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는 미안하다.

 

 이 판화를 보면 양정자씨의 '학교 꽃밭을 가꾸며'라는 시가 늘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도 지금 잡초를 뽑듯이 한 마디 말과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아이들을 서서히 압살시키고 있지나 않은지... 그러면서도 그 '잘못'은 매일 매일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구조를 벗어나야 이 '원죄'는 그만 둘 수 있는 것일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4-09-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꽃밭을 가꾸며

긴 겨울 오르렸던 사지 활짝 펴고
운동장 가득 뛰어노는 아이들
그 힘찬 함성에 놀라
부푼 꽃망울 덩달아 활짝활짝 터지는 학교 꽃밭
매화, 철쭉, 목련, 산수유, 산당화, 앵두꽃, 배꽃
.....
그 눈부신 꽃나무 그늘 아래 숨어서
나즈막히 자라나는 이름 모를 잡초들
차디찬 땅 밑에 숨죽여 엎드린 채
긴 겨울 견뎌낸
저 맵고 끈질긴 새파란 생명들
가만 들여다보면
이제 작은 풀꽃망울 눈물처럼 아련히 피어나
한없이 안쓰럽고 어여쁘구나
풀꽃은 꽃 아닌가
몇몇의 큰 나무 꽃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늘 작은 풀꽃 무참히 뽑아 내던져버린
여지껏 내가 해온 학교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

몸 속에 흐르는 뜨겁고 사나운 피
정녕 못 다스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가죽 허리띠 채찍질에
왼(온?)몸이 구렁이 감기듯 멍든 채 방에 갇혀도
문 부수고 또 가출해버린
쇠비름처럼 맵고 당찼던 우리 반 향숙이
제 부모도 선생도 모두 포기해버리고
잡풀 뽑아 내던지듯 마침내 퇴학시켜버린 때처럼
그 어린 잡초들 뿌리째 뽑아내며 꽃밭에서
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진다.

양정자, [아이들의 풀잎노래], 창비시선 114,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4-09-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그마한 거미에게도 먼저 다가서는 이 감성.. 거미와 나는 평등한 '생명'의 관계다. 그리고 어쩌면 매일 나는 다시 못 볼 무언가를 무심히 스치고 지나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눈부신

가을꽃처럼

누구나

반짝이는

별빛이지

당신도

나도

누구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리영희' 교수의 책은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머리도 마음도.. 그러다 보면 몸까지 고단해질 것 같아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삶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아보려는 욕심이었다. (아마 지금도 이 욕심은 나의 일부이겠지만)

이 책은 나처럼 직접 '리영희'교수의 저작들과 부딪히기 전에 미리 만나봐도 좋을 책이다. 그 책들이 너무 진지하고 난해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면 우선 이 책을 보시라 권하고 싶다. 우리 현대사의 큰 굽이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헤쳐나온 그의 정직하고 우직한 삶이 강준만씨의 방대하고 적절한 자료들과 함께 잘 녹아들어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리영희 교수의 삶이 나의 삶에 기준을 세우고 또 나를 다잡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몇 달 전 부장 선생님께 '결벽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가장한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더니 그런 평가가 돌아왔다. '평가'에 민감한 교육을 다년간 받아온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런가? 이건 지나친건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런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우선이라면 나를 굽혀야 하나? ' 최근까지도 이런 의문들이 머리 한 구석에서 나를 흔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답이 명확해졌다. 나를 굽힐 일이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끄덕인다고 나도 함께 그럴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과의 대화는 그 다음에 해결할 문제다.

그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우상'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현실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우상,  '시대적 한계'라는 우상... 그러기에 그는 낭만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실적 불가능'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자신에게 너무나 엄격하고 솔직하다.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하기 힘들다. '지식인'이라는 딱지가 자신의 단점과 무지,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리영희 교수는 언제나 '투명한 창'과 같이 자신을 열어두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하며 발언하고 실천, 행동하였다.

이제는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시계추가 끊임없이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듯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며, 결국은 균형을 찾아가면서 살아야겠다. 한쪽 날개를 접는다던가 오른쪽으로(혹은 왼쪽으로) 가기는 싫어 그자리에 우뚝 서버린다면 이미 날지 못하는 새, 쓸모없는 시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티나무 2004-08-3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으로 리뷰를 썼네요. ^^;;

느티나무 2004-08-3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되신 거 축하드려요. 샘은 금방 될 줄 알았다니까요. 뭐, 기초가 탄탄한 분이시니까.

해콩 2004-08-3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올린 건데 그새 보셨어요? 샘 리뷰, 저도 읽었지요. 막 흥분해서 쓴.. ^^; 사실 쓰기가 힘들어서 자꾸 고치게 되더라구요. 잘못 쓰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막 들어서 말이죠. 제 멜을 확인하셨나요? 워낙 경품 이런 거 안 걸리는 인물이라 약간 흥분되기도 하고... 이벤트.. 고민해봐야겠어요. 반 아이들을 상대로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죠?

해콩 2004-08-3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초...그냥 막 써버리는 게 제 '기초'이지요.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놔서요. ^^ 하지만 글도 쓰다보면 늘겠죠? 그게 서재를 만든 목표 중 하나예요. 그럼..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뵈어요. 이벤트는 아무래도 아이들 상대로 하는 것이 좋을 듯 해요. 랄라~~
 

"언어는 단지 의사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그렇게 건조한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아주 축축한 것이다. 축축함이란 것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바탕에서 나도 모르게 배어들어 있는 것을 지니고 있는, '나'라는 개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선험적인 내용을 지녔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 말을 할 때, 그 말한 상대가 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돈이 있거나 힘이 있을 대, 그 우월한 상대방의 언어를 대등하고 능숙하게 쓰게 되기 전에는 항상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과 알제리 지식인들도 프랑스, 영국 사람들과 대화할 때, 똑같은 걸 느꼈다. 폴 니잔이라는 지식인이나 알제리의 유명한 독립 이론가 프란츠 파농 같은 경우도 같은 말을 했다."

 

강준만편저,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개마고원, 2004, 29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4-08-3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번에 프란츠 파농의 전기를 읽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았어요.^^

해콩 2004-09-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파농.. 알제리 민족(독립)운동(이론)가, 읽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영화도 나왔던 것 같은데... ^^ 샘 읽으신 전기는 어느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