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고통속 15년을 떨었는데
그 아이를 꼭 철창에 가둬야 하는가
[기고]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 정신세계 허물어지는 응급상황
  오마이뉴스(news)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휘둘러온 알콜중독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 졸라 살해한 여중생 이주연(15·가명)양의 선처를 호소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와관련 정신과 의사 겸 칼럼니스트인 정혜신씨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술 먹구 찾아와 때리구... 이양의 아버지는 이양이 다니는 학원까지 찾아가 폭력을 휘둘른 것으로 드러났다. 3월 10일 이양의 일기장에는 '술 먹구 찾아와 나 때리구'라고 적혀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가끔 상담실에서 가정폭력의 몸서리치는 사례를 접한다. 그 끔찍함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짐승같은 인간들이 휘두른 폭력의 잔인함과 피해자들이 겪은 상시적(常時的)인 공포의 실체를 자세히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아버지를 살해한 자식의 심정이나 남편을 죽인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해한 강릉 여중생 사건을 보며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와 동시에 통증을 느낀다. 백일이 지나고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계속해서 짐승같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15살 소녀의 끝간데없는 공포와 절망감을 말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아이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체포해 구속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실정법의 근본정신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구속상태가 아니면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가.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풀어줄 수 없다는 법의 관행 때문인가. 감정적으로 말하면 관할 경찰서와 검찰청 유리창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을만큼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고 있는 실정법의 집행자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적극적 의지는 없었더라도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소위 미필적 고의 따위의 사법적 판단을 적용해서 아이를 '가두어 놓고' 조사를 벌이는 경찰과 검찰의 모습은 희극에 가깝다. 법률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신의학적 차원에서 그렇다.

이양에게 살인죄를 물어선 안된다

정신과 의사의 처지에서 결론부터 말하자. 이양에게 살인죄를 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치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극악무도한 실험자를 죽이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온 이에게 '상황은 이해하지만 살인에 대한 죄과는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일처럼 무지하다. 생체실험의 비유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노출된 이들, 특히나 저항할 힘도 또 거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조차도 알 수 없는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꼼짝없이 묶인 채로 생체실험을 당하는 것과 같은 지옥의 고통이다.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는 사람 조차도 1년 내내 고문자와 한 방에서 지내지는 않는다. 극단의 가정폭력은 잔인한 고문기술자와 한 방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정적 과장이라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지만 피해자를 한번이라도 만나 그들의 얘기에 기울여 본 사람은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권력의 고문은 실체가 분명하지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짐승들은 '드러나지 않는 고문자'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에겐 더 공포스럽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동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심장이 터져버릴만큼 두근거리는 아이에게 가정이란 고문실의 또다른 이름이다. 소설가 유재현은 그의 소설에서 다혈질 고문자를 만난 피고문자의 공포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고문할 때 드러나는 사내의 광기가 실수로 그의 의지를 뛰어넘어 그를 죽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박달나무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며 그의 머리에 부딪힐 때나 그 사내가 분에 못이겨 책상을 뛰어넘어 목을 조를 때, 얼굴에 덮고 물을 부은 수건의 그 천근보다 무거운 무게에 눌린 심장이 터질 듯이 발악을 할 때마다 그는 매번 그런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실수로, 실수로 살아 나가지 못할까봐.”

여중생 이양도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아버지의 실수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길가다 느닷없는 폭행을 당하면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여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지만 가정폭력의 경우는 문제가 좀 다르다. 얼마전 극악무도한 부모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로 몇 년동안 계속해서 걸핏하면 밥을 굶겨서 가두고, 담뱃불로 지지고 바늘로 온 몸을 찌르며 학대하다가 마침내 아이가 죽는 바람에 그 일이 세상에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기 전까지 그 어린 아이는 자신이 겪은 학대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엄마에게 맞았다’라는 정도로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듣는 사람들은 ‘엄마가 괜히 그러셨겠니?’ 하는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양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 중에도 ‘아빠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그랬겠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반응들이 눈에 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비행 구름을 만들며 날아가는 초고속 제트기의 속도가 집앞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나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타인의 경험을 멀리서 여유롭게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가끔 부모에게 꾸중을 들으며 살아가는 보통의 아이들과 이양의 고통의 차이도 거기서 거기다.

