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수치제어선반기능사 필기 시험에 합격하고 연이어 실기시험을 봤으나 어이없게도 실기에서 떨어졌었다. 물론 시험에 낙방하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그땐 상황이 달랐었다. 직업훈련원에 다니며 이론도 배우고, 야간엔 공장에서 현장학습도 하던 나였기에 같이 공부하던 원생들도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떨어진 이유는 프로그램에서 'G01'이란 단어를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시뮬레이션에서 점검할 시간이 주어졌으나 조작 미숙으로 지령어의 누락을 찾아내지를 못했었다. 나에게 물어보던 동료들도 합격했었는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약간의 지식에 거만하거나 자만했었다만 결과를 달게 받겠지만 전혀 그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한동안 'G01'를 누를 때마다 와신상담의 기분으로 버튼 하나하나를 꼭꼭 눌렀었다.

오늘 또다시 실기 시험을 봤다. (기능사 시험에서, 필기에 합격하면 실기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2년 동안 필기시험이 유효하다.) 다행히 내가 짠 프로그램에 의해 공작물이 제대로 가공되어 나왔다.

나는 동료도 없이 혼자서 창틀에 붙어 서서 3시간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감독관 님과 잠시 얘기 할 시간이 주어졌었다. 내가 호감이 가는 사람이기보다는 그 분이 다정다감한 분이었었다. 다른 사람들이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와도 내가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던지 내가 짜놓은 플로피 디스켓을 앞으로 당겨 놓아 약간의 시간적 특혜를 누렸지만, 그것을 말하려 함은 아니다.
디스켓을 CNC에 넣고 가공하여 공작물이 나왔을 때 감독관께 전하는 순간,
"어때요, 생각대로 잘 깎였나요?"
"아, 예^^"
"시험은 떨어져봐야 깊이 있게 알게되죠, 열심히 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꾸~ 뻑)
시험 발표가 나봐야 결과를 알겠지만,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중요하리...

하늘이 주신 고마운 인연에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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