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물음에 내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믿음이다. 예수의 존재를 믿으면 크리스트교이고, 석가의 사상을 믿으면 불교이며 공자, 맹자 사상이 자기에게 그럴듯하면 유교라 생각한다. 알맹이가 빠진 어쭙잖은 대답일지라도 분명 믿음이 종교의 중요한 속성임에는 의심치 않는다.
간혹 접하게 되는 설문지나 종교를 묻은 물음에 나는 주저 없이 '무교'라 대답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나에게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믿음은 있다. 그 믿음은 바로 하늘이다. 한번도 그 실체를 본 적은 없지만 나의 절대자인 것이다. 아무리 남을 속이고 부모, 형제를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 없듯 하늘을 속일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념통천(一念通天)이란 말을 좋아한다. 소중한 바람을 가지고 한결같이 최선을 다한다면 하늘과 통하는 길 즉, 내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주위의 유혹이나 설득 혹은 질타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을 이루는데 믿음이 있다고 해서 다는 아닌 것 같다. 믿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최선(最善)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들 모두에겐 하루를 보낼 똑같은 양의 에너지가 있고, 그것은 깨알같은 형태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크기의 고급스런 크리스탈 잔에 담겨있다고 가정했다. 어떤 이는 반을 비우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어 내일을 맞이해 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한 입에 톡 틀어넣고 대충 씹다 넘겨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진정 최선을 다 하는 이는 하루를 낭비하거나, 대충 보내는 법이 없다. 그는 깨알을 한알 한알 꺼내어 씹고씹고 또 씹어 고소함이 가고 단맛이 빠지고 텁텁함이 밀려와도 혹시 자기가 모르는 사이 삼켜버리까봐 조심하며 신중을 기한다. 잔이 비워짐을 아쉬워하며 마침내는 잔을 햝기조차 한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감을 아쉬워하며 그날그날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잠자리에 듦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날이 한결같을 때, 비로소 자기가 바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아! 그러나 나는 나의 점수를 받고 용납할 수 없었다. 눈물만 나려하고, 내 모든 믿음이 점수로 인해 일시에 깨어져버리는 것같이 너무나 슬펐다. 가을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지만, 바람만은 현실을 일깨우는 듯 몹시도 찼다. 어떤 이는 화난 얼굴로, 어떤 이는 실망한 얼굴로, 그리고 어떤 이는 여전히 나를 믿는다는 식으로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머리가 복잡해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 몰라 흙바람 나는 운동장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목을 꺾어 하늘을 똑바로 우러러볼 수 있다. 나는 성난 듯 하늘을 노려보지만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난 묻고 싶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간절히 알기를 바랄 뿐이다. 하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하는 궁색한 운명론 따윈 내 사전에 없다. 다만 내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 보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 열쇠의 모양을 원할 뿐이다.
하늘은 쉽사리 그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 또한 이해를 한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山을 오른다. 가파른 산을 헉헉대며 오르면 조금은 안정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