아버지가 술마시고 심하게 행패를 부린 날 저녁에 '오늘은... 음.... 힘든 날이었다'고 일기장에 적으면서도 바로 다음 줄에는 '무엇 때문에 견디기 힘든지 그걸 모르겠다'며 '난 너무 바보같다' '내가 죽어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히 나은 생을 사실텐데'라고 생각하는 이양은 만성적인 폭력과 학대로 인해 현실검증력이 붕괴되는 과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문자의 잔인함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죄의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전방위 폭력의 완성판이다.

▲ 이양은 아버지가 술 먹은 날을 일기장에 표시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법은 법이므로 지켜져야 한다고?

그럼에도 일부 네티즌들은 법은 법이므로 지켜져야 한다거나 죽은 아버지도 패륜의 대가를 받았으므로 아이도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패륜을 조장할 수 없다는 단호한 어조도 눈에 뜨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의 본질은 ‘아무리 미워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이 말이 되느냐’와 같은 부모, 자식간 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혹은 인간이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작동이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적, 철학적 명제에 대한 고민에 더 집중해야 마땅하다.

늘상 세간을 때려부수고 같이 사는 자기 부모(아이의 조부모)와 딸을 상시로 구타하고 4살난 딸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던 아빠와 살아온 아이, 술먹고 학원에 와서 친구들 앞에서 딸을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리는 아빠와 살며 ‘너무 창피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되뇌이던 아이. 아빠가 어쩌다 배를 타고 일하러 나가는 날이면 ‘아빠가 없으니까 너무 좋다. 너무 마음이 놓이고. 언제나 이랬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하던 아이.

이렇게 15년을 버텨온 아이에게 ‘네가 더 참았어야 할 것 중에 너의 모자람으로 인해 참지 못한 부분은 벌로써 책임을 져야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과연 아버지를 죽인 그 아이의 순간적 충동은 그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었을까.

정신의학에서는 외적 스트레스와 연관되어 발생하는 불안장애를 적응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나눈다. 스트레스 강도에 따른 분류인데 생활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촉발된 불안장애라면 '적응장애'에 속하고 인간이 감당하기 거의 불가능한 극단의 스트레스로 인해 촉발된 불안장애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속한다.

예를 들어 전학을 한 아이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증세 등을 겪는다면 이것은 적응장애이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아니다. 전학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심리적 긴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스트레스 상황이긴 하지만 전학하는 대부분의 학생에게 불안증세를 유발할 만큼 압도적인 스트레스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심리적으로 소화해내는 개인차가 존재한다.

그에 반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개인차가 별 의미가 없다. 이때의 스트레스는 정신의학에서 ‘catastropic level'이라고 따로 분류한다. 파국적(catastrophic) 상황이란 ’같은 스트레스에도 개인에 따른 저항력에 차이가 있다‘는 인간의 개별화에 대한 보편적 상식마저 여지없이 뭉개버릴만큼 압도적이다. 파국적 수준의 스트레스란 그런 상황에 놓이면 아무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예외없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재앙적 상황‘을 일컫는 개념이다.

강간을 당한 여자는 아무리 평소에 낙천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든 정신적 내상을 입는다. 여자는 강간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돌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이 당시 옆에 탔던 아이가 말하던 “엄마, 숨 막혀”같은 소리를 지금까지도 환청으로 듣는 현상은 그가 원래 성격적으로 예민했던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파국적, 재앙적 경험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길 기대하는 것은 당사자에겐 2차적 폭력이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나 그로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있는 생존자에게 “바로 그 시각에 전철을 탄 것은 결국 너 자신이 아니었느냐”면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개인적 책임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끔찍한 폭력인가. ‘파국적 스트레스' 개념을 개인의 의지가 완전히 압도당하는 저항불능의 스트레스라고 규정하는 정신의학적 인식을 법률의 영역으로 환치해본다면 이양에게 개인적 책임을 묻는 일은 부당하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뇌단층촬영 연구에서도 증명된 것처럼 단 한번이라도 파국적 충격에 노출된 사람은 뇌기능에 심각한 변화가 올만큼 결정적 상처를 입는다. 만일 한번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파국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면? 15년 동안을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온 아이를 살인혐의로 철창안에 가두어 놓고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이양을 풀어주는 일이다. 시민단체들이 구명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주위사람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여론때문이 아니다. 15살 소녀에게 도주의 위험이 있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 '우리 아빠 술 먹는 거 정말 맘에 안든다'고 적혀있는 이양의 일기장.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정신세계 허물어지는 응급상황... 일단 풀어주는게 급선무

