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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딴에는 즐거운 삶
공선옥 | 소설가

중국 기차가 티베트의 수도 라싸까지 연결되어 지난 7월에 개통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이제 티베트 사람들은 철도가 없던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 틀림없다. 사람들의 삶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기자는 티베트의 철도개통이 외지인들에 의한 티베트의 사회·경제적 지배의 심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티베트인들 스스로의 현대화된 삶으로 이어질지는 두고볼 일이라고 썼다.

그런데 철도개통이 계기가 되어 현대화된 삶을 살게 됐다고 해서 티베트인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것인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의 들판을 가로질러 남해고속도로가 났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던 날, 전교생과 인근 마을주민들이 모두 고속도로로 나와 우리나라도 이제 부자가 되었다고 개통테이프를 끊은 차들을 향해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뿐. 고속도로가 마을사람들에게 준 이득이나 행복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속도로가 생긴 뒤 고향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속도로 주변의 들에서 일하다가 씽씽 달려가는 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바라보면서 왠지모를 얄궂은 느낌에 사로잡히거나,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듣지 못했던, 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내는 소름끼치는 소음을 듣는 일, 그뿐이었다.

90년대 초반에는 고향마을 앞 신작로가 '확포장'되었다. 그전에는 구불구불한 흙길이었다. 차라고는 하루에 몇번 완행버스가 다니고 면소재지의 술도가집 '구루마'가 지나가고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길이었다. 길가에는 미루나무가 울창했다. 그 길에서는 걷기를 위협하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논둑길과 산길과 신작로. 그 길을 걷던 시절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아니, 행복했다고 하기가 뭐하다면 그냥 재미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가난했지만 무섭지 않고 불안하지 않았다.

강운구의 사진집 《마을 삼부작》을 보면 수분리와 황대리의 30년이 나온다. 변해버린 수분리와 황대리. 수분리와 황대리가 '변해버린' 가장 큰 요인은 길이다. 30년 전 구불구불하고 포근포근했던 오솔길이 지금은 반듯하고 딱딱하고 넓은 길이 된 것. 반듯하고 딱딱한 길이란 차 다니기에만 좋은 길이다. 반듯하고 딱딱해진 길 위로 자동차들이 씽씽 달린다. 그래서 수분리와 황대리 사람들은 지금 행복할까. 지금 내 고향마을은 수분리와 황대리처럼, 이 나라 어느 '고향'이나 한가지로 온갖 길이란 길로 다 포위되어 있다. 고속도로, 신작로가 아닌 국도, 지방도, 농로, 임도, 소방도로… 그래서 그 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으로 밤이고 낮이고 고요할 틈이 없다. 이젠 시골마을에도 가로등이 설치되어 밤에도 훤하다. 이제 이 나라에서 도시고 시골이고 '고요한 어둠'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어려서 '투명한 고요' 속에서 한없이 수런거리는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학교 갔다 와서 산밭에 감자를 캐러 가다가 산나리꽃이 화들짝 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때는 산나리꽃이 바람이 저를 간질인다고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었다. 산꿩새끼가 막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소리, 온갖 산에 사는 것들이 내는 어떤 기척, 은밀한 기미, 신비한 기운들. 그리하여 자연의 부산한 기운들로 수런거리는 내 주변을 나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차서 경이롭게 바라보곤 하였던 것이다. 깊고 깊은 어둠 속에 휩싸인 밤에 내 눈은 '어둠 속에서만 빛나는 별'처럼 밝아졌다. 그런 밤에 나는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별똥별, 은하수, 싸리빗자루 모양을 하고 일렁일렁 산 너머로 사라지는 혼불을 보았다. 그럴 때 나는 아득한 슬픔과 알 수 없는 설렘에 동시에 잠겨들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서울 구로동에서 살았다. 그걸 어떤 주택이라고 해야 하나. 기와를 얹은 납작납작한 블록집들. 두 사람이 겨우 비껴갈 수 있는 골목 양쪽에 그런 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문을 열면 막바로 부엌이자 현관 그리고 한칸씩의 방. 그래서 그 골목 사람들은 한겨울만 빼놓고는 골목에서도 살림을 '살았다'. 특히 프라이팬에 뭔가를 부치거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언제나 골목에서 부치고 굽고 지졌다. 그래서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 입에도 한점씩 그 음식들이 들어가곤 했다. 부부싸움을 해도 꼭 골목에 나와 싸우고 애들이 소꿉놀이를 해도 꼭 골목에 나와서 하고. 나는 구로동에서의 한때가 가난하지만 딴에는 즐겁기도 했다고 기억한다.

