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중에 김해에 있는 “‘ㄱ’산업 (이하 분홍산업)”이 있다. 선박 부품을 조립 생산하는 이 업체는 많은 부속품을 우리 공장에 의뢰한다. 의뢰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소재를 모두 대주는 임가공 형태와 다른 형태는 소재 구입부터 가공까지 우리가 책임지고 납품하는 것이다.
임가공은 소재비가 없으니 가공비 자체가 우리에겐 고스란히 수입원이다. 그런데 문제는 CNC에서 가공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밀링 작업, 볼링 작업 등 자질구리하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작업이 아주머니들이 하기엔 힘에 버거워서 공장장과 나의 손으로만 이뤄지다보니 다른 작업까지 더디게 진행되고, 분홍산업의 물건 자체도 애물단지가 되어 납기를 줄 곧 놓치곤 한다는 것이다.
사장님과 공장장님 그리고 나, 셋이서 논의한 결과 우린 분홍 산업의 임가공을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분홍산업의 임가공 6개의 구성품은 모양이 독특하고, 강한 재질의 Sus 316 으로 스핀들을 가공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구성품을 내가 깎아 보면 실력이 많이 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홍산업의 물품은 대부분 큰 CNC에서 작업되어지는데, 나는 작은 CNC만 가끔 다뤘을 뿐, 큰 기계는 납품 다니고 선반, 밀링 작업등으로 만질 기회가 잘 없었다. 작은 기계와 큰 기계는 같은 CNC라도 조작법이 조금 다르다.
고민 끝에 나는 일요일에 내가 만들어 보겠노라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일요일엔 좀 쉬어야지 일 할 수 있겠냐며 염려 해 주셨지만, 나는 나를 위해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기술력 습득이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납기까지 두 번의 일요일이 있지만 22세트를 다 해 낼지는 미지수다. 간섭이 일어나 공작물과 공구가 부딪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차분히 공정을 머리 속에 그리며 즐겁게 배운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하다 안 되면 공장장께 묻고 도움을 청하고, 매뉴얼과 교재도 뒤지며 일요일은 공장에서 보낼 것이다.

어제 분홍산업에 가서 받아 온 재료들.

분홍산업의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은 SURFACE DREP VALVE.
내가 가공할 물품은 위 사진의 구성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