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바닥에 에폭시(녹색)도장을 다시 한다. 두 명의 업자가 와서 준비를 서두르고 나는 사무실에 앉아 책을 꺼내었다. 비스듬히 드러누워 곰방대를 놀리는 양반과 타작이 한창인, 웃옷을 벗은 소작농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도 잠시, 페인트, 신나 등의 냄새에 더 배겨내지 못하고 응달에 세워진 차로 내몰렸다. 해는 고도를 향해 솟아 오르고 그림자는 줄어들지만, 중복 햇살에도 책을 놓지 못했다.
왜냐면, 나도 고도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과연 고도는 누구일까? 도장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간절한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끝내 기다렸던 고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허탈하다. 작자 자신조차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허탈에 허무가 겹치고 그제야 땡볕에 피부가 따끈거린다.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쉴 새 없이 지껄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영양가 없는 대화에 밑줄는 단 한 곳) 건망증 환자 같은 등장인물과 그에 걸맞은 유치스런 장난, 그리고 반복, 반복...
그런데, 책을 덮는 순간 싸늘한 공기가 차 안 가득 스며든다.
고도가 죽음이라면!
우리가 죽음을 기다리며 등장 인물들처럼 생을 바보처럼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서로 얽히어 싸우려 하고,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일에 빠져들고, 바보스런 일들을 되풀이하는 우리 인간들! (아니면, 나 혼자.)
그래, 내가 읽은 '고도' 는 '죽음' 이다!
죽을 때까지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인간!
나, 지금 너무 어리석지는 않은가?
죽음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