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하루에 두 명씩 꼬박꼬박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 첫날!  강지 얼굴이 살짝 스친다.


내게는 가끔 말도 못걸게 새침하지만 친구들과 까불 때는 더없이 밝은 표정... 눈빛... 다정함.. 그게 니 진짜 모습이지?


너를 본 처음 기억은 이것이었어.. 너희가 막 2학년 올라왔을 때, 내가 너를 보고 '아~ 저 녀석이 울 반 1번이구나. 성이 나랑 같네. ' 이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 어느날.. 니 친구-12반 현주이지 싶은데-가 우리반에 놀러와서 너랑 교탁앞을 지나가며 너를 갈구고 있었거든... 내가 장난 건다고 "우리 강지 괴롭히지 마라야~"이렇게 한마디 했더니 니가 *꼴이라는 표정으로 이랬지. "장난치는 건데요.. " 그러고는 팩~ 가버렸단다. 휘이잉~ 썰렁한 바람이 불고 민망해져서는 누가 봤을까봐 두리번 두리번..  치 기집애 이쁘면 다가? 쌀쌀맞기는.. 원망... ㅠㅠ



그 후로도 비슷한 경험 두어번..  그 후론 솔직히 네게 편하게 말 걸기가 쉽지 않더라. 아이들에게 교사는 너무 먼 존재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거나 단순히 명령하고 지시하는 대상이기 쉽상이라 친해지기 정말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늘 먼저 다가서는 용기가 필요했어... 그건 정말 용기란다.



그러던 어느날 너의 그 편지를 받았단다. 언제쯤이었더라.. (한 번 뒤져봐야겠다. ㅋㅋ 지금 막 찾아서 다시 읽고 왔다. 내 생일 축하 기념 멜이었더구나. 6월 23일이군.. 다시 봐도 행복하다. 너는 기억도 안나지? 내 답장은 어땠더라..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어쨌든 니가 보낸 편지에 비해 아~~주 긴 답장이었어. 보관해둘걸..없다..보내줄래? 보내줘!!) 그때 정말 행복했단다. 아~ 강지는 이런 성격의 아이구나. 특별히 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선생'한테는 쉽게 맘을 못 여는, 아주 솔직한 그런 아이구나!! '선생'한테 쉽게 맘을 못 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 나도 그랬거든.. 그 후로는 네게 일부러 친한 척 앵기는? 짓을 안 하게 되었단다. 그냥 지켜보는거지. 다행히 너는 워낙에 스스로를 잘 단도리하는 스타일이라 내가 뭐 특별히 챙겨줄 것도 없이 지금껏 혼자 잘 해내고 있지. 샘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늘 그렇게 묵묵히 니 길을 열심히 가는 니가 대견하고 듬직하다.



니가 언제 젤 이쁜 줄 아니? 친구들이랑 까불고 놀 때야. 내가 개입?하지는 않지만 다 보이거든. 그때 니 표정이 진짜 표정이지? 사실 처음엔 걱정을 좀 했지. 저렇게 뾰족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서로 상처주고 받고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아니더구나. 그래서 나는 빠져도 되겠다 생각했어. 조금 섭섭하지만.. 너희랑 늘 함께하는 그런...  '선생' 아닌 '샘'이 되고 싶거덩..  '교사의 몸'으로 아이들과 맘을 주고 받는 인간적인 관계를 바라는 것, 나의 과욕일까?



지난 달 축제 때, 니가 공연 못해서 맘 상하면 어쩌나 걱정했단다. 그렇지 않아도 어른에게 적개심( 특히 교사에게ㅋㅋ)가지고 있느 우리 강지가 이번 공연 못하면 교사 쳐다보지도 않겠다 생각했지. 다행히 공연은 올릴 수 있었고 나는 니가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아니길 바라지만..)으로 볼 수 있었네. 미안해.. 나도 꽃 한송이라도 준비해서 주고 싶었는데 그 날은 교사공연에 넋이 나가서(연습을 너무 못했거덩...그래도 나 잘 했지? ㅋㅋ)  다른 생각을 전혀 못했지 뭐야. 우리 반 애들 공연 꽤 올라갔는데. 그 공연을 다 공짜로 보다니.. 미안하다. 점수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안타깝고... 에잉...



