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에서 모시던 형님이 두 분 계셨다.
큰형님은 석가셨고 작은형님은 공자셨다. 학업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하루는 옥황상제께 불리어 가 금강경을 낭독케 되었는데 한 글자를 잘못 읽어 인간세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500여 년 전에 서씨의 몸을 빌려 서경덕으로 태어났었고, 그때 나를 안타깝게 여긴 극락의 형님들은 나에게 황진이를 내려 보내 나를 위로하셨다. 성씨의 몸을 빌려 현세에 윤회하니 석가형님은 김해에 계시는 나의 큰형님으로 공자형님의 울산, 작은 형님으로 나를 위로 차 몸소 내려 오셨다.
그렇다. 난 지금 천기을 누설했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정신만은 맑은 상태에서 이 글을 썼다. ㅎㅎ
뜻깊은 석가 탄신일을 맞아 공자 형님 가족과 함께 사찰을 찾았다.

어떠한 표정을 지어도 귀여운 명규.

우리 가족은 석가 탄신일에 사찰, 세 곳을 방문한다. 신자들이기 보다는 문화를 즐긴다.
나는 절이 좋다. 풍경 소리가 좋고 향내가 좋고 연등이 좋다.
그리고 특별히 이 날은 절 밥을 먹을 수 있어 너무나 좋다.

이 곳은 양산의 통도사,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
지금 보니 비빔밥을 또 먹고 싶다. 정말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
"삼촌, 나랑 달리기하자."
"... ... " ^^
"삼촌, 사진기 내려놓고 나랑 달리기 하자, 응" 이렇게 되면 나는 명규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좋아, 어디까지"
"저기 나무 있는 곳까지"
"저렇게 멀리... ... ^^" 벌써 명규는 양 손의 날을 세우고 달릴 준비 태세다.
명규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 모두가 웃음이 나 올 것이다. 얼마나 진지하고 신중하게 달리는 지 모른다.
나는 웃으며 명규를 따르는데 몇자죽도 못 가서 조금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앞으로 손을 쫙 뻗으며 넘어졌다.
그리고 한참을 미끄러져 가는 듯 했다. 얼마나 놀랐던지...
내가 일으키기도 전에 명규는 혼자 일어났다. 명규의 무릎에서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울지도 않고 또다시 할머니께로 넘어진 사실을 알리기위해 달려갔다.
"명규야, 한 판 찍어야지."
"응, 삼촌" 그럴 듯하게 영광의 상처를 드러낸다.

우리를 항상 즐겁게 하는 명규가 아기 부처다.
명규가 내 나이가 되고 아니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지금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명규에게 등을 돌려도 아빠, 엄마, 그리고 삼촌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다오.
명규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