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세상

                                         - 도종환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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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에서


                                    - 이시영


 


눈 덮힌 겨울숲은 아름답다


찢어질 듯 무거운 눈송이들을


온몸으로 버팅겨 인 채


따로따로 모여서서 거대한 침묵을 이루는


겨울 산이 더욱 좋다


나도 이제 내 몫의 침묵을 안고


돌아서야지


저 살아 있는 마을의  떨리는 불빛들 속으로


 


[바람속으로], 창작과 비평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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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야자감독 당번이다. 아침부터 "오늘 야자 시간에는 뭘 쏠까?" 생각하다가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고구마 호떡이 생각났다. 한 개 300원. 별로 비싸지도 않고 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파니까 애들한테 부탁해서 사오라 하고 감독하면서 나눠주면 애들이 윽수로 즐거워하겠지~ 잠깐 건강에도 좋은 귤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에는 '호떡'이 제맛이다.



마침 외출을 신청하는 녀석-남고, 앙쉬레, 삐차, 예리링, 그리고...늘 마지막 한 명이 생각이 안난다. ㅠㅠ-도 있어서 부탁했다. 감독 한 번 돌고 교실로 갔더니 교탁 안에 넣어둔 호떡이 냄새를 잔뜩 피우고 있다. 살짝 꺼내서 한 개씩 돌렸다. 금돌은 빨리 달라고 계속 보채고... 다 돌리고 나도 교탁 앞에서 한 개.. 고구마 호떡 한 입 물고 고개 들어 아이들을 보니 모두들 오른 손에 펜을, 왼손엔 동그란 호떡을 들고 있다. 25명이 동시에.. 정말 웃기고 귀엽고... 웃음이 절로 났다. 사진 찍어두고 싶은데... 나중에는 호떡 꿀물이 질질 흐르고.. 휴지찾고 화장실 가고.. 학습 분위기 엉망... 그래도 동그란 호떡 물고 빙글빙글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자화자찬을 금할 수 없다.



서로 가족같은 분위기.. 조금 시끄럽고, 조금 말 많아도..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그렇게 소중한 10분을 우리는 함께 보냈다.



이 아이들.. 3학년이 되어서 '우리 2학년 때 담임이 노는 거 너무 좋아해서 우리들 내신도 엉망이고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고 나를 원망할까? 사실... 그래도 할 수 없다.  막연한 미래만큼이나, 아니 현재도 못지않게 소중하고 나도, 아이들도 '바로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씰이 말대로 '언젠가는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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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써니 : 우리 써니는 아주 부드러운 아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눈을 싸늘하게 내리깔고 '효과가 없으므로 절대로 절대로 안하겠습니다. 혼자 조용히 학원 다니고 독서실 다닐래요' 한다. 옆반 쌍둥이 동생이랑 담합?했는지 그 녀석도 평소에 안그러는데 이번에는 끝까지 뻗댄다고 *현*샘이 골치아파한다. 나는 결국 빼기로 했는데... 어쩌지?


3번 뽀 : 실용음악 학원에 다니면 초등학교 때부터 한 가지 길만을 꿈꿔온 우리 뽀는 자신이 가야할 대학과 과는 정해두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은 생각해본 적도 없단다. 실기로만 승부할 거기 때문에 공부는 별로 신경안쓰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기에는 녀석도 너무 단호하고 명확하다.


6번 깨비 : 집이 김해인 깨비.. 녀석의 말로는 학교까지 오는데 2시간, 다시 돌아가는데 2시간 걸린단다. 겨울 새벽엔 날도 춥고... 시간도 아깝고.. 들어보니 또 그렇겠다싶다. 게다가 녀석은 스스로를 암팡지게 관리하는 스타일이라 혼자서도 잘 해나가리라는 믿음도 있어서 은근히 맘이 약해졌다.


