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그락 삭 싸그라 싸

이 경쾌한 리듬은 나의 연필과 종이가 화음에 맞춰 나를 위해 연주하는 노래이다. 0.5미리 0.3미리의 날카로운 샤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연필이 좋다. 아침에 도서관에 나와서 자세를 곧추세우기 전에, 전장에 나서는 무사가 칼을 갈 듯, 정성을 다 해 연필을 깎는다. 마음이 조금만 조급해도 싫은 모습이 되고 조금만 들떠 있어도 이내 연필은 알아차린다. 경사가 15도를 이루며 시원하게 깎여야지 비로소 하루의 각오를 다지며 차분히 앉을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내가 공부가 잘 될 때는 조용히 내 뒤를 따르다가도 정신이 흩트려지면 어떤 경고음처럼 연필은 나를 일깨우며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얀 지면에 까맣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연필심, 즉 흑연과 종이의 마찰 때문이다. 마찰력이 없다면 아마 연필이라는 나의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밑면이 많이 닳은 슬리퍼를 신고 비 오는 날에 실외에서나 욕실에서 '미끌'하고 넘어질 뻔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재미있어 진다. 이 마찰력은 물체의 크기와는 별상관이 없고 접촉되어지는 물체의 성질과 물체의 무게의 곱에 비례한다. 즉 다른 운동량은 무시하고 마찰력만 따졌을 때 유정이와 내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얼음 위를 걷는다면 삼촌인 내가 유정이 보다 미끄러질 확률이 더 적은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버스 뒤쪽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아 있으면 내의지 와는 상관없이 이쪽저쪽으로 쏠리게 되는데 과학을 이해하면 짜증 낼 일도 아니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매일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처지라서, 이제는 스스로 어떤 리듬을 타며, 버스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천정에 매달린 손잡이의 기우려지는 각도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정지하려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하고 운동하던 물체가 정지하려면 계속 운동을 유지하려하는 운동의 성질, 즉 관성은 F=-ma로 나타내어진다. 앞으로 운동하면 뒤로, 우회전하면 좌측으로 몸이 쏠리면서 항상 운동 방향과 반대로 관성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이너스 부호가 붙는 것이다. 식에 나타나듯이 관성력은 무게와 가속도에 모두 비례한다. 관성력의 핵심은 가속도(a)에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울산에서 경주까지 120의 속력이나 그 이상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면 관성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반드시 속력의 변화가 있어야 관성력이 생긴다. 즉, 운전자가 제동페달과 가속페달을 번갈아 가며 급속한 변화가 있을 때 크게 나타나는 운동이다.

그래서 버스 뒤쪽에서 앞쪽에 앉은 두 사람들을 바라다 볼 때(질량과 가속도만 생각했을 때) 몸이 많이 기우는 사람이 몸무게가 더 나간다고 재미나게 상상해 볼 수도 있고, 기사 님이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일도 없이 나의 자세가 이리저리 물결침이 심할 때는 운전 습관이 나쁜 기사께서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을 번갈아 가며 심하게 밟고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물리를 알기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재미난 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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