십몇년 만에 다시 그곳을 가보니 동네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예전 납작납작한 집들은 전부 '원룸'이라는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었다. 그전에 여기 살던 사람들은 지금 새로 지은 저 원룸에 들어가 살고 있을까. 이제 골목에 나와서 살림 안해도 되고 '쪽팔리는' 부부싸움도 밖에 나와 하지 않아도 되고 집 안에서는 놀 데 없어 골목에 나와서 놀아야 했던 그때보다, 집 안에서 얼마든지 놀 수 있는 더 행복할까, 그래서 구로동은 십여년 전보다 지금 더 좋아진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살던 그 많던 노동자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난하지만 딴에는 즐겁기도 한 삶을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엊그저께 한 문예지의 작품공모 심사를 보았다. 요근래 들어와서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언제나 그랬을까. 응모한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 요즈음 문예지에 투고되거나 응모되는 작품들이 재미가 없다. 모든 글들이 하나같이 '쓸데없이' 심각하다. 진중하게 재미있는 작품이 씨가 말랐다. 왜 그런 것일까. 엉뚱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세상이 너무나 재미없어서이지 않을까. 말하자면, 사람들이 이제 더이상은 산밭 가는 길에 산나리꽃 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박완서 선생의 6.25를 다룬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전쟁상황에서도 이렇게 삶이 신날(?) 수도 있구나를 느낀다. 전쟁통에서도 신날 수 있는 삶, 산나리꽃 피어나는 소리가 있어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는 삶, 이제 그런 삶을 이 시대 사람들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 사람들은 영영 누리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어 나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해도 딴에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 나는 가장 두렵다. 그 두려움의 한가운데 한미FTA가 있음은 물론이다.


필자 소개 공선옥
소설가. 소설집 《멋진 한세상》 《유랑 가족》, 장편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 《붉은 포대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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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취기가 도는 졸린 밤이다.

강ㅇㄱ샘이랑 간만에 둘이서 한 잔 (흠... 4잔 정도)했다. 알딸딸한게 딱! 기분 좋다.

어느덧 마흔 밑자리 깐 나이든 처녀와 마흔 중반 접어드는 아저씨..

뭐 내가 조금 손해보는 느낌도 들지만 암튼... 이런 저런 이야기

부질없는 관계들과 세월과 삶... 그냥 하루 하루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알딸딸... 이젠 씻고 자야지.

적당하게 취기 오르니 손발도 따뜻하고 나른하게 졸리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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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9-2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은 푸셨나요? 해콩님?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기분이 좋아지니 그게 술이 가진 좋은점 하나인것같습니다..하지만 딱 고기까지여요....ㅎㅎㅎ

해콩 2006-09-2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부끄럽습니다. 어젠 정말 푹~ 잤어요. 덕분에 시험문제 최종점검은 학교와서 부랴부랴했지만요.. ^^;
 

그예 일이 터졌다.

지지난 주 교무회의 시간에 조퇴, 지각, 결과를 포함한 생리공결을 월 1회로 한다는 담당 부서 부장샘의 일방적인 발표 이후, 최병ㅎ샘께서는 부장도 만나고 교감샘도 만나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바쁘셨다. 지난 주 수요일, 그 부장샘께서는 전체 교사들의 의견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 교장샘을 만나셨는데 교장샘께서는 '자신의 권한'으로 결정하겠다고 바로 공문 만들어 결재 받도록 '지시'하셨단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발표가 있는 날이고 최병ㅎ샘께서 '한 마디' 하시겠다고 벼르고 있는 날이다. 자습지도 다녀왔더니 샘께서는 벌써 모든 샘들께 쪽지를 날려두셨다.


