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부산교사결의대회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연대사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감동받은 내용의 글을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옮겨싣습니다.)

봄은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열몇살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동백꽃처럼 낙화하고 무덤조차 없는 아이들의 뼛가루가 황사처럼 날리는 땅.이 척박한 땅에서도 봄은 과연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새끼들하고 발뻗고 누울 게딱지만한 집을 지키겠다고 살인범이 되어 세시간의 물대포와 최루탄에 생쥐처럼 끌려 내려오던 철거민들.그들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위에서 빛나던 햇살은 얼마나 따사로웠는가.
월남전 파병용사에 해외 산업역군에 60평생 일만 해 온 늙은 노동자가 외친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나를 보아라" 그 외마디 절규에 600명을 연행하고 마흔두명을 구속시키는 걸로 화답했던 참여정부의 곤봉과 군홧발 위에도 햇살은 자애로웠는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집으로 돌아간 텅빈 학교에서 한달 6-70만원으로 당직을 서며 혼자 라면발을 건져올리는 경비용역 아저씨들의 젓가락질 위에도 햇살은 온화했는가.
급식종사원인 엄마와 학생인 아들이 아침마다 가는 목적지가 같건만 단 하루도 함께 등교해 본 적이 없다는 신발공장 해고노동자 정희.
매일 아침 엄마에게 등을 돌린 채 뛰어가는 아들의 그 작은 등에서 잔인하게 부서져 내리던 햇살은 얼마나 찬란했는가.
그 아들을 불러세워 함께 가자 단 한번도 얘기할 수 없었다던 정희는 "난 다시 태어나면 우리 재경이 학교에 선생으로 태어날거야.그래서 하루만이라도 재경이 손잡고 학교에 같이 가보는 게 소원이야"
꺼이 꺼이 울며 술주정마저 서럽던 못난 에미의 눈물 위에도 햇살은 눈부셨는가.

그 정희를 제가 처음 만난 건 그 아이 열두살 때였습니다.
열세살 아래는 취업이 안되니까 이름도 두개였고 나이도 두가지였던 소위 생계형 위장취업자였던 아이.
목표량 달성이 생명보다 중요했던 공장에서 부산 사투리를 잘 못알아들어 조장에게 터진날 밤에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보면 영어를 몰라 미싱사한테 엉뚱한 라벨을 갖다줘서 목덜미까지 손가락 자욱이 선명했던 그 아이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곤 했었습니다.
그 아이의 꿈은 미싱사가 되는거라 했습니다.
우리가 최대한 아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20분이 전부였던 시절.밥을 굶어가며 미싱을 배워 마침내 장군처럼 미싱을 타게 된 정희는 열네살 때 이미 미싱바늘에 찍혀 손톱 두개가 없었습니다.
대학생하고 연애를 하면서 기숙사 삼동에 그 소문이 파다해져서 영웅처럼 의기양양하던 영자를 보면서 정희의 소원은 대학생하고 연애 한 번 해보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영자처럼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고 헷세나 니체같은 책들을 미싱바늘 갈듯이 서로 바꿔가며 끼고 다니다가 밤엔 베고 자고 그랬습니다.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처음엔 눈물이 나다가 나중엔 저절로 욕이 나온다던 그 공순이들이 군복입은 사람들을 보면 처음엔 무섭다가 나중엔 저절로 욕이 나오게 된 게 87년 꼭 이맘때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거리에서 만난 건 영자의 돈도 빼앗고 몸도 빼앗고 꿈마저 짓밟은 사장보다 더 나쁜 대학생이 아니라 또는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 대학생 회수권을 들고 버스에 올라서는 파마 잘나오는 미장원 얘기 부츠 세일하는 얘기나 늘어놓던 한심한 대학생이 아니라 최루탄이 안개처럼 뒤덮인 거리를 질주하던 진짜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준비물을 안 챙겨갔다고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운다고 모내기 하는 날 결석했다고 코피가 나도록 줘패던 수많은 박정희들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던 믿어지지 않는 말씀들을 하시던 여러분들 참스승들이었습니다.
그후로 우리들은 더이상 읽지도 않는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지도 않았고 안내양하면서 삥땅해뒀다가 남의 버스 탈때 마패처럼 내밀곤하던 몇년이 지난 대학생 회수권도 비로소 버릴 수 있었습니다.

