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기의 물이 바짝 오른 고등 1년 시절, 나는 한 여학생과 교제 중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의 사정으로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였고 당시 나는 누나의 보호아래 울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지역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나에겐 경상도의 무뚝뚝함이 흘렀고 그녀는 끝말이 살짝살짝 올라가는 서울말씨로 나를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바꿔 놓곤 했었다. 그녀는 우유처럼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엔 많은 공장 때문에 해가 가려져 서울 사람들 모두가 하얀 줄만 알았다. 어느 초겨울, 그녀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그녀는 정신없이 속삭였고 그 숨결이, 그 입김이 하얗게 내 뺨에 와 닿았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지금은 기억할 수도 없지만 수면제라도 섞인 듯한 그녀의 입김에 정신이 혼미해 졌던 기억은, 힘든 군 시절 나의 좋은 추억이 되었었다. 그녀가 무척 좋았었다. 학교가 멀리 떨어져있어 우린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의미 없는 날들을 보내며 주말만을 기다렸었다. 고2 여름 방학 땐 친구들과 4쌍의 짝을  이뤄 계곡으로 캠핑을 간 적도 있었다. 달빛아래 우리 둘은 우리의 꿈을 얘기했었다. 나는 의사가 되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고 그녀는 내 꿈이 이뤄지길 빈다며 격려하며 한없이 나를 고무시켜 주었다. 어느 큰 명절엔 서울에서 내려 온 그녀의 형부를 소개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한 소개 자리가 우리의 미래, 혼인을 약속하는 상견례 자리쯤으로 착각했었다.

그러던 고2 가을, 드디어 나는 일을 냈다. 언제나 그랬듯이 토요일 방과 후 우리의 약속장소는 시내에 있는 ‘채플린’이란 커피숍이었다. 나는 그날 연필 칼과 흰 천을 가져갔었다. 그리고 그녀와 만나 그것들을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 얘기는 장황하게 시작되었다. 풍신수길이 노비였으나 손 지문을 고쳐 찢어 대성할 수 있었다는 고사와 함께 나도 내 지문을 찢고 그 피로 그녀와 꼭 결혼하겠다는 혈서를 쓰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깜찍하고 엽기적인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 다르게 그녀의 반응은 놀라는 가운데 차분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으며 누나가 동생을 타이르듯 말을 시작했다. 우린 아직 어리고 결혼은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고 지금은 좋은 친구관계로 지내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말이 백번 천 번 옳다. 그러나 그땐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옳다 여기면서도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그 일이 있었지 얼마 뒤, 조급한 성격 탓인지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이유는 분명히 기억해 낼 수 없으나 그녀를 좋아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속도로 그녀가 싫어졌다. 나는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했고, 안타깝게 여겼던 친구들의 연극으로 다시 만남의 자리를 갖았지만 돌아 선 내 감정은 영영 굳어버린 뒤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그녀가 그렇게 갑자기 싫어진 이유에 대해 세월이 흐른 뒤 틈틈이 생각해 봤었다.

내가 잘 되어 성공하면 애인이 되고 내가 별 볼일 없이 평범해 지면 친구로 지낼 것 같은 그런 모호한 관계가 싫었던 것이다. 좋으면 그냥 좋고 싫으면 딱 부러지게 싫어야지, 천칭에 나를 올려놓고 다른 놈들을 분동처럼 바꿔 올려놓으며 나를 가름하는 듯한 상황이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아리송한 관계가 싫었던 것이다. 나만의 성격 탓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모두가 겪는 고통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한 모호한 관계의 지속은 나에게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었다. 그래서 나의 결정은 절교였던 것이다. 그런 아리송한 분위기에 처해 있느니 차라리 깨끗이 단념하고 혼자인 것이 그땐 더 현명한 선택이라 믿었고, 나의 풋사랑은 얄팍한 내 자존심보다 못난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고 3때, 또 다른 여학생을 사귀었으나(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왜 순수하게 그냥 좋아 할 수 없나하는 문제의 해답이 궁금했고 줄 곧 이 문제가 난제로 남아 있었다. 그 뒤, 나도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중립적인 자세로 이성 교제를 가볍게 해 왔지만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풀어 줄 해답은 찾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TV를 볼 시간도 없고 멀리하지만 예전엔 ‘동물의 왕국’을 보이는 대로 보곤 했었다. 그때 한 번은 아마존의 깊은 계곡에 사는 새들을 촬영한 장면이 방영되었었는데, 암놈을 앞에 두고 수놈들이 차례로 날갯짓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레이터가 하는 말이 “암놈은 깃털이 윤기 나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수놈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희귀한 새조차도 짝짓기를 할 때 조건을 따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야 오죽하랴? 는 것이었다. 정말 속이 시원했다. 비로소 피가 동맥에서 흘러나와 정맥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고 음식물이 식도를 지나 위에서 소화가 제대로 되는 느낌이었다. 인간으로서 여생을 같이 살아 갈 반려자를 선택함에 조건을 따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동물의 왕국'을 통해 심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결혼 조건에 재력, 학벌, 사회성, 도덕성……. 등 무수히 많이 있겠지만, 나의 첫 맞선 상대자는 나의 기준에서 안타깝게도 외모가 부족했고, 이제는 나 역시 조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 그녀가 오히려 나보다 더 순수했을지 몰라도 그때의 풋사랑은  이렇게 굴절되어 내 중심생각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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