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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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7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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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에 0.5㎜씩 자라는 남극의 꿈
[남극에서 보내는 편지 ⑩] 남극을 떠나며, 한반도를 생각하다
텍스트만보기   신동호(news) 기자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는 남극. 시인 신동호가 거기를 갔다. 세종기지를 운영하는 극지연구소의 초청이었다. 11월 4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의 LA, 페루의 리마, 칠레의 산티아고와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우루과이 군용기를 타고 남극에 도착한 그가 먼 남극에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재한다. 이 편지는 그 마지막 편이다. <편집자 주>
1. 지구 반대편 6000m 고도에서

ⓒ 신동호
나는 지금 칠레 산티아고를 출발해 뉴욕으로 가는 LAN CHILE 530편을 타고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잠시 기착한 비행기는 마추피추 산정을 뒤로하고 잉카와 이별의 악수를 하고있다. 잠시 뒤면 적도를 넘어 카리브의 뜨거운 바다를 지나리라. 이윽고 비행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인공도시 뉴욕에 도착할 것이다.

뉴욕으로 가는 칠레와 페루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무덤덤하다. 이 비행기 안에서 심각한 건 나뿐인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심각할 필요는 없다. 긴 남극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적당히 여행을 즐겨도 될 일인데, 푼타아레나스와 산티아고에서 주섬주섬 사모은 기념품을 어떻게 분배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어도 되는데, 내 머리 속은 복잡하다.

라틴아메키라의 잉카, 아시아의 북한

처음엔 마젤란, 이어 네루다, 다시 잉카의 왕 아타왈파와 정복자 피사로, 이윽고 체 게바라가 마음을 휘저어놓는다. 이들은 남아메리카인들이 자기 역사의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왜 이들이 지구 반대쪽 한반도에 사는 내 마음에 현재화 되어 나타나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잉카의 왕 아타왈파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피사로에게 빌었다. 목숨을 구걸했지만 결국 목메어 죽고 말았다. 길을 닦고 도시를 세웠지만 잉카는 고립되어 있었다. 찬란하고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안데스 산맥이 이 모든 걸 굽어보고 있었다.

   오늘의 브리핑
롯데 '112층 첨성대'
슈퍼타워의 긴 그늘
"강남에도 안 살면서 부동산 보도해?"
대통령 생가 주변은 기자회견도 안 돼...
'월광소나타' 이어 '리멤버'도 연주
꿈에 그리던 '본바닥 김치'의 나라로
"순대국 먹으면 감기 뚝! 할 것 같다"
그녀가 안아주던 날, 모텔에 가다
나는 잉카를 생각하면서 자꾸 우리의 반쪽 나라 북녘 땅을 떠올렸다. 21세기가 되도록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라는 거대국가에 맞서는 까닭은? 가난한 인민들과 핵실험, 세계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듯 여전히 혁명을 수행하는 나라.

서양고전음악도, 그 흔한 팝송 하나, 재즈의 엇박자나 레게의 리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나라. 그 자리에 피바다교향악과 장엄한 선율의 혁명가요가 흐르는 나라.

게바라의 꿈은 인민들이 생산과 역사의 주인이 되는 데 있었고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칠레의 아옌데 역시 같은 꿈을 꾸었으나 총을 들지 않고 혁명을 성공시켰다. 네루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수려한 자연만큼 인민을 사랑했고 아옌데의 꿈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좌절된 것으로 보였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뒷돈을 대주고 게바라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던 건 미국의 CIA였다. 칠레의 군사쿠데타를 사주한 것도 역시 미국이었다. 피노체트는 대통령궁에 폭격을 가했고 아옌데는 처참하게 사망했다.

민중가수 하라의 손목을 자른 것도, 네루다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피노체트였다. 그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박정희였다지만, 그 역시 칠레 국민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말로를 걷고 있다.