희대의 살인마라도 구속 중에 맹장염정도의 응급상황만 발생해도 먼저 수술를 한 후 생명을 살려놓고 조사를 진행하는 게 상식이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판단하기에 지금 이양은 정신적으로 맹장염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급상태에 빠져 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격과 아버지 없는 세상에 대한 안도감 등으로 분열되어갈 아이의 심리는 지금 바로 치료되어야 할 위급한 질병 그 자체이다.

15살 소녀의 정신세계가 대책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응급상황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 죄가 있다고 볼 것이냐 아니냐 따위의 한가로운 논의가 아니라 그 아이의 치명적인 심리적 내상을 치료하는 일이다. 아무리 법률적 검토는 경찰과 법원의 몫이라지만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일에 대해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법률적 갑론을박을 되풀이하는 것은 죄악이다.

아마도 이양은 지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건강이 어느 정도인지 매우 불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으로 절망을 넘어 심리적 마비(psychic numbness)가 왔을 가능성도 높다.

▲ 정혜신씨
이양은 자신이 유일하게 기대어 왔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매우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고 친구들과 선생님이 자기를 어떻게 여길까 생각하면서 날선 칼에 심장이 베이는 통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양은 ‘신은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다’는 자기암시로 삶을 지탱해왔지만 세상에는 신도 견디지 못할 일이 있다. 이양은 지금 바로 구속상태에서 풀려나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적 환경에서 충분한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모든 조사와 논의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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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아이
펄 벅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고, 내 욕심으로 그것을 재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할지 나로서는 난감하다. 하물며 그 대상이 '감정'을 자극하는 관계라면 '그저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욱 힘든 작업이 되어버린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은 더욱 그러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어머니도 자녀가 '보다 힘든' 삶을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무한한 사랑의 힘이라는 이름하에..

이유도 제대로 모르는 채 '자라지 않는 병'을 앓는 아이의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에 대한 소박한 기대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에 대한 죄의식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 삶의 무게에 눌려 서서히 소진해 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일 듯 하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대지'는 중학교 때 문고판(당시 마당문고 판 소설책을 좋아했다. 1,500에서 2,000원 정도의 저렴한 그러나 알찬!)읽은 책이다. 펄벅도 특이한 이름 덕분에 외국작가 이름 외우기에 젬병인 나도 한 번 까먹지 않고 지금까지 기억하는 몇 안되는 작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여성. 이것이 내가 펄벅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이가 자라지 않는 캐롤이라는 딸을 가진 어머니였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딸을 '잘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씌여졌다다는 사실도 몰랐다. 게다가 50년도 더 전에 여러 종류의

계속 생각했던 것은 정신적인 장애를 앓는 아이들 뿐만 아이라 소위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 역시 일정부분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행복한 상황에서만 학습이 가능하며 장애가 있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어른들은 아이에 대해 조금씩 욕심을 비워낼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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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 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억눌린 슬픔은 씁쓰름한 뿌리처럼 삶에 박혀서 사람을 병들고 우울하게 하는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내는 시작일 뿐이다.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 속에  묻고 있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브라우닝(영국의 시인)이 말하듯 돌을 호수에 던지면 수면은 갈라져야만 한다. 돌을 다시 밀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고 해서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망하고 탄식하는 데 힘을 다 쏟아붓지도 않았다. '왜'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지도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나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아이 생각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삶에 순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견디기조차 힘든 삶이다. 그렇지만 중심을 조금만 옮겨도, 쉽지는 않지만 슬픔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다정하게 대하긴 했지만 쉬지 않고 아이에게 연습을 시켰고 열의가 지나쳐서 좀 엄격해질 때도 있었다. 그 날도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려고 아이의 조그만 오른손을 쥐었는데, 아이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느 흠칫 놀랐다. 아이의 양손을 잡고 벌려 보앗는데 두 손이 모두 젖어 있었다. 나는 그때 아이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나를 위해서, 오직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서 무엇인지 이해도 하지 못하는 일을 따라서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는 일어나서 책을 모두 치워버렸다. 아이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을 가르쳐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엄청난 노력을 들이면 책을 조금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을 쓰는 법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글을 써서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악은 즐겁게 들을 수 있지만 아이가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사람이다. 이 아이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아이의 행복은 아이가 이해하고 기능할 수 있는 세계에 살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가서 고양이랑 놀자."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조그만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기쁜 표정을 띠었다. 그 얼굴을 보니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행복이 아이의 환경이 되게 해주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 대한 기대, 긍지도 모두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다만 흐릿한 아이의 정신에 어떤 빛이 반짝일 때 감사하기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 아이의 집을 마련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정신과 마음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이,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삶을 완성해 주는 데에서 틀림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자기 아이들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 부모들도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아이들일지라도 인류를 위해서는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기쁨에서 뿐 아이라 슬픔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건강에서 뿐 아이라 질병에서도, 뛰어난 재능에서 뿐 아이라 장애에서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역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이 정점에 달하는 것은 풍요속에서가 아니라 극도의 빈곤속에서 더욱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체념은 의지를 잃고 포기하는 것이고 아무런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체념하지 않고 언젠가 아이의 성장을 멈추어 버린 그 알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한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와 내 아이의 삶을 바치는 것이다."

