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인간

2-4 김태우


 거미는 배우지 않아도 거미줄을 칠 줄 안다. 나비는 하늘을 날 수 있고 지렁이는 흙을 파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히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이다.

 

 그러나 독수리는 배우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사자는 사냥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심지어 인간은 식사법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답게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지구상에 뿌리 내린 진화의 나무에서도 높은 가지를 차지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 그들이 저급한 거미보다 더 바보일까? 어째서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지 못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가 우리들에게 생존의 수단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진화한 생물 일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곧 필요한 것을 타고나기 보다는 외부에서 충당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오랑우탄은 개미핥기처럼 혓바닥을 길게 변화시키지 않는 대신 나뭇가지를 사용해 개미를 먹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런 도구가 없어도 살아 갈 수는 있다. 그러나 환경을 이용하는 또 하나의 짐승인 인간은 그야말로 쥐뿔도 없다.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주둥이도 작다. 손톱도 약하다. 육체적인 능력 역시 그저 그렇다.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은 없으면서 다른 것을 이용하는 기술은 경이롭다. 침팬지, 오랑우탄, 수달, 이런 것들과 비교하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다. 

 

 필요에 따라 스스로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 남의 것 뺏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애써서 온몸에 털을 기르는 것 보다 다른 개체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 더 좋다. 모시옷, 밍크코트, 실크모자, 악어가죽팬티, 골라잡을 수 있다. 애써서 이빨을 강철같이 만드는 것 보다 강철을 캐서 무기로 만드는 것이 더 좋다. 청룡언월도, 간장과 막야, 카타나, 듀란달, 엑스칼리버, 골라잡을 수 있다.

 

 보다 경제적이기 위해 나무를 태워 쇠를 녹였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세웠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파괴를 불러 왔다. 더 큰 힘을 가질수록 더 큰 파괴가 따라온다. 나는 인간의 문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기 때문에 본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웃기는 소리다. 사자는 생태계의 올바른 순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도 없이 잡아 죽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바탕 뛰고, 배부르게 먹고 나면 편히 쉬어야 한다. 그런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면서까지 금방 썩을 것을 사냥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들에게 냉장고가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겠지. 그놈이 그놈이다. 인간 역시 그럴 만하니까, 그럴 여력이 있으니까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인간은 가만 앉아서 사자 가죽을 구할 수 있다. 음식을 먹다가 맛이 없으면 버릴 수도 있다.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으며 핵폭탄으로 히로시마를 날려 버릴 수 있다. 인간은 짐승을 깔보고 비하하지만 인간 역시 짐승이다. 힘이 있는 데 쓰지 않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힘을 쓰지 않으면 힘이 없는 것과 같다. 힘이 없으면 잡아먹힐 수 밖에 없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그 스스로도 죽을 운명이다. 그건 후라이드 치킨을 먹기 위해선 닭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도저히 항거하기 어렵다.

 

 결국 지구공동체는 언젠가 파멸한다. 지구의 종말 전에 먼저 인간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음 타자가 지구를 황폐화 시킬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해 영원히 죽지 않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인간이 죽는다는 운명에 변화는 없다. 인간은 결국 쇠락한다. 막을 방법은 없고 단지 늦추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그것은 오직 사랑만이 가능하다. 요즘은 동네 개 이름처럼 쉽게 불려 져서 가치가 떨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인 관념이다. 합리적인 발전을 시작하면 심판의 날을 앞당기는 결과밖에는 안 나온다. 때문에 비합리적인 것이 필요하다. 요즘 노인 인구의 증가가 큰 사회문제라고 노인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범죄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강제 노역에 보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돈을 투자해서 야생동물이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거미는 작고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없다. 냉철하다. 힘이 세고 지능이 높을수록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까마귀는 효도를 한다. 코끼리는 다친 동료를 돕는다. 인간은 복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거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파괴를 자행하지만 사랑이 있다. 사랑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필멸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히든카드는 사랑뿐이지 않을까. Love&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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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2-1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쁜 태우. 이 녀석의 광팬이다. "그러나 필멸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히든카드는 사랑뿐이지 않을까. Love&Peace" 이렇게 쓸 줄 아는 녀석을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