7번 개미 : 아픈 곳도 많고 욕심도 많은 우리 개미.. 방학때는 병원도 다녀야하고 인천 있는 아버지께도 다녀와야하고 또 결정적으로 단과학원 중심으로 공부를 할거라서 보충까지 하기에는 부담스럽단다. 시간적인 면에서나 금전적인 면에서나.. 학교 보충수업은 강사를 선택할 수도 없어서 솔직히 효과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8번 연지 : 너무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어서 사랑스러운 우리 연지.. 12월 2일 산업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12 미달이 : 2학년 올라와서 미술을 하기로 한 우리 미달이.. 겨울 방학때 학원에서 서울의 유명한 미술 선생님을 모셔다가 수업을 하기로 했단다.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수업인데 오전에 한단다. 그리고 미달이도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 난 데다가 집안 형편도 쉽지 않다. 어머니께서 과수원 일을 보고계신데 올 해도 실패란다. 동생들 학비에 지 병원값, 약값.. 학원비... 보충수업도 십만 육천원이다. 부담스럽겠다.


13 은행 : 은행 역시 가정형편이 쉽지 않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단다. EBS 방송보고 문제지 풀고 교과서로 기초 공부하고... 결정적으로 어려운 집안 일, 어머니 일도 도와야 한단다.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우리 은행 울껄..." 했더니 정말 그 예쁜 눈에서 눈물이 두두둑 떨어진다. 못할 짓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 삐차 : 고집쟁이 우리 삐차.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이런 교육이 체질이 아니란다. 1학기때 야자 뺐을 때보다 2학기 때 야자 억지로 하는 지금, 성적이 훨씬 더 떨어졌다면서 자기는 혼자서 알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란다. 학교 보충에 회의도 많단다. 돈도 아깝고.. 그런 이유로는 빼줄 수 없다고 부산에 있을거면 '다' 해야한다고 했더니 부산을 떠날 거란다. 울산에 또 작은 집이 있는데 거기로 달아날 거란다. 황소고집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아이에게 더 무슨 말로 설득해야하나. 강압이 아니라면...


18 안쑤 : 오늘 학원 작품 문제로 내게 말도 않고 일찍 가버리는 바람에 상담도 못했지만 안쑤는 지금도 보충, 야자 전부 안하고 있다. 담임으로서 성적이 걱정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제꼈다. 안할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일로도 늘 힘들어 한다.


24 승마이 : 가끔 째려봄으로 나의 가슴을 선뜩선뜩하게 말들어 주는 승마이.. 엄마 친구 아들래미가 인제대학교 다니는데 방학동안 '공짜로' 과외를 시켜주기로 했단다. 집에 전화하는 것을 소름돋도록 싫어하는 우리 승마이가 엄마한테 확인해도 된다고, 이야기 다 끝났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32 띠실이 : '발상의 전환' 띠실이의 전공이다. 학교 근처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오전 중으로만 학원 시간이 짜여있단다. 학원을 좀 바꿔보면 안되겠나고 했더니 명륜동이나 동래까지는 너무 멀고 힘이 들어서 엄마도 집 근처에 다니라고 했다고.. 그리고 단과 들을거란다.


35 보노보노 : 의외의 적수 우리 보노보노.. 역시 '절대로'를 남발했다. 평소에 아주 순한 녀석인데 이렇게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절대로'를 연발하고 있다. 심지어는 '직업반 갈 아이들 몇 몇 빼고 전교생이 전부 다 하라고 학교에서 억지로 시키면 할게요. 내 사정도 내 입장에서는 가장 절박한 것인데 담임샘 판단에 따라 누구는 빼주고 누구는 안빼주고 이러면 너무 속상해요'한다. 사실 우리 보노는 말 잘듣는 유순한 아이로 지금까지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 야자.. 이런 거  한번도 빼 본 일이 없는 그야말로 착실한 아이다. 그래서 늘 억지로 했는데 하고 나면 늘 후회가 남았단다. 자기가 열심히 안 한 잘못도 있겠지만 솔직히 학교 보충은 도움이 안되더란다. 이번 마지막 겨울방학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단다. 아이들의 대안은 단과반 학원과 독서실이지만 학교 보충수업에 이렇게까지 피해의식이 있는 아이들 또 윽박질러서 '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6 정반장 : 10월쯤엔가 우리 반장이 나를 찾아와서는 하는 말 "샘, 꼭 대학 가야되요? 저, 대학 안가리로 결심했어요. 저는 미용으로 성공할거예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국가미용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봐야하는데 학교 공부랑 같이 해내는 것을 정말 힘들어 한다. 중간고사 기간에도, 요즘 기말고사 기간에도 우리 정반장은 미용기능사 자격증 필기시험 공부를 한다. 내년엔 연지랑 같이 산업학교 가려고 원서를 넣어두었다. 손가락이 벗겨지도록 인형 가발에 구르프를 말고 있는 이 아이!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거 격려해주는 것 말고 내가 또 무얼 할 수 있을까? 아! 한가지 있다면 기능사 시험 있는 날 공결 결재 받아주는 것!