“인간으로 대한 것 뿐이죠”

 

“행복이 있으면 다른 것은 저절로 따른다. - 아이의 정신과 마음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아이에게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감정은 지능과는 무관하다.”

 

"또 다른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이 아버지의 아들은 소를 돌보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나는 이 친구를 몇 번 보았는데 참 잘생긴 청년이다. 그는 목장의 축사에서 일하면 젖소를 돌본다. 깔끔하게 빗질을 해주고 예뻐해준다. 어느 날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착유기 사용법을 배운 걸 보면 더 나은 일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날 교장도 나오 함께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 아이에게는 그 이상 나은 일이 없습니다. 모르시겠어요? 우리 각자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은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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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2집 - 琉璃假面 (유리가면)
김윤아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girl talk

 

열일곱 또는 열 셋의 나

모순 덩어리인 그 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 하고 싶어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 거야

울고 웃고 느끼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은 위선에 가득 차

너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그 곳을 향해

달려, 달려,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 해도

너의 힘으론 무리였지.

더딘 하루하루를 지나

스물다섯,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답은 알 수 없고

세상은 미쳐있을테지.

그래,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치며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남진 않으리라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 거야.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 거야

사랑도 미움도 널 더욱 자라게 할 거야

마음 안의 분노도 불안도

그저 내버려두면 넘쳐 흘러 갈 거야

라~

라~

열일곱 또는 열 셋의 나

상처투성이인 그 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사랑한다 말 하고 싶어.

라~

라~

 

 

열일곱 또는 열셋 나이의 딸아이들에게 정말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이 가사를 보며,

그리고 내용애 맞춤한  그녀의 음색을 느끼며

어떻게 김윤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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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5-05-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의 노래는 다 좋아요. 흠~~ 이 노래.. 가사 나눠주며 아이들에게 들려줬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어요. 맘에 드는 가사에 밑줄 그어보라했더니 여학생들은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 거야."이 부분에 가장 줄을 많이 그었구요, 남학생들은 "그래 난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치며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남진 않으리라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이 가사가 맘에 든다하더군요. 또 수업시간에 다소 힘들게 하는 아이는 부정적인 가사에 밑줄이 많고.. 뭔가 상관관계가 있는 듯도 해요.

릴케 현상 2005-05-3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밑줄 긋기가
ㅋㅋ 그럴싸하네요

해콩 2005-05-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아이들은 "라~" 이 부분에 밑줄 쫙~ ㅠ.ㅠ
 

[마더 테레사] 세상에 사랑을 전염시키다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인간의 존엄2 - 마더 테레사]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섬긴 ‘20세기 성녀’ 마더 테레사

에피소드 1: 어느 날 그가 콜카타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몸을 굽혀 그의 발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젊은이가 말했다. “오늘이 내 결혼식날입니다. 지난날 걸식을 하다가 굶어죽게 됐을 때 나를 데려다가 간호해주고 치료해주셨어요. 그래서 몸이 낫고 새 생명을 얻었어요. 그 뒤 구두닦이가 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됐어요. 마침내 오늘 결혼까지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착한 일을 한 때는?


