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국의 모든 상품이 1센트에 판매되는 1센트 가게에서 백만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발견한다는

1970년대 한 미국 노래의 가사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그만큼 가능성 희박한 곳에서 뜻밖에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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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힌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 비평사. 19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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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 막 올라갔을 때, 성균관 앞의 어느 찻집에서 화선지에 적힌 이 시를 보고 그저 무작정 좋아서 샀던 시집이다. '눈사람'이라는 시를 찾기위해 거의 십년만에 펼쳤는데...그렇게 '어렸던' 시절에도 이런 시를 좋아하다니.. 스스로 놀랍다. 교사가 된 후로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내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이 시집을 손에 넣은 그때 이미 징조를 조금씩 보였던 것은 아닐까...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가난, 결핍, 아픔.. 그런 '슬픔'들일까?
 

눈사람


사람들이 잠든 새벽거리에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 하나
그친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품은 칼을 꺼내어 눈에 대고 갈면서
먼 별빛 하나 불러와 칼날에다 새기고
다시 칼을 품으며 울었습니다.
용기 읽은 사람들의 길을 위하여
모든 인간의 추억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눈사람이 흘린 눈물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며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그친 눈을 맞으며 사람들을 찾아가다
가장 먼저 일어난 새벽 어느 인간에게
강간당한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오가는 눈부신 아침거리
웬일인지 눈사람 하나 쓰러져 있습니다.
햇살에 드러난 눈사람의 칼을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서 가고
새벽 별빛 찾아나선 어느 한 소년만이
칼을 집어 품에 넣고 걸어갑니다.
어디선가 눈사람의 봄은 오는데
쓰러진 눈사람의 길 떠납니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 비평사.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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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1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여년 전에나 읽었을 이 시의 제목과 시인이 왜 갑자기 생각난 걸까? 지금 읽어도 이 시는 약간 섬뜩하다. 희망을 너무 처연하게 읊고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 시를 왜 갑자기 기억하게 된 걸까? 그리고 이 시는 왜 나의 머리 속에서 십여년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걸까?
 

더 조그만 사랑노래

 

아직 멎지 않은

몇篇의 바람

저녁 한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空中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황동규, [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사. 1993.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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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송이 눈.

 

황동규, [삼남에 내리는 눈], 민음사, 1993.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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