오늘 아침에 출결규정을 발표할 것 같습니다. 저번 목요일인가 교장선생님 결재가 났거든요. 학년초에 정하려다 출석부 문제로 미뤘다고 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되는 것은 생리공결 관련 규정입니다. 2주쯤 전에 부장회의에서 잠깐 의논하고는 1학기 때까지 허용했던 생리공결 1회(권고사항은 결석1회나 지각. 조퇴. 결과 합산하여 3회로 되어있음)를 공결 1회는 그대로 두되 지각. 조퇴. 결과 3회는 악용하는 학생들이 있다하여 1회로 줄이겠다고 직원회의에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두 가지 점을 담당부와 교감선생님께 지적했습니다.

첫째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결석 1회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각. 조퇴. 결과 3회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후에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어 옷을 버려서 조퇴를 하고 싶다. 그런 난처한 경우에 저는 학교 있으라고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교시에 조퇴를 하고 그 다음날 생리통이 심해서 오후에 다시 조퇴를 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있었습니다. 아침에 갑자기 생리가 나와서 지각할 수도 있고, 생리통 때문에 양호실에 가서 결과를 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경우인데 굳이 이걸 제한해서 학생들한테 불이익을 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병으로 인한 경우 내신성적에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병결과처리해도 문제없지 않느냐고 하면 아예 처음부터 생리공결을 인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악용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1학기 동안 그렇게 악용한 학생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수십명이나 됩니까? 악용한 학생이 몇 있었다 하더라도 악용하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 선의의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교사가 지도해야 맞는 것이지 악용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봅니다. 물론 이렇게 세 번씩이나 사용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으니 (아마 대부분의 담임들이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한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권고사항에 있는 내용을 일부러 축소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리통이 심해서 두 번, 세 번씩 조퇴를 한다면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현재까지 생리통은 치료방법이 없는 걸로 압니다. (물론 자궁내 물혹이 있다든가 환경호르몬 때문인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옷을 좀 느슨하게 입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방법말고는 대처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상에 엎드려서 참고 있는 애들을 보면 저는 양호실 가라거나 차라리 조퇴를 하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있어도 결국 수업은 못 듣거든요.

현재까지 제가 알기론 다른 학교에서는 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만 이렇게 제한을 하는 것도 좀 창피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믿지 못한다, 제대로 지도할 수 없다는 걸 광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걸까요? 저희 반에 1학기때 악용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두어명의 학생이 조퇴를 두어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걔들이 생리 중인 건 맞았지만 비도 오고 학교에 있으니 찝찝하고 해서 두 번씩이나 조퇴를 하겠다고 온 거였습니다. 그때 제가 강력하게 말해서 남기지 못한 게 아마 이런 결정이 나오게 한 원인이 아닌가 하여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뒤로 그 애들 두 번다시 그렇게 안합니다. 7월에 저희반 안에서 이 문제로 얘기를 한번 했거든요. 악용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희들 권리를 너희들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남용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교사가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두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과정의 문제입니다. 물론 학교장이 최종 결정하는 것은 맞고, 교장선생님께서 나름대로 의견 수렴을 위하여 부장회의에서 의논하셨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는 것보다 부장선생님을 통해서 부원들의 의견(전체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전체는 아니지만 과반수가 훨씬 넘는 여학생들의 권리에 관한 문제인데 더더욱 직접 애들과 접하는 담임교사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부장들의 의견만 수렴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학교장이 결정한다는 것은 학교장 혼자서, 또는 부장들의 의견만으로 정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침에 글을 쓰다 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일단 여러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글을 보냅니다.

