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시각에도 CNC는 돌아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한 명이 두 대의 CNC를 돌리게 되는데 야간에 작업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다.
그의 이름은 여 진표, 고향은 북건이라 한다. 나이는 25세. 수려한 외모에, 두 달 동안 겪어봐서 아는데 무척 성실하기까지 하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에 얼굴을 대하니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진표에게 중국어를 배워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생한 원어민이 내 코앞에 있는데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이 영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기야 마음먹고 일을 떠벌렸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해서 장인과 다정하게 바둑을 떠보는 것을 상상하며 바둑을 배워보려고 했으나 영원히 오목 수준으로 남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그래, 친구들아! 나 음치다)기타를 배워보려 했으나 두툽한 내 손바닥에 가려 기타 줄이 보이지 않는 핸디캡을 깨달아(물론 마음과 달리 손가락이 따로 놀기도 했지만) 포기를 했었고, 아무래도 전생에 유랑하는 선비였을거란 추측에 대금을 배워보려고 교재에 어렵사리 대나무로 만들어진 대금도 장만했으나 대금은 조카들 장난감이 돼버린 지가 옛날이다.
하지만 또다시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져보이는 중국어에 도전하려한다. 중국어를 왜 배우려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글세 배랑이나 메고 혼자 훌쩍 중국에나 다녀올까 하는 것이 작은 이유라면 이유다. 중국인인 진표는 작업을 해야하고 나는 퇴근을 해야하니 기껏 두세 시간 같이 있을 수 있다. 작업에 방해되니 말을 잘 건넬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책을 샀다. 왜냐면 중국인이 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산이 있어 그냥 오르듯).또다시 나는 무언가를 하려하고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군대시절, 체구는 작지만 패기가 넘치시던 중대장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배운 것은 언젠가 써먹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