과거에 매달린 평양, 과거를 망각한 서울

나는 언젠가 평양에서 이런 메모를 남겼다. '평양은 과거를 지나치게 기억하며 살고, 서울은 과거를 지나치게 망각하며 산다'고. '타도제국주의동맹' 80주년을 맞은 평양은 아직 해방 직후의 삶을 사는 듯했다. 반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인해 고통과 불행을 대물림하는 서울은 그런 역사를 빨리 잊어야만 했다. 기억은 곧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민주화를 이뤘다지만 여전히 분단으로 인한 부조리가 살아있고, 세계 일류국가의 수준으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은 그렇지 못하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게바라의 혁명정신이, 네루다의 민중에 대한 사랑이, 아옌데의 깊은 통찰이 필요한 게 아닌가. 잉카의 문명처럼 북녘에서 가꿔온 문화 역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6천m의 고도 위에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2. 21세기, 한반도 분단, 날씨 맑음

ⓒ 신동호
남극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칠레 군수송기는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해 두 번 회항했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킹조지섬의 중국기지와 러시아기지를 전전했다. 객식구가 되어 눈치밥을 먹다가 지쳐갈 무렵 우여곡절 끝에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극대륙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저기압대가 남아메리카와 남극대륙 사이의 항로와 해로를 항상 불안하게 한다.

1945년 이후 분단은 한반도에 저기압골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분단은 오히려 맑은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나는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행운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감히 선언했다. 그 이유로 나는 인류사에 평화의 모델을 만들어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여기에 우리의 행운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건 북녘 땅이 간직한 때묻지 않은 자연이다.

북녘을 보며 환경생태국가를 꿈꾼다

세계의 소비양태는 미국을 닮아간다. 미국은 세계자원의 절반을 소비하는 국가다. 이미 그 패턴은 일상화되어 변할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인도·중국 같은 인구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소비양태를 닮아가고 있다. 지구와 인류는 곧 자원부족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인류는 새로운 소비질서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북녘 땅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환경생태국가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남북경협을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유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런 이유로 도로확장과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먼저 이야기한다. 굴지의 세계기업이 개성에서부터 신의주까지 8차선 도로를 놓아주겠다는 제안을 한 일도 있다.

어떤 인도적 지원 단체는 백두산 삼지연공항에 피치(석유를 분류한 뒤에 남는 검은색의 고체나 반고체로, 도로포장 공사나 전기 절연재 따위로 쓴다)를 보냈다. 환경단체의 한 간부가 피치의 환경파괴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 단체는 그 경고를 무시했다.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남쪽 사람들 입장에서야 북이 그 길을 걸어야만 잘 살게 될 거라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가 않다. 북이 꼭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지나야하는 이유는 없다. 오래된 도로를 간직하고, 정보통신이나 문화산업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주로 국가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정보통신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국제적 성과를 획득하고 있지 않은가.

각 나라들이 남극에 기지를 두고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국의 국토는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의 문명들처럼 생태파괴로 인해 자멸하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 일환이 교토기후협약, 남극조약 같은 것들이다.

뉴욕의 야경이 찬란하다. 언젠가 세계의 야경을 보여주는 지도에서 불꺼진 북녘 땅을 본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북의 전기사정을 생각하며 마음이 쓰라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불 꺼진 북녘 땅이 남겨놓은 것만큼 남쪽의 사람들이 초과의 소비를 할 수 있었다고. 이제 남북이 힘을 합쳐 불 꺼진 그 땅을 잘 지켜야 하리라고.

▲ 남극의 지의류.
3. 함부로 밟지 마라
남극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극에 모든 예의를 다했는지 뒤돌아본다. 너무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연재를 마치며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남극처럼 냉정하게, 차차 그 빚을 갚겠노라고, 눈보라처럼 거칠게 약속드리며 시 한 편을 바친다.

존재의 말

여기 이 자리에서 오백년
밤에는 바위와 연애하고
가출한 햇빛이 아주 가끔 돌아와
키를 재곤 돌아갔다

나, 함부로 밟지 마라

바위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눈보라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않는다
너의 눈빛은 호기심에 가득 찼구나
키만 재고 돌아가라.


* 남극 지의류는 8년에 0.5㎜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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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와 인간

2-4 김태우


 거미는 배우지 않아도 거미줄을 칠 줄 안다. 나비는 하늘을 날 수 있고 지렁이는 흙을 파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히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이다.