최ㅂㅎ


조목조목 옳으신 말씀. 샘 발언 뒤에 나도 한 말씀 거들어야지... 생각하며 쿵딱쿵딱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이크가 어디있나... 살펴보고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부장샘이 일어나 아주 장황한 설명을 하더니만 생리 공결은 결석이든 조퇴든 지각이든 결과든 한 달에 하루만 쓸 수 있다고 확정 발표를 해버리셨다. 최샘도 일어나 발언을 하셨다.

샘께서 지적하신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반교사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전달했다는 것, 그리고 생리공결 자체의 문제였다. 일부 아이들이 악용하더라도 그걸 막는 차원에서 담임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해결책을 써야지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모든 아이들의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되며 그 결정과정에 담임이나 여교사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고 대부분 40대 이상의 남교사로 이루어진 관리자와 부장교사들이 결정해서 지시하는 것은 '독재'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다음 순간 일어났다. 최샘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장님께서 일어나서 '그만하라..' '앉으라'고 하셨다. 지난 번 성과급 문제로 분회장이 발언할 때도 그러더니만...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장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정말 놀라웠다.

"교무회의 시간에는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근거 찾아 보여줄테니 회의시간 마치고 내려오세요"
"교사는 교장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합니다. "
"그런 식으로 교장의 말에 자꾸 말대꾸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교장의 지시에 불응하는 겁니까?"

평소에 그 분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을 단어들.. 지시, 명령, 불응, 말대꾸.. 그렇다. 우리는 그 분의 지시와 명령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였으며 우리가 하는 문제제기는 그분께는 말대꾸에 불과했던 것이며 심지어 교무회의 시간엔 그 분의 허락이 떨어져야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분께 우리는 명백히 수하였던 것이다. 뜨아아~~ 

오~ 놀라워라~ 도무지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최샘은 마이크를 꺼버리는 치사한 방법에도 굴하지 않고 발언을 마무리지으셨고 앞으로 이렇게 비민주적인 '교무회의' 참석을 거부한다고 하셨다.


최병ㅎ샘의 두 번째 쪽지

어제 뒷이야기입니다.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안보셔도 좋으나 저희반에 대한 잘못된 소문도 있고 해서 겸사 겸사 보내니 기왕이면 끝까지 읽어보시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하면 고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 횡설수설 하는 것도 용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생리공결 문제로 부장회의 얘기가 나온 뒤에 정보부장선생님, 교감선생님께 제가 생각한 문제점을 두어차례 얘기드렸고 정보부장선생님께서 전체 의견 수렴을 위해 두가지 안을 마련해서 인쇄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학교장 결정사항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교장선생님께서 바로 결재를 올리라고 하셨고 결재과정에서도 수렴절차를 거치자는 얘기가 30여분이나 있었다는데 무시하신 걸로 압니다.

아마 제가 교장선생님께 찾아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무회의에서나마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어제 마이크를 잡았던 거고요.

저도 조금은 다혈질이나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벌어져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과가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요.

어쨌거나 그런 일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그대로 묵인할 수 만은 없다 싶어 용기를 내었던 겁니다. 학생들 보고 늘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한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애들 보기 부끄러울 것 같아서요.

이상이 어제 제 상황이었고, 다음은 저희 반 이야기입니다.
저희반 애들이 생리공결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하루에 열여섯명이 단체로 조퇴를 한 적도 있다는 얘기까지 있은 모양인데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생리공결은 출석부에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에서 학생들의 권리차원에서 만들어준 제도를 우리가 안쓰고 있다면 말이 안된다 싶어서 (우리가 이렇게 잘 쓰고 있다는 증거로 남길 필요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금 확인해보니 3월에는 한명도 없고(그 제도가 생겼다는 걸 몰랐거든요) 4월에는 5명, 5월에는 13명까지 늘었다가 6월에는 2명, 7월에는 4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7월에는 생리조퇴가 늘었지만요. 생리조퇴도 출석부에 연필로 기록해놨으니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날도 하루에 다섯명 이상이 빠진 적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소문이 돌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5월 생리공결 숫자가 와전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많이 쓰는 반은 많이 쓰고, 안쓰는 반은 안쓴다는 얘길 하시면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어제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파서 엎드려있는 애들은 제가 집에 가라고 합니다. 그런 애를 보내고 안보내고 하는 것은 담임마다 학급경영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반 애들이 2학기 와서는 어떠한가는 어제 글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남학생과의 형평성 문제는 생리를 하지 않는 애들과의 비교라 더 말할 필요가 없겠고요.