37 쭈꾸미 : 집안 사정 때문에 방학동안 제천 이모댁에 가 있어야 한단다. 이모가 국어, 한문 교사라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을 거란다. 확실한 이유!! 이런 것이다.


그외에도


14 지얌이, 25 아나이.. 와도 이야기 했다. 녀석들은 기특하게도? 나의 입장? 봐서 하겠다고 한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철이 빨리들고 눈치가 빠른 이 아이들은 학교의 생리와 권력구조와 그 속에서 즈들 담임인 내가 얼마나 힘들 줄을 눈치 긁고 알고 있다. 내 상담 내용도 그랬다. '나 너무 힘들어~ 도와줘~ ' 이 무슨 부끄러운 ... 아이들에게 내가 상담을 당했고 녀석들이 결국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14명을 몽땅 빼주기로 결심하고 부장샘께 우리 반의 힘든 사정을 마구 부풀려서 이야기하고 돌아섰을 때,  '담임의 입장'을 고려해서 하겠다고 한 이 녀석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솔직히 내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우리 아나이 왈 "아~~ 잘 해낼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아나이는 하기 싫어서 지가 하겠다고 선택했던 보충을 밥먹듯이 도망다니고 야자는 2학년 올라와서 거의 한 일이 없는 '자유로운' 아이이다. 지얌이도 2학기 때 두어달 야자를 하고 있을 뿐.. 보충도 자주 빠졌다.. ) 겨울에 날마다 일찍 일어날 자신도 없고.. 그래도 할께요, 샘!  샘 말대로 나도 공부해야지요. 우리 반 보충 안한다는 아이들 디게 많지요? 내가 내일 학교 가서 애들 설득해볼게요. "  "내가 설득해도 안되는데 니가 한다고 될까? 한다고 하면 내가 자존심 상하지.. 긜고 아이들 이유가 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 ㅠㅠ 지얌이는 전화가 안되네. 우짜지? 물어봐야 되는데" "에이 샘~ 지얌이하고 저는 할께요. 지얌이한테는 제가 말할 거니까 그냥 하는 걸로 해주세요" 우리 아나이 보면서 내가 참고 기다리길 무조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할 때 녀석의 눈빛을 보면서 느꼈다. 잔뜩 경계하던 1학기, 봉사활동 중이나 특별실 수업 안가고 교실에 있다가 나한테 걸려 야단맞을 때 나를 보던 그 눈빛과는 사뭇 달라졌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깊은 눈빛이다. 지얌이도... 이 아이들... 많이 자랐다.


42 금돌 : 금돌은 공부가 하고 싶다 했다.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방학 때면 아빠가 늘 입원하셔서 그 뒷바라지 해야하고 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것이 문제다. "내가 너에게 '투자'할께. 나중에 나에게, 그게 어려우면 다른 힘든 사람에게 되갚아주거라" 했다. 그리고 "대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자" 했다. 기초가 약한 금돌은 수업내용을 알아먹을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기초는 혼자서 따로 공부하고 그러다보면 보충 수업 하면서 점점 알아듣을 수 있게 될거라고 말해주었다. 열심히 해서 내가 '학생들을 믿은 것이 잘 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늘 아이들을 믿는 교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금돌...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그 약속은 녀석의 지금 각오만큼  잘 안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금돌이 스스로 공부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 자체가 내게는 소중하다.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결국, 14명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아니 처음 15명에서 26명까지 늘였으니 성공으로 평가해야 하나? 방학보충 수업.. 아이들이 과목을, 교사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획일적으로 하는 수업이니만큼 아이들을 설득할 충분한 명분이 우리에겐 없다. 들어보면 늘 아이들 말이 맞다. 120시간에 십만육천원... 부담스러운 액수이며, 즈들 약한 과목 단과학원을 수강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4주를 투자해야하니 예체능을 선택하는 아이들에게는 시간도 부담된다. 무엇보다도 학습효과면에서 아이들은 부정적이다.. 민주적으로 아이들 의사를 들어주는 담임 노릇은 정말 힘들다.. 이번 만큼은 좀 강경하게 대처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건만 결국 아이들에게 졌다. 나는 늘 지는 담임이다. 왜? 아이들 말이 즈들 입장에서는 다 너무나 절실하니까.. 이야기를 안듣는다면 몰라도 듣고 나면 오히려 설득당하는 쪽은 늘 '나'이다. 지금으로선 아이들 생각대로 다들 유익한 방학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일만 남았다.


