 미네코는 왜 자기 스스로 역시 스트레이 쉽으로 표현했을까? 소설은 산시로의 시점을 절대적으로 반영한다. 가끔가다 이게 산시로 생각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인지 헷갈릴 때 마저 있다. 그 정도로 독자인 우리는 산시로에 관해서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흐름까지 잡아낼 수 있지만 미네코에 관련해서는 주위 인물들과의 대화, 추측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미네코가 보낸 엽서에 답장도 못 하는 산시로의 시점에서 무슨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확실한 것은, 미네코 역시 자신이 누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고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미네코야말로 자신을 혼란에서 구해 줄 누군가를, 혹은 자신의 불안의 근거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여의고, 격동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는 히로타 선생이나 요지로, 노노미야와는 달리 세상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마저 없다. 똑똑한 여성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따로 직업을 갖지 않고 집안일을 주 업무로 하는 여성이어야 했던 것이다. 미네코는 자신이 주체적이며,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근거를 원했을 것이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즉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성들 사이에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산시로의 맹목적인 순수한 애정은 미네코에게도 특별한 것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스치듯 두 번뿐이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시로를 기억하는 점, 하라구치의 부탁으로 모델을 설 때 굳이 부채를 든 점, 요지로에게 돈을 주지 않고 산시로가 직접 받으러 오게 한 점 등은 그녀와 산시로 사이의 묘한 인연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산시로의 ‘그저 당신을 보러 왔다’라는 진심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그동안 받은 애정에 보답하지 못함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듯한 모습은 미네코가 감춰왔던 약한 면모를 산시로 앞에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안함을 대변하듯, 모든 것을 갖춘 오가와라는 남자와 결혼한 미네코. 거칠어 보이지만 여성적인 면모를 지닌 미네코는 위악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려 했지만, 산시로에 의해 무장해제된 그녀는 역시 스트레이 쉽이었다.
* 역시 수업 때 쓴 에세이. 사실 다른 학우분의 에세이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쓴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