올해 우리학교가 성교육 시범학교인데 성희롱이나 성폭행 예방....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기본은 이성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생리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평생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는게 얼마나 힘든가... 그런 것을 남학생들이 알고, 배려해주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것도 성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며칠전에 보건휴가(생리휴가)를 냈습니다.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 걸 쓰는 사람 본 적도 없다.... 이런 얘기도 들었지만 그날 마침 수업이 없었기에 큰 맘 먹고 썼습니다.

일반 회사와 달리 학교는 한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보강을 해야하고, 애들한테도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여교사들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병가내면 아무도 눈치주지 않는데 보건휴가 내면 다들 눈치주는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쉬고 오니까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자기는 생리가 시작될 때 머리가 아프고 구토까지 하는데 정말 억지로 참고 있다면서요.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 다릅니다. 별 고통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합니다. 

여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딸, 아내, 누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 주십시오.

써놓고 보니 정말 횡설수설입니다. 조리있게 정리가 안되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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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누가 여자로 태어나래? 남자들은 군대도 가고 하는데, 아무 혜택도 없거늘...
그깟 생리통으로 결석을 한다고? 우리 어머니나 마누라 봐도 생리때라고 결석할 정도로 아픈 것 같지 않던데...
속썩이는 놈들은 분명히 생리니 뭐니 하면서 이용해 먹을 게 뻔해...

이런 말을 하실 어른들이 상상이 가네요.
남학생들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여학생들을 배려하진 못할망정...
생리 공결 같은 건, 그저 담임, 보호자 확인서 첨부로 하루, 이틀 결석이든, 조퇴든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생각이 굳어진 사람들은 어디서나 부딪치게 됩니다. 짱나게~~~

해콩 2006-09-2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인화면 댓글 보고 깜짝놀랐어요... ^^;
그쵸그쵸.. 참말.. 짱나요.
오늘 아침 직원회의 때 있었던 일 제가 정리해서 올리면, 그 글 보시면 더 짱나실걸요..

BRINY 2006-09-2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굳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권위를 쥐고 흔들어 문제죠... 남학교라 피부에 아직 절실하지는 않지만, 평소에도 여교사들 상대로 아들만 둘 둔 티를 팍팍 내는 교감 생각이 나네요...

글샘 2006-09-2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쌍한 교장이군요. 주변에 적만 가득 있을테니 말입니다. 저런 교장 앞에서 살살거리는 인간들도 속으로는 존경하지 않거든요. 저런 인간은 빨리 퇴임해버려야지 수가 없을 듯 싶네요. 아님, 해콩님께서 인격적으로 잘 감화를 시켜 보시덩가. ㅋㅋ

해콩 2006-09-2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짱님이 불쌍한지, 주변에 적만 가득한지, 그들이 앞에서만 살살거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제 그 와중에도 최샘께서 발언하실 때 박차고 나간 분도 계셨고 또 아주 젊은 어떤 교무기획은 마이크마저 꺼버리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거든요. --;
인격적인 감화는... 제가 인격 수양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좀 마이 걸릴텐데.. 흠흠..

해콩 2006-09-2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최샘의 쪽지가 온 후에 이런 쪽지도 왔다.

<생리결석 건 및 학내망을 관리하는 주무부장으로서 소회>

상기 건으로 인한 교무실내 논란을 지켜보면서 그 한켠에 업무담당자인 저의 부덕이 작용되었나 싶어 마음이 무거운데 오늘 또 한편의 글이 올라 오매 이 또한 다소 실망스러워 주무부장으로서 답변 겸 글을 올립니다.

