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적에 프라모델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시기엔 공부에 도움이 되어 보이지도 않고 돈만 낭비하는 것으로 보여지셨던지 프라모델 사는 것 자체를 못하게 하셨다. 크리스마스 때나 생일 때 누나가 선물로 프라모델을 사 다 주면 나는 펄쩍 뛰어 기뻐하며 밤을 세워가며 만들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래도 만들고자 하는 한이 덜 풀렸던지 나의 어릴 적 꿈은 장난감 공장의 사장이 되어 내가 원 없이 조립식을 만들고, 아이들에겐 멋진 장난감으로 꿈을 키워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프라모델 만들기에 집착한 이유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만들고자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일종의 욕구 불만의 표출이라 생각한다. 나는 억압된 군 생활에서 약간의 자율이 더 주어지는 말년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독일제 군함을 만드는 것이었다. 똑같은 시험에 연이어 낙방했을 때 남몰래 하나씩 사서 모형을 만들곤 했다. 지금도 큰방의 장롱 위에는 미제 짚차 모형이 포장만 뜯긴 체 방치되어 있다. 나에게 프라모델은 갖고 놀기 위한 완구용이 아니다. 보고 즐기기 위한 관상용도 아니다. 1번에서 2번으로 정해진 순서대로, 낱낱의 키트를 잘라내어 접착제를 붙여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넘어가면 완성품이 된다. 책에 나온 논리대로 수학의 공식대로 시험을 치러도 어긋난 답이 나오는 현실과는 달리 프라모델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프라모델을 만들지 않는다. 프라모델을 만들며 앉아있기에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같고, 만들기를 하며 잠시 현실을 도피해 본 들 현실은 현실로 당당히 맞서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 같기때문이다.

그런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마라톤 대회 참가 의미에 프라모델 만들기와 엇비슷한 감정이 숨어 있다. 마라톤은 출발이 있고 끝이 있다. 2004년 4월 3일 오전 8시에 출발선에 있을 것이며 정해진 코스를 따라 달리다보면 많이 걸려도 1시간 30분이 지난 다음에는 골인지점에 다다를 것이다. 욕구 불만 표출의 발전된 형태일까? 아이러니 하다. 달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쁘띠아 2004-04-0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님!! 화이팅~~
넘 무리하지말고요~!!
완주를 기원하며,,,,,,,

파란운동화 2004-04-0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난리다.
고모에게 연락해서 내일 응원하러 가자고 하시고, 외가에 연락해서 사촌동생들에게 나를 위해 응원가라고 말씀하신다기에 말린다고 혼났다. 완전히 봄 운동회 분위기다. 늦어도 내일 아침 6시 30분까지는 집에서 출발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제 무리해서 좀 뛰었더니 알도 배고, 이상하게 벌써 잠이 온다. 오늘은 일찍 잘 생각이다. 그래. 등수가 목적이 아니고 완주가 목적이니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뛰고 올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