 

 그러나 독수리는 배우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사자는 사냥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심지어 인간은 식사법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답게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지구상에 뿌리 내린 진화의 나무에서도 높은 가지를 차지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 그들이 저급한 거미보다 더 바보일까? 어째서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지 못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가 우리들에게 생존의 수단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진화한 생물 일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곧 필요한 것을 타고나기 보다는 외부에서 충당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오랑우탄은 개미핥기처럼 혓바닥을 길게 변화시키지 않는 대신 나뭇가지를 사용해 개미를 먹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런 도구가 없어도 살아 갈 수는 있다. 그러나 환경을 이용하는 또 하나의 짐승인 인간은 그야말로 쥐뿔도 없다.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주둥이도 작다. 손톱도 약하다. 육체적인 능력 역시 그저 그렇다.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은 없으면서 다른 것을 이용하는 기술은 경이롭다. 침팬지, 오랑우탄, 수달, 이런 것들과 비교하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다. 

 

 필요에 따라 스스로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 남의 것 뺏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애써서 온몸에 털을 기르는 것 보다 다른 개체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 더 좋다. 모시옷, 밍크코트, 실크모자, 악어가죽팬티, 골라잡을 수 있다. 애써서 이빨을 강철같이 만드는 것 보다 강철을 캐서 무기로 만드는 것이 더 좋다. 청룡언월도, 간장과 막야, 카타나, 듀란달, 엑스칼리버, 골라잡을 수 있다.

 

 보다 경제적이기 위해 나무를 태워 쇠를 녹였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세웠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파괴를 불러 왔다. 더 큰 힘을 가질수록 더 큰 파괴가 따라온다. 나는 인간의 문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기 때문에 본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웃기는 소리다. 사자는 생태계의 올바른 순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도 없이 잡아 죽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바탕 뛰고, 배부르게 먹고 나면 편히 쉬어야 한다. 그런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면서까지 금방 썩을 것을 사냥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들에게 냉장고가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겠지. 그놈이 그놈이다. 인간 역시 그럴 만하니까, 그럴 여력이 있으니까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인간은 가만 앉아서 사자 가죽을 구할 수 있다. 음식을 먹다가 맛이 없으면 버릴 수도 있다.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으며 핵폭탄으로 히로시마를 날려 버릴 수 있다. 인간은 짐승을 깔보고 비하하지만 인간 역시 짐승이다. 힘이 있는 데 쓰지 않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힘을 쓰지 않으면 힘이 없는 것과 같다. 힘이 없으면 잡아먹힐 수 밖에 없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그 스스로도 죽을 운명이다. 그건 후라이드 치킨을 먹기 위해선 닭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도저히 항거하기 어렵다.

 

 결국 지구공동체는 언젠가 파멸한다. 지구의 종말 전에 먼저 인간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음 타자가 지구를 황폐화 시킬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해 영원히 죽지 않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인간이 죽는다는 운명에 변화는 없다. 인간은 결국 쇠락한다. 막을 방법은 없고 단지 늦추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그것은 오직 사랑만이 가능하다. 요즘은 동네 개 이름처럼 쉽게 불려 져서 가치가 떨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인 관념이다. 합리적인 발전을 시작하면 심판의 날을 앞당기는 결과밖에는 안 나온다. 때문에 비합리적인 것이 필요하다. 요즘 노인 인구의 증가가 큰 사회문제라고 노인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범죄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강제 노역에 보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돈을 투자해서 야생동물이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거미는 작고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없다. 냉철하다. 힘이 세고 지능이 높을수록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까마귀는 효도를 한다. 코끼리는 다친 동료를 돕는다. 인간은 복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거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파괴를 자행하지만 사랑이 있다. 사랑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필멸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히든카드는 사랑뿐이지 않을까. Love&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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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2-1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쁜 태우. 이 녀석의 광팬이다. "그러나 필멸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히든카드는 사랑뿐이지 않을까. Love&Peace" 이렇게 쓸 줄 아는 녀석을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동무와연인] 가공할 생산력으로 무장된 세기의 커플
100권의 책과 2만여통의 편지 남긴 볼테르 뒤엔
예쁘고 명석하며 도박에도 뛰어난 샤틀레 있어
그 덕에 2만1천여권의 장서 사들여 서가를 누비며
당대 최고 문학적 과학적 성취 이뤄내
한겨레
동무와 연인/⑩샤틀레 부인과 볼테르