16년전 오늘.그 아이들이 얼마나 여러분들을 자랑스러워 했는지 아십니까?
정문 앞에서 부터 쫓기고 쫓기는 숨바꼭질 끝에 부산대학교 기계관 앞에서 마침내 하늘을 향해 오르던 전교조 부산지부의 깃발을 보며 그 아이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아십니까?
16년전 오늘.선생님들을 그렁 그렁 눈물 매달고 지켜보던 그 아이들의 수천마리의 새들의 비상처럼 터져나오던 갈채소리를 아직도 기억 하십니까?
그때 그날 신용길 선생님이 형형한 눈빛으로 읽어가시던 축시를 들은 이후 정희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라 했습니다.
준재를 두고 떠나시는 그 오죽한 순간에도 눈을 세상에 남겨 전교조 합법화의 그날을 보리라던 꼭 신용길 선생님의 현신 같았던 조직.
1500명의 선생들을 학생들마저 폭력혁명의 도구로 삼는 좌경 용공 의식화 교사로 내몰고도 꺾을 수 없었던 조직.
학부모의 손에 머리채가 잡혀 정문밖으로 끌려 나가는 선생님들을 울며 불며 따라오며 선생님들을 돌려달라고 목놓아 울던 아이들을 가졌던 참 행복한 조직.
그 조직을 아이들로 부터 분리해내는 게 이제는 강압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으로 너무나 인텔리스러운 방식의 구조조정이 교원평가제입니다.
수백만개의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 철도 통신 전력 도로 건설 운송 다 휩쓸어버린 신자유주의자들의 오직 단 하나 마지막 남은 미션.학교입니다.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비정규직이니 환영식도 없고 수시로 짤려나가니 환송식을 할수도 없는 수많은 현장들.
아무도 노젓는 법을 나누지 않고 친구의 노를 몰래 부러뜨려 놓아야 내가 강물을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결국 그 강의 끝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이어져 혼자 탄 뗏목으로는 난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처음엔 잘몰랐습니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짤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짤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짤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짤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 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수백만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지만 아무도 자기가 그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이 짜릿한 러시안 룰렛 게임.
이미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지만 아직도 내가 비정규직이 되리라는 걸 예상하지 않는 이제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선이 돼버린 이 스릴 넘치는 치킨 게임.
급식종사원 당직경비 영양사 사서 각종 보조의 이름으로 불리는 학내 비정규직들에게 익숙해진 우리들은 머잖아 하청교사 용역교사에게도 서서히 익숙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미션의 임파서블은 거기까지 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관리자거나 희생양거이나 두 종류만 키워내면 되는 학교에서 아무도 참교육을 말하지 않는 그때까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밀어내는 것도 자본이고 이제와서 아빠 힘내시라고 노래불러주는 것도 자본이고 집도 사고 차도 사야 하는데 당신이 아프면 큰일이라고 걱정해주는 것도 자본이고 사고가 나면 남편보다 먼저 달려와주는 것도 자본이고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본은 이제 안아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과 우리가 공평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영역이 그것들도 죽는다는 사실이었는데 황 박사의 생명 연장의 꿈은 결국 자본 연장의 꿈이 될 것입니다.
상위 10%에 비해 하위 10%의 사망율이 다섯배가 높은 나라에서 노무현이가 보톡스 맞듯이 쌍꺼풀 수술하듯이 줄기세포 갈아 끼우고 죽지도 않고 러시아로 행담도로 삽질하러 다니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이건희 명예박사 사건 일명 이명박 사건으로 존재감을 뿌듯하게 확인한 이건희 하고 똑같은 게 수십개 수백개가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정형근이가 호텔방에서 묵주하고 바꾼 난자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같은 것들을 아예 프레스로 찍어 낼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저는 벌써 소름이 끼칩니다.

