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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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으면서 강렬한 시! 그러나 요즘 아이들, 연탄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혹시 사진이나 그림으로 본 건 아닐지... 세상이 변해 동일한 대상을 함께 공감할 수 없다는 건 약간은 슬픈 일이다.

해콩 2004-09-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을까? 내게 뜨거웠던 사람은?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밀 물살로 알아듣고

몇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수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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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경샘이 좋아하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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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순희 샘이 좋다고 소개해준 시. 약간은 소녀같은 정서. 이 시를 읽으면 70~80년대 허름한 찻집에서 연신 출입구를 쳐다보는 그 역시 허름한 청년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그 자리에 나를 앉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왜일까?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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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여고 2002년 윤인숙샘이 우리 학교로 오셔서 처음 모임하 던 날, 이 시를 읽어주셨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마음에 담았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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