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흑백 TV로 전설의 고향을 즐겨 봤었다. 워낙 겁이 많은 탓에 귀신이 나오는 장면에선 TV옆에 숨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가장 재미있어 했던 프로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전설에 이런 것이 있었다. 마음씨 착하고 효심이 강한 가난한 농부가 하루는 생시 같은 꿈을 꾼다. 다음날 아침, 농부는 꿈이 이끄는 대로 나뭇가지 위 새둥지에서 새알처럼 생긴 옥돌을 얻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 옥돌을 아픈 사람에게 갖다대면 아픈 사람은 거짓말처럼 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농부는 단번에 부자가 되었다. 전설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옥돌엔 작은 티가 있었다. 말 그대로 옥에 티였다. ‘저 옥에 티만 제거한다면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려 내지 않을까?’ 하고 농부는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농부는 옥에서 티를 제거해 버린다. 어떻게 되었을까? 옥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신비로운 기능도 잃어버리고 흔해빠진 옥돌이 되고 만다.
나는 항상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이 전설이 떠오른다. 그리고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티가 있음으로 해서, 허물이 있음으로 해서 그 사람은 그 사람일 수 있고 나는 나일 수 있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그 티를 함부로 제거하려해선 안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런 티가 있음으로 해서 그 사람은 더 값진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이 전설을 나름대로 해석했었다.
어제 맞선 자리에서 나는 한 번 더 이 전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보다 여섯 살 어린 상대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가량 차를 몰아 감포 바닷가에서 캔 커피를 나눠 마시며 같은 바다를 바라다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에도 들렀으며 레스토랑에서 저녁도 같이 했다. 나는 무덤덤하게 말수가 적은 편인데 상대는 시끄럽지도 않고 적은 것도 아니고 적당하게 쫑알쫑알 다정하게 속삭여 주었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외롭지 않게 형제도 셋인 집안의 맏딸이었다. 나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심성을 보려 애썼으며, 이런 나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상대는 조심스러웠고 예의 발랐다.
하지만 그에게도 티는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의 티는 얼굴에 있었다. 눈언저리의 주름을 가리기위해 한 화장 때문인지 오히려 나이에 비해 주름이 엄청 많아 보였다. 그리고 코가 옆으로 많이 퍼져 있었다. 노란 이빨이 단단하다지만 그 사람의 이빨은 노란 것이 아니고 누런 것이었다. 함께한 여섯 시간동안 줄 곧 마음이 아팠다. 절세미인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조그만 예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겉모습을 보지 않고 마음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마음은 더욱더 아파왔다. 나의 마스코트인 조카가 그 사람에게 안기면 울 것만 같았다. 나의 2세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외모보다 심성인데 ……. 나도 별 수 없는 속물이었던가?
그녀를 정중히 내려 주고 ... ...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자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 9월 6일 씌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