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산행을 결심하다보니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가깝고, 조용하고 정갈한 느낌이 좋았던 주사암을 다시 찾았다.

메마른 겨울 산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며칠째 비가 많이 와서인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니, 시냇가에서 떼어 낸 얼음판처럼 투명하고 상쾌하고 정신까지 명료해 졌었다.

도로 포장공사는 끝난 지 이미 오랜 된 듯 했고 누가 쓸 필요도 없이 산바람이 깨끗이 쓸어내었다. 깨끗이 정리된 길을 오르다보니 내 마음 역시 깨끗해짐을 몇 번씩 느꼈었다. 

 혼자인 것도 좋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고 두런두런, 조용조용 웃으며 애기하며 오르고 싶은 그런 길이였다.

주사암에 붙은 벽보를 통해 도로 포장 공사는 신자들의 도움으로 이뤄졌음을 알았고 낡은 건물인지라 대웅전을 다시 건립할 기금을 모금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벽보 앞에서 무심결에 '옛 모습 그대로인 이대로가 좋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내려오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산 정상에 지붕이 새는 곳에서 스님들이 수행 하실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추우실까? 염려가 되었다.

사무실이란 조그마한 푯말이 붙은 방이 있었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여쭙지 않고 내려 온 것이 내내 후회가 되었다.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지키는 스님들을 위해 십시일반 기왓장 한 장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마당 바위 끝자락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절벽의 옆자락에서 자라 올라 온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백 석이 생각났었고, 잊고 지냈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끝 부분이 생각났었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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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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