먼저 최선생님의 상황 설명이 다소 일방적인 면이 있지만 구차한 설명은 않겠으나 적어도 업무용인 학내망을 통한 이 방법은 결코 현명한 의견수렴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 말씀드립니다.

학교는 시스템입니다. 학생교육을 최종목표로 각 개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공동체로서 이때 유기적 결합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상호유대감과 믿음도 포함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옛말에 소를 잡아먹어도 마음만 맞으면 뒤탈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한 직장에서 서로 의논하고 이해를 구함이 먼저이고 이렇게 할 때 결국 추구하는 바가 같은 우리끼리 합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본 건의 경우 학교 내규가 미처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경우을 감안하여 학교장의 재량권 범위에서 부장회의에서 취해진 조치로서 설령 그것이 비교육적 비인권적 판단이라 할지라도 이런 방식의 해결노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혹시 본 문제의 시발이 상호 이해 또는 대화가 부족하여 생긴것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을 대할 것을 학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께 제안드립니다.

그것은 학교 구성원 각자가 생각이 다르다하여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호 계속 대립한다면 그건 다수의 침묵하고 계신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그건 분명 소모전에 불과하다 사료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 부장들은 그동안 학사행정의 주요사안에 대해 가능한 전체교사의 의견을 여쭈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학교는 적어도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 금요일 청소시간, 아이들 둘러보며 교탁에 기대있는데 ㄷ혜가 다가와서 조용히 묻는다.

"샘, 엄마가 써클 선배들 50일 떡 하면서 샘것도 같이 하셨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교무실 책상 위에 올려둘까요?"

앗! 당황스러워라..

"ㄷ혜야, 떡이 42개 될 것 같드나?"

"예... 아마..."

"그래.. 알겠다."

이렇게 냉큼 받아도 되는 걸까? 아주 조심스럽게 물은 ㄷ혜가 뜨아하겠다... 교무실 내려와보니 떡 보퉁이가 생각보다 큼직하다. 대충 세어보니 50개 정도? 어쩌지? 샘들이랑 나누기에도 애매한 숫자.. 처음 생각대로 그냥 애들이랑 나눠먹을까? 이런 별일도 아닌 일에 나는 당황하고 고민하고 우왕좌왕 어쩔줄 몰라한다. 일단 어머니께 감사 전화. "예 어머니. 아이들이랑 잘 나눠먹겠습니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1학년 수련회에 오늘따라 연가병가도 많아 교무실엔 샘들도 별로 없으니 그냥 처음 생각대로 애들이나 나눠줘야겠다 싶었다. 보충 7교시 마치기 전에 교실로 올라갔다. 왠지 수업 마치고 나오는 샘께 미안한 맘이 슬며시 들고.. "ㄷ혜 어머니께서 우리 먹으라고 떡을 보내셨네. 자 하나씩!! 잘 먹겠습니다 해야지?" ㄷ혜를 보며 한 번 씽긋 웃어주고 나도 하나.

이전에 실업계 있을 땐 그렇게 생각했다. 교무실엔 간식이 많으니 가끔 이렇게 보내주시는 간식은 당연 아이들이랑 나눠야지! 샘들 눈치 보여도 그냥 꿍쳤다가 굳이 아이들 나눠주고 그랬다. 근데.. 요즘은... 아이들의 군것질도 장난 아니고 별로 감사하는 마음 없이, 간혹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요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떨떠름할 때가 있다. 뭐 짜다라 감사하고 어쩌고 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보내주신 분 성의를 생각하면 샘들이랑 나눠먹는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이렇게 먹을 것이 갑자기 생길 때도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 이리도 많이 오락가락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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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9-2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백화점 최상층 식당가에서 오랫만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와 25,000원짜리 일식 정식을 먹으면서( 그것도 컨디션 별로 안좋아 반은 남김), 이 돈이면 한 반에 아이스 하나씩 돌리고도 남았는데...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콩 2006-09-2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직업병예요.. ㅋㅋ 샘은 나보다 더하시구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