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물 정도로 노파의 눈은 작았다. 내가 본 눈 중에서 가장 작은 눈을 가진 듯 했다. 노파는 82세라 했다. 그 작은 눈에 한 쪽은 백내장인지 마주보기 민망하리만큼 하얗다. 다리도 불편했다. 10여 전에 교통사고로 발목이 불편다 했는데 발목이 무릎만큼 굵게 보였다. 유모차에 의지해 나들이를 나가는 듯 현관에는 낡은 유모차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인지 방 안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머리 깜기가 힘들어 그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볼품 없는 할머니였지만 세상이 공평하다는 것을 말하듯, 그 분의 정신만큼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 작은 눈으로 아직까지도 깨알같은 글씨를 쉽게 본다하시며 차기 대통령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내보였었다. 나의 전화번호를 그녀의 노트에 적었다. 빈장이 많아도 빈틈이 없어 보이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뒤죽박죽된 장에 나의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를 적었다. 귀도 밝았으며 기억력은 주위의 아주머니들이 혀를 내돌릴 정도였다. 목소리 또한 까랑까랑했었다.
그러니 이 연세에도 중매를 하신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어제 '안강'에서 유명하시다는 중매 할머니를 찾아갔었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가 중매 할머니의 집을 안내하겠다는 아주머니와 약속을 잡아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저녁에 찾아 갔었다. 아들의 나이도 한 살 더 먹었고, 어머니 당신의 건강도 염려스러우신지 연 초부터 막내아들의 결혼을 바짝 서두르는 눈치시다. 어머니뿐 만아니라, 이제는 초등학교 조카들의 걱정거리가 된 지도 오래인 삼촌이 되어버렸다. 마음 같아선 안 간다고 발끈 화도 내고 싶었지만 어렵게 시간내어 동행하겠다는 아주머니와 선약도 있었고 엄마의 마음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에 우시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거적어거적 차를 몰았다.
노파의 집은 노파만큼이나 낡은 기왓집이였다. 동네에서 놀러 온 아주머니 세 명이 자리을 떠나고 엉덩이 무거운 아주머니 한 명과 소개시켜 주신 아주머니, 엄마, 나, 그리고 노파가 둘러앉았다. 경매가 시작된 것이다. 노파가 "총각 참 좋네"하고 가격을 던지니 구경하던 아주머니가 "정말 선하게 생겼네"하고 가격을 올리는 듯 했다. "좋기는 뭐가 좋아요"하고 엄마가 가격을 깎으니 "아니에요 정말 좋아요"하고 소개시켜주는 아주머니가 다시 가격을 제자리로 올려놓는 듯 했다.
나의 신상에 대한 얘기가 한동안 오가다가 노파가 비망록을 펼쳤다. "보자, 용띠 아가씨가 하나 있는데 키도 크고 집안도 좋아" " 용띠랑 뱀띠는 야하고 안 맞다는 데... " 엄마가 대번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용띠 뱀띠 빼고는 다 좋데요" 라고 엄마가 말 했다.
뭐, 이런 식이였다. 할머니가 얼마나 말씀을 재밌게 잘 하시는지 몇 번이나 가려고 일어섰다 앉고 일어섰다 앉고 했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몰린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크게 결혼 할 마음도 없고 결혼까지의 일들을 생각하니 귀찮게만 느껴지니 내가 생각해도 걱정은 걱정이다.
흔히들 말하듯,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는 듯 하다.
공부 해야 할 때.
결혼 해야 할 때.
뒤늦게 공부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어차피 할 결혼이 늦어진다면 그것은 쬐게 곤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