△ 세상에 사랑을 전염시킨 마더 테레사. 그의 활동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성을 띤 채 계속되고 있다.

에피소드 2: 나병과 피부병의 권위자인 센 박사는 큰 병원에서 정년퇴임한 뒤 그를 찾아왔다. 나의 모든 경험과 능력을 살려 당신을 돕고 싶다고. 보수 같은 것은 전혀 필요 없다고. 센 박사는 마침내 그와 함께 콜카타에서 가장 가난한데다 가장 기피되는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합류했다. 편안히 여생을 즐기며 살아도 될 의사가 빈민굴에서 남은 능력과 정열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에피소드 3: 스위스의 보르슈트라르트 부부는 그가 하는 일을 알고 나서 가난한 인도의 어린이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이미 부부 사이에는 세 자녀가 있었지만, 계속 아이들을 품어나갔다. 처음에는 사비타라는 심리장애가 있는 여자아이를, 그 다음에는 네팔에서 태어나 콜카타에서 방황하던 마야라는 7살짜리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그 뒤 다시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아이를, 그 다음에는 임신 중 수면제 복용으로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를 입양했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인도 산중에서 사고를 당해 손과 발을 모두 절단한 쿠마리라는 소녀를 입양한다.

에피소드 4: 종교적인 오해로 적의를 품게 된 힌두교 학생들이 떼를 지어 그가 활동하는 장소로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폭력사태나 파괴행위가 벌어질 듯한 상황이었다. 학생들의 지도자 격인 한 학생이 그와 동료 수녀들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들어와 둘러보았다. …한참 뒤 밖으로 나간 그 학생은 동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을 여기서 쫓아낼 수는 없다. 단, 하나의 조건, 만일 여러분의 어머니나 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매일 이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면 그들을 쫓아내도 좋다.” 학생들은 말없이 돌아서 흩어졌으며 두번 다시 오지 않았다. 수녀들은 거기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몸에 구더기마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는 걸인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씻기고 약을 바르고 먹여주고 수발들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로 나오는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살아 있는 성인’ ‘20세기의 성녀’로 불리는 마더 테레사다. 그의 삶에 대해 읽다 보면 문득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내가 마지막으로 착한 일을 한 게 언제쯤이지? 그리고 그게 무슨 일이었지?’

그러면서 그렇게 묻는 게 왠지 자연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랑이 전염됐기 때문일까? 마더 테레사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써 세상에 사랑을 전염시킨 사람이다.


△ 콜카타의 빈민들을 돌보는 마더 테레사. 그는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겼다.

말이 쉽지, 실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지금껏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극히 짧고도 단편적인 경험 한두 가지를 보자. 네팔 카트만두의 허름한 노동자 합숙소 같은 데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공동 화장실 겸 세면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냥 대변이 구덩이에 떨어지는 우리 옛날식 화장실 같은 데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화장지가 없었다. 낭패스러웠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사람들은 화장지를 쓰지 않는다. 왼손으로 닦고 물로 닦는 정도다.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기 때문일까, 세면장 벽과 바닥도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고 곳곳에 대변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가 덜덜 떨렸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빈민들이 사는 데랑 비교하면 상전 중의 상전이다. 거긴 어디 물이 나오는가? …산골마을 비슷한 데 갔을 때는 또 어땠는가. 어둠 속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화장실 같은 데가 없었다. 헛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변은 참고 소변을 논 가장자리 같은 데 실례했다. …이튿날 깜짝 놀랐다. 아낙 하나가 바로 내가 오줌을 눈 그 자리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소중한 식수원에 오줌을 누고 있었던 것이다! …빈민들과 함께 사는 것, 아니 그러면서 그들을 섬기는 것을 평생 실천한 마더 테레사를 읽으며 내 머릿속으로는 그런 장면들이 느리게 하나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마더 테레사는 1910년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건축가의 3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 밑에서 자녀들은 가톨릭학교를 다니며 유복한 성장 과정을 거친다. 테레사는 18살 때 아일랜드의 로레토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이듬해 인도로 들어가 교단이 운영하는 콜카타의 성 마리아여고에서 17년 동안 지리교사와 교장으로 일한다. 그러다 1946년 ‘열차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뒤 인도의 빈민가로 직접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길고 지루한 절차를 거쳐 어렵게 교단의 허가를 받아낸 뒤 기초적인 의료기술 등을 습득하자 1948년 빈손으로 콜카타의 빈민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몸부터 씻긴 뒤 벵골어와 산수, 재봉을 가르쳤다. 대부분 힌두교도인 인도 사람들의 오해와 적대감을 극복하면서 점차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된 그는 학교를 더 늘렸다. 성 마리아여고의 제자들도 그의 활동에 합류하고 후원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빈민가의 어려운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의 활동영역은 곧 질병을 앓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 버려진 아이들, 나병환자처럼 기피받는 악성 질병자들로 확대됐다. 무료진료소,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인 ‘니르말 흐리다이’,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집인 ‘사슈 브하반’, 평화의 마을인 ‘산티 나가르’ 등이 잇따라 문을 열고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독립교단인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가 설립되고, 그 연장선에서 ‘사랑의 선교 수사회’(Missionaries of Charity Brothers)도 결성된다. 사랑의 선교회는 그 뒤 전세계 120여개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전세계적으로 4천여명의 수녀들이 참여해 빈민봉사 활동을 벌이는 규모로 발전해나간다. 한 수녀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섬긴다는 결심를 한 뒤 50년도 안 되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 올리비아 허시(가운데)가 주연한 영화 <마더 테레사>의 한 장면.