글이 빨랐던 볼테르(1694~1778)는 그의 긴 생애 동안 100권에 가까운 책과 2만여 통의 편지를 4월 말의 벚꽃잎처럼 흩뿌리며 18세기의 시대정신 그 자체가 되었다. 볼테르보다 심오한 사상가들이 동시대를 겪으며 계몽에 진력하고 있었지만, 시대의 에스프리는 그의 분노와 재치 속에 전형적인 빛을 발했다. 워낙 다정다감한 괴테이긴 하지만, 그는 볼테르를 일러 ‘만고에 다시 없을 최고의 작가’라고 추겨세운다.

그러나 에밀리 샤틀레(Emilie du Chatelet, 1706~1749)는 글이 빠른 볼테르가 만났던 수많은 명인과 재사들 중 말이 가장 빨랐다고 한다. 단지 말이 빨랐을 뿐 아니라, 그가 종종 인정했듯이 그녀는 더 명석했다.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하며 극히 짧은 시간에 실팍한 성과물들을 내놓곤 했다. 길지 않았던 생애의 말년에 그녀는 아침 안개처럼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지척에서 느끼며 뉴턴의 과학을 번역, 해석하는 작업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그녀의 역작은 남성중심적 과학계의 편견과 질시를 뚫고 사후 10년 만에야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759)라는 이름 아래 햇빛을 본다.

문제는, 당신보다 예쁘고 명석할 뿐 아니라 말까지 빠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는 일에 관한 것이다. 슈레버 판사의 증례를 통해 프로이트가 적절하게 밝혔듯이, 말로써 세상을 지배하려는 편집증적 남성 권위주의자들(=지식인들)에게 이것은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편리한 대상은 예쁘고 말이 빠르지만 명청하든지, 명석하고 말이 빠르지만 예쁘지 않든지, 명석하고 예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볼테르도 샤틀레 부인을 일러 ‘고담준론을 일삼는 폭군’이라고 비꼬았으니 그 역시 명석하고 말이 빠른 애인을 둔 탓에 제 나름의 비용을 치른 모양이다.