다른 반 선생님들께 솔직히 죄송하다. 다른 반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작은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내가 힘들고 내가 늘 지더라도.. 아울러 아이들이 선택한 것은 또 스스로가 책임지도록 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어차피 사람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선택이 잘못되어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와 좌절 속에서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니까.. 결국은 그것이야말로 주체적인 삶의 밑거름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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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2학년 담임 회의를 했는데 "빠지는 아이 없이 다~ 하는 걸로 합시다"

이렇게 어떤 샘이 말씀하셨고 저는 고개 숙이고 다른 일 하는 척 하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안하게 되면 다른 반 아이들에게 소문이 퍼질거고 또 그것이 이유가 되어 다른 담임샘들께 부담의 될거니까...



오히려 우리 부장샘께서 "그저 최선을 다 합시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고..(저희 부장샘은 권위적이시지 않아서 제 주장이나 제 입장을 아주 많이 이해해주시려는 조합원 샘이십니다. 비록 건널 수 없는 강은 있지만요.) 개인적으로 '아이들 입단속'을 부탁하셨습니다.



아이들 입단속은 제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례 시간에 쉬는 시간 마다 번호 순서대로 내려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1교시 마치고 교무실로 왔더니 우리반 써니가 저를 기다리다가 복도로 막 나오고 있었지요.



녀석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따지듯이..

"좋다. 써니야. 니는 내가 빼주께. 대신에 느 쌍둥이 동생은 꼭 하도록 해라... 원래 하는 게 원칙인데 니랑 내랑 이상한 거다.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에 선생인 죄로 그렇다. 너 때문에 니 동생이 그 반 담임샘께.. 니 이야기 하면서 저도 빼달라고 하면 니도 해야되는 거다.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이 나도 싫지만, 솔직히 나도 너무 힘들다. 다른 부담은 내가 질테니까 니 동생은 니가 감당해라. 느그 둘 다 하덩가, 니가 동생 이해시키고 니만 빠지덩가.. 둘 중에 하나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건 동생이랑 그 반 담임샘이 이야기해서 결정할 문제잖아요?"



우리 써니 말. 맞는 말이죠? 너무나 맞는 말이죠! 그러나 이 상황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도 이정도는 해야지.. 이런 식의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단호하고 엄하게 이야기하는 내 태도에 놀라고 또 서러웠는지 우리 써니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습니다. 눈물..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내가 설득해서 억지로 하기로 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개인적인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담임 윽박 들어가면서 '다른 반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것으로 거짓말 하지않으면 안되는' 그렇게라도 보충 빠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아이들의 자유.. 보장해주어야하는데... 당연히 빠질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죄인취급해야합니다.

억지로라도 '다' 해야하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왜 이렇게 '미안'한 대상이 많은 걸까요?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인 죄로.. 나는 늘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입니다.

늘 죄를 짓습니다.

글샘 2004-12-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을 앞두고, 남들은 방학이 있어서 교사들은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요. 모든 학생들이 다 하는 거로 합시다. 이런 인간 꼭 있습니다. 100시간 하자 하면 120합시다. 이런 인간 어디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머릿수로 액수가 결정되는데 우리 반만 적으면 그것도 고민이지요. 뺄 놈 빼고 나면, 사실 학교보충수업은 무너지는 거지요. 공교육이 살아나려면, 이런 무식한 짓부터 좀 안 해야 할텐데요... 인문계 담임은 무식하게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이들이 도망갈 생각 안 하게 하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사정 다 봐주면, 아예 안 하니만 못하지요.
 

추석 전에 니가 준 편지 방금 막 읽고 왔어. 역시 재미있다. 아이들이 준 편지 곱씹으며 읽는 것.. 