마더 테레사의 공로를 인정해 1979년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 어느 일에서건 자신을 내세우기를 바라지 않는 테레사 수녀는 이때도 수상행사의 연회를 열지 않고 그 비용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쓴다는 조건을 달고 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 상금 19만2천달러 전액을 나환자 구호소 건설기금으로 내놓았다. 상을 받을 때도 ‘사랑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받았다. 그렇게 인류에게 깊은 감동을 남기는 삶을 살던 마더 테레사는 1997년 심장병으로 눈을 감았다.

알렉산드리아와 마더 테레사

마더 테레사의 일생은 이런 특징을 지닌다.

1. 좋은 부모의 좋은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생활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와 함께 자녀들에게 독실한 신앙생활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정의 생계를 훌륭하게 이끌어갔을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막내딸의 수녀 서원과 인도에서의 선교활동을 지지해준다.

2. 늘 소명에 순종하며 전 생애를 매진했다: 테레사 수녀는 처음 수녀가 될 때부터, 선교활동을 위해 인도행을 결심하고, 인도에서도 안락한 수녀원을 나와 빈민가에서 직접 봉사를 하기로 결심할 때까지 늘 소명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심한 이후에는 전력을 다해 그 실천에 매진하는 방식으로 전 생애를 살아나갔다.

3. 스스로 낮아지라, 가장 낮은 이를 섬겨라: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고…”라는 예수의 말에서 마더 테레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근본주의적 원칙을 세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바로 예수 자신인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 한다. 예수 자신인 가난한 이들을 섬기기 위해 스스로 낮아져 가난한 이를 찾아가야 한다. 이 근본주의적 원칙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4.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 독실한 가톨릭인 그가 가톨릭의 틀만을 고집했다면 곧 한계에 부닥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테레사는 종교를 가리지 않았으며, 봉사의 대가로 가톨릭을 선교하거나 교리를 전달하는 방식을 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진정한 인도인이 되기 위해 인도로 귀화했다. 나아가 그가 가난한 이들을 섬기기 위해 다른 이들의 지원을 얻는 방식은 탁발 등 전통적인 인도 방식을 그대로 본뜨고 있다. 그는 더 큰 틀에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라는 논지를 펴면서 종교를 설명하지 말고 행동이나 헌신을 통해 신앙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득한다. 오직 사랑의 깊이만이 신앙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혼자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의 힘: 마더 테레사는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활동의 문을 늘 열어놓았으며, 그런 자세를 기초로 사랑의 선교회를 전세계로 확대해나갔다. 그리고 그 활동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성을 띤 채 계속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을 탄생시킨 땅에서 알렉산더의 죽음 2300여년 뒤 마더 테레사가 태어났다. 알렉산더는 그 숱한 죽음을 몰고 온 전쟁을 치르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70여개를 남겼다. 마더 테레사는 그와 달리 자신의 영혼이 깃든 조직 ‘사랑의 선교회’를 전세계 120여개국에 남겼다. 과연 알렉산드리아와 ‘사랑의 선교회’ 그 어느 것이 오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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