그나저나 변함이 없던 남성가부장 사회에서 ‘예쁘고 명석하고 말까지 빠른 여자들’은 언제,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자면 이 논의에서 로코코 시대의 살롱은 매우 중요한 결절점을 이룬다. 알다시피 근대적 지식은 개방과 공유를 특징으로 하며, 중세의 동업조합식 지식계보나 소림이니 무당이니 하는 문파별 무공의 비전(秘傳)이 주술적 밀의성(密意性)을 갖는 것과 뚜렷하게 변별된다. 병적으로 자신의 연구결과를 숨기려 했던 뉴턴을 일러 ‘마지막 주술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지적 보호권을 제도화하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적 행태야말로 업그레이드된 중세화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식의 사회적 개방과 공유라는 측면에서 로코코 살롱 문화는 주목할 만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궁정 살롱에 기원을 둔 17~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살롱은 새로운 문화 시대의 징후와 징조를 한껏 배태한 곳이었다. 비록 시대적인 한계와 조건 속에서 운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18세기에 만개한 로코코의 살롱들은 그 잠재적 개방성과 평등성에서 근대의 지식인 문화를 공론화, 활성화시키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물론 최소한 18세기 중후반까지 살롱을 휘감고 있던 귀족적 형식과 아우라를 벗어버릴 수 없었고, 지식은 귀족계급간의 사교라는 매개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다. 가령, 살롱 문화를 귀족적, 인위적이라고 공격하면서 대신 일반 서민의 자연적 상식에 직접 호소하려 했던 루소를 통해 그 반작용의 일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실상 19세기에 들면서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대대적으로 성업하기까지 지식은 신분제에 바탕한 인정투쟁의 맥락을 끌밋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유통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롱은 지식의 공론화와 신분의 평등화를 통해 부르주아 지식인 문화를 기초짓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팅커(Chauncey Tinker)의 표준적 평가처럼, 살롱 문화와 더불어 “귀족의 혈통보다도 기지, 지성, 인물됨이 사회적 성공의 열쇠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샤틀레 부인과 볼테르가 활동하던 18세기, 프랑스의 살롱들은 재기가 번득이는 소수의 여성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적 담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나아가서, 귀족 출신이 아닌 여성들마저 자신의 지적, 문필적 재능에 의지해서 각자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었다. 요컨대, ‘당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말까지 빠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는 일’에 관한 볼테르의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에밀리 샤틀레는 ‘당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말까지 빠른 여자’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 독보성을 증명하는 호사가적 일화들은 적지 않고, 그것들은 여전한 남성 지식인 사회 속에서 잉여의 빛을 발한다. 그러나 연인-동무라는 관심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진리와 계몽을 향한 둘 사이의 공동 작업이다. 남여의 관계가 공사(公私)로 나뉘거나, 심지어 사감이 공의를 허무는 것이 예사인 현실 속에서 이들이 체현한 연정의 생산성은 사뭇 무서울 정도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시레이(Cirey) 성의 연구소에 2만1천여 권에 이르는 책들을 사들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일개 대학에서 구비한 도서관 장서와 맞먹는 규모였다. 도박빚을 갚기 위해 책을 쓴 도스토예프스키와 달리 그녀는 도박의 재능으로 책을 사 모으기도 했던 것! 오직 200년 후의 보부아르-사르트르 커플만이 견줄 수 있을 재기와 도도함과 생산력으로 무장한 이 세기의 연인들은 서가를 종횡으로 누비며 형이상학과 철학, 신학과 도덕, 물리학과 역사학, 성서비판과 관용의 이론, 그리고 수없이 많은 편지와 문학 작품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이 지적 토대 위에서 그리고 연인-동무 관계의 현명한(!) 열정 속에서 그들은 당대 최고의 문학적, 과학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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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도(流民圖)와 다산의 시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마음이 없이 쓰는 시는 시가 아니다”(不傷時憤俗非詩也)라고 했던 다산,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없이 지은 시는 시가 아니다”(不愛君憂國非詩也)라고 했던 다산, 그래서 ‘음풍영월(吟風詠月)’이나 ‘담기설주(譚棋說酒)’하는, 즉 바람이나 달을 읊고 장기나 바둑을 두며 술이나 마시는 이야기를 시로 읊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던 것이 다산의 시에 대한 견해였습니다.

젊은 시절 다산은 경기도 몇 개 고을을 염찰(廉察)하는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참담한 농민들의 실태를 읊은 눈물겨운 시를 지은 바 있습니다. 「적성촌 마을에서 읊은 노래」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 “멀리 정협(鄭俠)의 유민도(流民圖)를 본받아다가, 새로 시 한 편 지어 임금께 바쳐볼까”(遠摹鄭俠流民圖 聊寫新詩歸紫
)라고 하여, ‘유민도’를 거론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민도란 송(宋)나라 때의 훌륭한 벼슬아치인 정협이 백성들의 고달파하는 참상을 보다 못 견디고, 그들의 떠도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임금께 바치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큰 가뭄까지 겹쳐 비참한 농민들이 유리걸식하던 때에 백성들의 소원이 풀리 듯 가뭄에 단비가 내렸고, 임금도 백성들의 참상을 실감하여 신법을 폐지하여 백성들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뒤 다산은 ‘굶주리는 백성의 노래’라는 ‘기민시(飢民詩)’를 지어 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백성들의 굶주리는 모습에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여는데, 그 시를 읽는 평자(評者)가 “이 시야말로 바로 유민도로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산은 언제나 시를 지으면서 마음속에 ‘유민도’를 상상하며 지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참담한 백성들의 실상을 그림으로 그리듯 핍진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적 수법을 시를 짓는데 적용하였던 것입니다. 요즘 반FTA를 위한 농민들의 투쟁을 TV에서 보며 ‘저게 바로 유민도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다산이 살아계시면 어떤 시를 지었을까도 생각해보고, 요즘 시인들은 왜 유민도 같은 시를 짓지 않는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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