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 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억눌린 슬픔은 씁쓰름한 뿌리처럼 삶에 박혀서 사람을 병들고 우울하게 하는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내는 시작일 뿐이다.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 속에  묻고 있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브라우닝(영국의 시인)이 말하듯 돌을 호수에 던지면 수면은 갈라져야만 한다. 돌을 다시 밀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고 해서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망하고 탄식하는 데 힘을 다 쏟아붓지도 않았다. '왜'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지도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나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아이 생각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삶에 순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견디기조차 힘든 삶이다. 그렇지만 중심을 조금만 옮겨도, 쉽지는 않지만 슬픔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다정하게 대하긴 했지만 쉬지 않고 아이에게 연습을 시켰고 열의가 지나쳐서 좀 엄격해질 때도 있었다. 그 날도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려고 아이의 조그만 오른손을 쥐었는데, 아이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느 흠칫 놀랐다. 아이의 양손을 잡고 벌려 보앗는데 두 손이 모두 젖어 있었다. 나는 그때 아이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나를 위해서, 오직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서 무엇인지 이해도 하지 못하는 일을 따라서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는 일어나서 책을 모두 치워버렸다. 아이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을 가르쳐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엄청난 노력을 들이면 책을 조금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을 쓰는 법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글을 써서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악은 즐겁게 들을 수 있지만 아이가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사람이다. 이 아이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아이의 행복은 아이가 이해하고 기능할 수 있는 세계에 살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가서 고양이랑 놀자."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조그만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기쁜 표정을 띠었다. 그 얼굴을 보니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행복이 아이의 환경이 되게 해주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 대한 기대, 긍지도 모두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다만 흐릿한 아이의 정신에 어떤 빛이 반짝일 때 감사하기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 아이의 집을 마련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정신과 마음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이,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삶을 완성해 주는 데에서 틀림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자기 아이들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 부모들도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아이들일지라도 인류를 위해서는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기쁨에서 뿐 아이라 슬픔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건강에서 뿐 아이라 질병에서도, 뛰어난 재능에서 뿐 아이라 장애에서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역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이 정점에 달하는 것은 풍요속에서가 아니라 극도의 빈곤속에서 더욱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체념은 의지를 잃고 포기하는 것이고 아무런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체념하지 않고 언젠가 아이의 성장을 멈추어 버린 그 알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한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와 내 아이의 삶을 바치는 것이다."

“인간으로 대한 것 뿐이죠”

 

“행복이 있으면 다른 것은 저절로 따른다. - 아이의 정신과 마음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아이에게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감정은 지능과는 무관하다.”

 

"또 다른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이 아버지의 아들은 소를 돌보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나는 이 친구를 몇 번 보았는데 참 잘생긴 청년이다. 그는 목장의 축사에서 일하면 젖소를 돌본다. 깔끔하게 빗질을 해주고 예뻐해준다. 어느 날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착유기 사용법을 배운 걸 보면 더 나은 일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날 교장도 나오 함께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 아이에게는 그 이상 나은 일이 없습니다. 모르시겠어요? 우리 각자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은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