편지에 니가 '추석이니까 용돈 달라'고 한 내용이 있더라. 흠~ 그것도 좋겠다 싶어서 내가 용돈 줬잖아. ^^ "선희가 용돈 달라고 해서 주는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기억나니? 거금 200원씩!!이나 줬더랬지!! ㅋㅋ 그날 생각난다. 사실 큰 돈도 아니고 우리반 전부해서 8천원 들었는데 그 돈으로 너희들이 누린 작은 행복과 그에 대해 내가 받은 감사가 훨씬 더 큰 것 같아서 기분 좋고 행복한 하루였단다. 근데 갑자기 궁금... 써니는 그 돈으로 뭐했니?


하고 싶은 것이 무척 많은 소녀, 우리 선희... 고민하던 꿈과 목표가 정해졌는지 미처 물어보질 못했네. 늘 상담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시간이 정말 안 나네. 학교 가면 어찌나 바쁘고 정신이 없는지 시간이 금방금방 가버린단다. 일과 후에도 샘이 늘 좀 바빠서 말이야. 이놈의 인기는 나이를 먹어도 사그러들 줄을 모르네... ^^; 이렇게 살다보니 2학기 때는 상담을 한 번도 못했네. 솔직한 심정은 너희들 한 명 한 명이랑 무릎 맞대고 미소지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교정에 느티나무 예쁜 잎 남아있고 아직 햇빛 따뜻할 때.. 그러고 싶었는데 벌써 12월이야. 단체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는데 우짜지?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샘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줄래? 아마도 지금쯤은 대충 써니가 하고 싶은 일의 윤곽이 잡혀있지 않을까? 혹 그렇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는 말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돌아보니 지난 1년동안 우리 착한 써니에게 샘이 제대로 챙겨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진짜야. 사실이야~ 그래도 우리 써니 너무 착해서 늘 같은 자리에 성실하고 착한 모습으로 있어줘서 마음 속으로 고마와하고 있단다.  남은 시간동안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 


당부 하나.. 이건 모든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건데... 내년에 말이야~ 느그들 3학년 됐다고 복도든 교무실에서 샘 만났는데  쌩까고 가버리면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할거다. 알지? 나 집요하고 쫀쫀한 거!! ^^;  인사도 하고 맛난 것도 사달라고 앵기기도 하고 그렇게... 적당한 친한 척~ 알지?


마지막으로 사과 하나.. 10월이었나? 지영이 아파서 집에 갔을 때, 너도 야자 빼달라고 왔었는데 내가 매몰차게 거절해서  속상했지? 보내줄걸 생각하며 후회도 했단다. 그치만 그때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넘 많이 빠지겟따고 해서... 부담팍팍!! 이었지. 아이들이 그러는데 그때 너 울었다며? 에잉... 보내줄걸.. 미안해.. 그래도 요즘 지영이 보니 아프지도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하던데...  ^^


쌍둥이 너희 둘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예쁜 모습, 건강한 모습, 착한 마음... 쭉~ 알지?


2004. 11. 7. 0시 30분이네... 2-9 담임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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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의 답장

안녕하세요~^^ㅎㅎ 메일온지가 오래 됬는데도... 이제서야 읽고 답장드리네요~''죄송죄송!ㅋㅋ

제가  컴퓨터는 잘 안하거든요~ 티비는 광인데~ㅋㅋ

요새 시험이 끝나서 넘우 조아요^^  내려갔지만..

진짜  한만큼 나온거 같애요~  인정!ㅋㅋ 

아! 글고  생일수첩에 적은 말씀 잘 읽었어요~^^

너무 미안해하지마세요~  저도 미안하단말이에요...;;;ㅋㅋ

전  벌써  잊여버렸답니다...ㅋㅋ 썜도 어여~~!!

선물 받으면 저금통이 더 좋을줄 알았는데...

수첩이 훨씬~~~더 좋더라구요..!! 정말 좋아요~^^

빨리  방학됬으면 좋겠어요~ 이제부터 진짜 열공!!

이떄까지 한거는 아무것도 아닌거 같아요~!!

방학 끝나고 돌아올떈 꼭!!  달라져서 돌아올꺼에요~!!

(이렇게 말해놓고 안 바뀌면;;;;ㅎㅎ)

썜 말대로 열공도 하고 놀러도 갈꼐요~ 제가 노는곳엔 안빠

지거든요..ㅋㅋ 썜도 열공하시고~ㅎㅎ 데이트도 하시고~ㅎ

짜자자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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