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 게임
닐 조단 감독, 스티븐 레이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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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게임>을 다시 보았다. 역시나 멋~ 쥔 영화! 이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는 정말이지 흔치 않다.

영화에는 개구리와 전갈에 대한 우화가 나온다. 함께 죽을지라도 개구리를 찌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전갈의 천성(nature)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하나의 발단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주인공의 천성이 선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선한 사람이었기에 인질로 잡은 흑인병사와 마음을 틀 수밖에 없었고, 병사가 죽은 후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옛 애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매력적인 여인이 남자였다는 것을 알고난 후 그는 구토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여인(?)의 사랑을 받는다.

천성이 선한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다. 대개의 사람 모두는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기 때문에 세상엔 별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은 세상에 있어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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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SE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니콜 키드먼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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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개는 본능대로 사는 것을 용서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개도 용서만 해주다보면 유용한 재주를 익힐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인간은?

오... 진정 그러한가? 도그빌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죽었다. 일곱 남매들은 엄마가 바라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차례차례 죽었다. 마을은 불살라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하나의 생명, 마당에 분필로 그려져 있던 개만 살아남았다. 왜? 개는 본능대로 사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도그빌 주민 어느 한 사람도 세상에 전혀 보탬이 안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이 결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선악설이라는 끔찍한 결론인가? 아니면 그레이스 또한 인간의 잔인함 앞에서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그레이스' 자체가 아메리카 -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가장 거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 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내내 답답한 상황만을 지켜보아야 하는 관중들에게 마지막으로 선사하는 스펙터클인가?


자, 그에 대한 고민은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정답이 어디에 있겠는가? 감독 또한 여러가지 중층적인 의미에서 이 결말을 구상했을 수도 있으니까.

* 결국 그레이스는 갱이 될 것이다.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혐오하며 살아갈 것이다. '받은 것은 되갚고', 때로는 '직접 처리'하면서 가지게 된 권력을 '자기식'대로 사용할 것이다. 천사같던 그레이스는 이제 세상에 없고, 마을 주민들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 본성은 그렇게 이어져온 방식대로 선함과 악함을 되풀이하고, 상황에 따라 시험에 들고, 또 심판을 받으며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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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SE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니콜 키드먼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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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유난히 많은 숙제를 남겨주는 영화들이 있다. 도그빌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의 두 배, 세 배의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야 머릿 속의 짐을 약간 덜어낸 듯 하다. (그래요, 라스 폰 트리에. 당신이 이겼소.)

* 그녀에게 비밀이 있다... 어쩌구로 시작하는 영화 홍보 카피.

영화 팜플렛들이 다 그렇지만, '도그빌' 영화의 홍보 카피는 영화의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물을 소개하듯 '그녀에게 비밀이 있다'는 둥 '상상, 그 이상의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둥, '그레이스, 그녀가 수.상.하.다'는 등의 온갖 수사들엔 귀를 닫아라.

이 영화는 우화다. 철저하게 보고 생각 좀 하라는 영화다. 인간 내면의 추악한 풍경들을 도그빌이라는 한 마을에 담고 있다. 미니멀한 세트와 인위적 조명, 과장한 나레이션은 우리들이 극중에 몰입할 수 없게끔 만든다. 주인공에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을 동화시킬 수 없다. 한 발 떨어져 지켜보면서 불편해 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들의 행동과 심리 속에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나'이고, 더불어 살아야 할 '정다운 이웃'이며, 평단에서 떠들어대듯 '아메리카'의 모습이라고.

*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훌륭하지 않았다.

마치 내 귀에 대고 소리지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산다. 각자의 환경 속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빨리 따라잡으라고 한다. 뒤쳐지지 말라고 한다. 일도 잘해야 하고, 근사한 이성 파트너도 있어야 하며, 몸매도 날씬하게 유지하면서 재테크에도 능해야 한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탈 줄 알아야 하고, 홈페이지도 있어야 하며,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인맥도 있어야 하고, 한 방을 날릴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분명 훌륭하지는 않다. 확실히 그렇다. 남들과 똑같이 되기 위해, 최소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허둥댈 뿐이다. 더 많이 가진 이를 질투하고, 더 적게 가진 이들을 무시하며, 못되는 일은 남을 탓하고 잘 된 일로 나를 치장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 동안 우리의 양심은 갈아낸 유리처럼 얇아지고, 도덕이란, 예의란, 배려란 것들은 시들어 급기야 사망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이 영화에 '비밀' 같은 건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 안에 예전부터 존재해 온 것들이었다. 내 생각엔 굳이 아메리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록키 산맥이라고, 독립 기념일이라고, 마지막에 '영 아메리칸' 노래가 흘러 나온다고, 도그빌을 아메리카 위에 덧씌워봤자 마음구석의 찜찜함이 덜어질리 만무하다.

차라리 그냥 파고드는 편이 낫다. 불편해하는 내 마음의 심연을 끝간데까지 들추고, 도그빌의 한 사람, 한 사람(그레이스까지도)에 나의 모습을 투영하고 닮은 모습을 모조리 발견하여 통렬하게 반성해버리는 편이 낫다. 그러는 라스 폰 트리에 당신은 얼마나 잘 났소?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속물근성에 젖어 사는것 아니겠소? 라는 항의는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뒤의 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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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 개정판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 궁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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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마다 수영을 배우고 있다. 회사 출근 이전에 운동해야 하므로, 내가 수강할 수 있는 타임은 6시밖에 없었고, 그때문에 나는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새벽공기를 갈라야 한다.

