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친은 건조한 계절이 다가오면 마당 가득 고서를 내어 햇볕에 말리셨다.
바람에 팔랑이는 책장사이를 폴짝거리며, 어릴 적 나는 아무 책이나 잡고 알 수 없는 먹물의 골짜기를 헤집고 다녔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저렇게 열심히 열을 지어 내달리는가?
이 다음에 기필코 모든 골짜기를 두루두루 유랑하리!

어제는 선친을 대신해 책벌레가 생기지 않게 하기위해 고서를 내어 말렸다.
캄캄한 괘 안에서 갇혔다 1년 만에 볕을 보지만 책들은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읽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나에게 무언의 꾸지람을 보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