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 반대편 6000m 고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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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호 | 나는 지금 칠레 산티아고를 출발해 뉴욕으로 가는 LAN CHILE 530편을 타고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잠시 기착한 비행기는 마추피추 산정을 뒤로하고 잉카와 이별의 악수를 하고있다. 잠시 뒤면 적도를 넘어 카리브의 뜨거운 바다를 지나리라. 이윽고 비행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인공도시 뉴욕에 도착할 것이다.
뉴욕으로 가는 칠레와 페루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무덤덤하다. 이 비행기 안에서 심각한 건 나뿐인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심각할 필요는 없다. 긴 남극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적당히 여행을 즐겨도 될 일인데, 푼타아레나스와 산티아고에서 주섬주섬 사모은 기념품을 어떻게 분배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어도 되는데, 내 머리 속은 복잡하다.
라틴아메키라의 잉카, 아시아의 북한
처음엔 마젤란, 이어 네루다, 다시 잉카의 왕 아타왈파와 정복자 피사로, 이윽고 체 게바라가 마음을 휘저어놓는다. 이들은 남아메리카인들이 자기 역사의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왜 이들이 지구 반대쪽 한반도에 사는 내 마음에 현재화 되어 나타나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잉카의 왕 아타왈파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피사로에게 빌었다. 목숨을 구걸했지만 결국 목메어 죽고 말았다. 길을 닦고 도시를 세웠지만 잉카는 고립되어 있었다. 찬란하고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안데스 산맥이 이 모든 걸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잉카를 생각하면서 자꾸 우리의 반쪽 나라 북녘 땅을 떠올렸다. 21세기가 되도록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라는 거대국가에 맞서는 까닭은? 가난한 인민들과 핵실험, 세계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듯 여전히 혁명을 수행하는 나라.
서양고전음악도, 그 흔한 팝송 하나, 재즈의 엇박자나 레게의 리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나라. 그 자리에 피바다교향악과 장엄한 선율의 혁명가요가 흐르는 나라.
게바라의 꿈은 인민들이 생산과 역사의 주인이 되는 데 있었고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칠레의 아옌데 역시 같은 꿈을 꾸었으나 총을 들지 않고 혁명을 성공시켰다. 네루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수려한 자연만큼 인민을 사랑했고 아옌데의 꿈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좌절된 것으로 보였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뒷돈을 대주고 게바라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던 건 미국의 CIA였다. 칠레의 군사쿠데타를 사주한 것도 역시 미국이었다. 피노체트는 대통령궁에 폭격을 가했고 아옌데는 처참하게 사망했다.
민중가수 하라의 손목을 자른 것도, 네루다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피노체트였다. 그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박정희였다지만, 그 역시 칠레 국민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말로를 걷고 있다.
과거에 매달린 평양, 과거를 망각한 서울
나는 언젠가 평양에서 이런 메모를 남겼다. '평양은 과거를 지나치게 기억하며 살고, 서울은 과거를 지나치게 망각하며 산다'고. '타도제국주의동맹' 80주년을 맞은 평양은 아직 해방 직후의 삶을 사는 듯했다. 반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인해 고통과 불행을 대물림하는 서울은 그런 역사를 빨리 잊어야만 했다. 기억은 곧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민주화를 이뤘다지만 여전히 분단으로 인한 부조리가 살아있고, 세계 일류국가의 수준으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은 그렇지 못하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게바라의 혁명정신이, 네루다의 민중에 대한 사랑이, 아옌데의 깊은 통찰이 필요한 게 아닌가. 잉카의 문명처럼 북녘에서 가꿔온 문화 역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6천m의 고도 위에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2. 21세기, 한반도 분단,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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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호 |
| 남극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칠레 군수송기는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해 두 번 회항했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킹조지섬의 중국기지와 러시아기지를 전전했다. 객식구가 되어 눈치밥을 먹다가 지쳐갈 무렵 우여곡절 끝에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극대륙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저기압대가 남아메리카와 남극대륙 사이의 항로와 해로를 항상 불안하게 한다.
1945년 이후 분단은 한반도에 저기압골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분단은 오히려 맑은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나는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행운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감히 선언했다. 그 이유로 나는 인류사에 평화의 모델을 만들어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여기에 우리의 행운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건 북녘 땅이 간직한 때묻지 않은 자연이다.
북녘을 보며 환경생태국가를 꿈꾼다
세계의 소비양태는 미국을 닮아간다. 미국은 세계자원의 절반을 소비하는 국가다. 이미 그 패턴은 일상화되어 변할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인도·중국 같은 인구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소비양태를 닮아가고 있다. 지구와 인류는 곧 자원부족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인류는 새로운 소비질서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북녘 땅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환경생태국가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남북경협을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유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런 이유로 도로확장과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먼저 이야기한다. 굴지의 세계기업이 개성에서부터 신의주까지 8차선 도로를 놓아주겠다는 제안을 한 일도 있다.
어떤 인도적 지원 단체는 백두산 삼지연공항에 피치(석유를 분류한 뒤에 남는 검은색의 고체나 반고체로, 도로포장 공사나 전기 절연재 따위로 쓴다)를 보냈다. 환경단체의 한 간부가 피치의 환경파괴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 단체는 그 경고를 무시했다.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남쪽 사람들 입장에서야 북이 그 길을 걸어야만 잘 살게 될 거라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가 않다. 북이 꼭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지나야하는 이유는 없다. 오래된 도로를 간직하고, 정보통신이나 문화산업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주로 국가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정보통신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국제적 성과를 획득하고 있지 않은가.
각 나라들이 남극에 기지를 두고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국의 국토는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의 문명들처럼 생태파괴로 인해 자멸하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 일환이 교토기후협약, 남극조약 같은 것들이다.
뉴욕의 야경이 찬란하다. 언젠가 세계의 야경을 보여주는 지도에서 불꺼진 북녘 땅을 본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북의 전기사정을 생각하며 마음이 쓰라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불 꺼진 북녘 땅이 남겨놓은 것만큼 남쪽의 사람들이 초과의 소비를 할 수 있었다고. 이제 남북이 힘을 합쳐 불 꺼진 그 땅을 잘 지켜야 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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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의 지의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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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함부로 밟지 마라 남극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극에 모든 예의를 다했는지 뒤돌아본다. 너무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연재를 마치며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남극처럼 냉정하게, 차차 그 빚을 갚겠노라고, 눈보라처럼 거칠게 약속드리며 시 한 편을 바친다.
존재의 말
여기 이 자리에서 오백년 밤에는 바위와 연애하고 가출한 햇빛이 아주 가끔 돌아와 키를 재곤 돌아갔다
나, 함부로 밟지 마라
바위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눈보라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않는다 너의 눈빛은 호기심에 가득 찼구나 키만 재고 돌아가라.
* 남극 지의류는 8년에 0.5㎜가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