강지... 거의 올해도 마무리 되는 이 시점.. 1년동안 별로 샘 애먹이는 일 없이 열심히 생활해줘서 고맙단다. 지금 이런 당부, 너무 빠른 것도 같지만 3학년이 되어서 우연히 나를 만나면 '남'보듯이 그냥 스쳐지나가지는 않겠지? 그러면 정말 맘이 아플 것 같아. 짝사랑.. 그것도 40명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 정말 힘들거든.. 조금만 내게 앵겨주면 안될까?  맛난 것도 사달라고 하고 투정도 부리고.. 물론 니 스타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이런.. 교사가 학생에게 앵기는 모양이라니.. 추하다!! 추하니? ㅋㅋ



아마도 너는 니가 원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거야. 내년에도 올해 만큼만!! 지금도 너는 충분히 예쁜 학생이니까!! 올해 만큼만!! 아자!! 늘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2004. 12. 6. 11시 50분에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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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의 답장

ㅋㅋㅋㅋㅋ

학기초에요???????제가그랬나요;ㅎㅎ

아참;ㅋㅋ 부끄럽네요;

(그래서 건방지단 소리도 꽤 들었어요;ㅎ)

 

한문셤공부하다가  잠시컴앞에앉았어요 이놈의한문시험은 벌써4번째면서도 어떻게 나올지 아직도 감이 안잡히네요 ㅋ;

솔직히,,, 샘에 대한 제 태도,,눈빛,,(눈빛에 민감한 쌤 ㅋㅋ)

요즘도 학기초나 다름 없지않나요?

그게 잘 머 생각대로 안되네요^^; 

언제부터 성격이 이래 모가 났는지 ㅋㅋ

 

그래도 쌤 말대로 2학년 끝나고,,반이바껴서 3학년 되도

복도에서 쌤보면 반가운척(ㅋㅋㅋㅋㅋ)인사할게요ㅎ

인사했는데 쌩까시면 상처받아서 그담부턴 몬해요~!!ㅋ

 

ㄱ럼 이만 다시 한문공부하러갑니다

프린트 4장 외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쥐선생?

아 쥐 이야기 싫어요

다외워야할까요?

안외워야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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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보기만 해도 춥네요..


그러면서도 속이 시~원한 느낌..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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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뒹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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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을 컴앞에 앉아있다. 휴일인데 TV도 거의 안보고 집밖에도 안나가고.. 계속 붙잡고 있던 시험문제를 이제 막 닫았다. 내일 학교 가서 이원목적분류표 만들고 다시 한 번 점검만 하면 될 듯하다.


시험문제 내는 거, 아주 즐거운 작업인데 이번에는 별로 재미가 없다. 문법적인 내용이 많아서..  좀 어려울까 걱정이 좀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늘 평균이 70점 정도는 나온다, 심하게 잘 나올 때는 여학생 이과반이 90점에 육박하기도 한다. 남학생은 다시 한 번 짚어주고 여학생은 자습시켜야겠다.


수행평가 점수도 확인시켜야하고 내일은 샘들과 논어도 읽기로 했다. 13장 자로편.. 이번에 읽은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다섯수레-에 '제자'라는 제목으로 자로와 공자의 삶을 다룬 소설이 있었다. 논어, 공자가어, 사기, 춘추좌씨전 등 많은 전적들을 참고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아주 현실감이 있고 논어 읽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공자가 너무나 아끼던 안회보다, 재능이 출중하던 다른 어떤 제자들 보다 자로가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신념있고 우직하고 솔직하고.. 공자 역시 결국엔 그런 자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했으리라... 자로가 살해당하고 젖깔로 담궈졌을 때, 공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두 사람 모두 역사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아직까지도 이렇게 그 존재감을 더하고 있다. 이런 스승과 제자 사이... 아주 멋있을 것 같다. 사실 나중엔 누가 스승인지 제자인지 구분이 안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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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12-06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논어 읽기 수업은 좀 더 밝고 진지할 것 같아요. '자로'는 어떤 사람인지 얼릉 공부해야지^^;; 저녁에는 심하게 쌀//쌀//.... 조심해서 오시와요@~

해콩 2004-12-1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희샘.. 빌려드린 책은 읽으셨나요? 자로라는 어리숙한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셨는지... 저는 안스러우면서도 부러웠어요. 공자의 자로에 대한 이해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고 있죠?
 

시집이 세 권이라니... 배부르다.


박형진,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 비평사, 1994.


이시영, [만월] 창작과 비평사, 초판 1976. 개정판 1996.


이시영, [바람 속으로] 창작과 비평사, 1986.


 


1986년 발간된 [바람 속으로]는 90년대 나온 두 시집과 활자체가 다르다. 옛날 책들은 이렇게 정감 넘치게 판을 짜고 식자해서 찍어냈다. 매끈매끈해서 미끄러질것 같은 요즘 책들의 글자들과는 다른 느낌.. 이 활자들은 지금 어느 창고에서 먼지 뒤집어 쓰고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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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12-06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시집을 접하고 그런 느낌이 드는 해콩님의 감수성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시를 읽고 즐기는 기쁨.... 만끽 하시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