제대로 된 운동이란걸 꾸준히 해본적이 없는지라 쉽지가 않다. 잠도 줄여야 하고, (내깐엔) 격한 운동을 하고 있는지라, 몸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침 수영이 매우 즐겁다. 뭔가를 배운다는 기쁨 플러스, 매일 일어나는 나 자신과의 작은 싸움에서 승리를 얻어내는 기쁨. 그것들 때문이다.

요쉬카 피셔는 그야말로 '대단한 승리'를 쟁취해냈다. 1년만에 자신의 몸무게를 35kg 이상 줄였을 뿐만 아니라, 50 이라는 나이에 42.195 km 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냈다. 스스로 고백하듯 아무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과감한 결단 / 끈기 있게 지속할 능력 / 철저히 현실에서 출발할 것 / 인내 - 그는 이 네 가지 원칙만을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상황을 방패막이 삼지 않았다. 목표를 조금씩 키워갔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는 쪽이었다. 주변의 가잖은 말들은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누구도 그럴 듯한 변명을 댈 수는 없을 것이다. 50이라는 나이에, 112kg 이라는 거구를 이끌고, 독일이라는 큰 나라의 외무부장관이라는 중책의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매일 그렇게 뛰었다 하니, 누군들 '바빠서... 힘들어서...'라고 변명을 갖다 붙일 수 있겠는가?

시작하자. 달리기가 아니라도 좋다. 연패의 늪에서 구출해낼 자신과의 싸움을 말이다. 나 자신을 이기고, 자랑스러워했던 경험이 언제였던가 말이다. 오늘 '나만을 위한 수영팁(tip)'을 몇 가지 정리하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힘이 들 때는 요쉬카 피셔를 생각한다. Heart Break Hill 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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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4-0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정말 존경스럽네요. 누군지도 모르는 요쉬카 피셔가 아니라 님이요. ^^

sunnyside 2004-04-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요새는 아침에 수영 안합니다. 저도 아침형 인간, 은 못되나봐요.
대신 밤에 뛰려고 노력하는데.. 거르지 말구 열심히 해야죠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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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시 읽었다. 몇 년 전인가 이 책을 읽고 기묘한 흥분상태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남기고 세계의 끝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쓸쓸함과 상실감이 온몸에 전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읽은 <세계의 끝과...>는 나에게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원더랜드'를 읽기 위해 쉬어가는 장 정도로 생각했던 '세계의 끝'은 파편처럼 내 의식을 자극하였다. '한정된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 '나'는 그 한정된 비전을 자신의 무의식 속에 하나의 마을로 완성시켰다.

높고 완벽한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마음을 잃은 채 자신의 일과 환경에 만족해하며 사는 주민들, 그들은 세계의 끝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그림자와 작별을 하고, 그림자가 죽어가는 동시에 마음을 잃어버린다. 그들이 잃어버린 마음/자아는 마을에 있는 황금빛 털의 일각수들에게 흡수되고 일각수들은 겨울이 되면 그 마음/자아를 흡수한 채 그 육중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죽는다.

죽은 짐승의 시체는 겨울 내내 회색빛 연기 속에 태워지고 그들의 두개골은 마을의 도서관에 보관된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꿈읽기'가 되어 도서관에 보관된 두개골에 담긴 꿈을 읽는다. 희미한 빛 속에서 떠오르는 잔상들, 노래들, 풍경들, 따뜻한 마음들... '꿈읽기'가 일각수의 두개골에서 읽어낸 꿈들은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기쁨도, 슬픔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마을은 그 나름대로의 완전한 순환 속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고, 평온해 보이는 마을에도 불완전한 구석은 있다. 바로 그림자를 죽이고, 마음을 완전히 상실하는 데 실패하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숲이 그것이다. 그곳에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들이 죄를 지은 듯 숨어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끝에 당도한 '나'도 그림자를 보내고,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숲'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의 끝'이건만, 정작 '나 자신'이 그곳의 주인은 아니다. 세계에 부적응하여 세계의 끝을 만들어낸 그가, 또 다시 세계의 끝에서 변방을 만들고 그곳에 머물게되는 셈이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이 세계의 부적응자인 그의 주인공들은 하루하루 복잡한 삶에 지친 우리들을 어루만진다. 그가 권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의미없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삶을 짓누르던 무게가 그나마 조금 덜어질 것만 같다. 이 복잡한 세상도 단순한 하나의 마을로 의식 속에 넣을 수 있는 그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세계의 끝으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 항구에 닿았을 때, 나 또한 햇빛 속에 부서진 거울처럼 빛나던 정오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가 세계의 끝으로 떠나고, 세계의 끝에 있던 그가 그곳에 남기로 작정하고 그림자를 떠나보낼 때, 또다시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찌는 듯한 방안의 무더위가 그 전율을 앗아갈 때까지 난 그렇게 계속, 계속 하루키를 음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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