동지여러분.아이들을 일진이라고 때려잡던 소탕작전은 마무리 됐습니까?
사립학교법 죽어라 반대하는 한나라당 떨거지들.학생과 교사를 좌경과 건전으로 분리해 좌경학생을 격리조치하고 좌경교사를 감찰하라는 신선한 발상이 화수분처럼 샘솟아 오르는 교육인적자원부.천성산에는 철도를 놓고 아이들의 머리에는 고속도로를 내서 살기좋은 새마을을 만들고 싶어 환장을 한 아직도 건재한 수많은 이 땅의 박정희들.
진짜 일진은 그것들 아닙니까?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동료들간의 왕따를 조장하고 폭력으로 나와바리를 유지하는 그들이야말로 우리시대 진정한 일진들 아닙니까?
이 일진세력들을 그대로 둔 채 교원평가제가 시행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영악해지고 선생들은 알아서 비겁해질겁니다.
아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선생들은 영혼을 잃어가는 학교에서 중간고사 끝난 나른한 봄날의 4교시.선생님께 첫 사랑 이야기를 조르는 아이들도 더 이상은 없을테고 그 아이들에게 진달래를 불러주는 친구같은 선생님도 더는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을 상대로 첫 사랑의 황홀한 꿈을 꾸는 아이들도 없을테고 선생님들은 더이상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학교가 아닌 아파트 옥상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점점 많아질테고 그때 우리는 아이들의 책상만이 아니라 옆자리 선생님의 빈 책상위에도 하얀 국화꽃을 올려놓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밖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여러분들.
나는 그 아이들은 담싹 안아주고 싶어 다가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아이들.그럼 어쩌시렵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밤새워 메일을 쓰는데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는 아이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보내기' 대신 '취소'를 누르며 긴 밤을 서성거릴 때. 그 뜨거운 마음들을 다 어쩌시렵니까?
쏟아내지지도 않고 내려놔지지도 않은 채 자갈처럼 구르며 온 가슴을 헤집고 다닐 결국에는 상처가 될 그 걷잡을 수 없는 사랑들을 다 어쩌고 사시렵니까?

권미경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열세살 때부터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오빠.어린동생 둘을 먹여살리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글 재주가 유난했던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똑똑하면 안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혹시 아십니까?
미싱만 잘 밟으면 되는 공순이가 그림 잘그리는 저주를 받아 초등학교 6년 내내 게시판에 그림이 걸려 있던 기억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혹시 상상해보셨습니까?
미경이의 글 재주는 작업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한테 터지고 온 날.구비 구비 서러운 일기를 써내려가는데 밖엔 써먹을데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유서 같았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남겨놓고 공장 옥상에서 고단하기만 했던 스물 두살의 몸뚱이를 끝내 날렸던 미경이의 유서는 그러나 막상 외마디 였습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그 유서를 왼쪽 팔뚝에 볼펜으로 비명처럼 새겨넣고 갔습니다.
그 미경이를 신용길 선생님의 바로 앞자리에 묻으면서 신선생님께 부탁했습니다.
작가가 되는 꿈을 꾸었으나 살아서는 도저히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미경이가 선생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수만벌의 옷을 만들었지만 단 한벌도 그 옷의 주인일 수 없었던 미경이의 소원은 제비꽃 한복을 입어보는 거 였습니다.
여기저기 터지고 부러진 스물 두살 몸뚱이 여며서 그 옷을 수의로 입혀서 보냈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실 수는 없더라도 제비꽃 향기가 나는 아이가 있거들랑 시도 읊어주시고 문학도 가르쳐 주시구려.
미경이 같은 아이들이 가진 꿈을 살아서 이룰 수 있는 무상교육.전 그게 꼭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조 부산지부 동지여러분.16...년 동안 정말...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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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온한 교사인가?

- 최근 청소년들의 사회적 발언과 우리 사회의 문화지체 현상에 대하여



안준철선생님(순천 효산고)




   10대 청소년들의 성장과 방황을 그린 영화 ‘그로잉 업(Growing Up)’을 본 것은 기억조차 까마득한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영화 속의 십대 주인공과 같은 또래였든지, 그 시기를 조금 비껴간 대학시절이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그 무렵의 내 눈에 비친 영화 ‘그로잉 업’은 한 마디로 무지하게 야한 영화였다.

   얼마 후 나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그로잉 업’의 몇 장면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야한 영화를 안방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한 영화평론가가 그 영화를 십대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영화’라고 소개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뇌인지 가슴에서인지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다. ‘충격과 이해’, 바로 그것이었다. 내 눈에는 야하고 불건전해 보이는 영화를 건강한 영화라고 소개한 영화평론가의 말이 먼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와 동시에 나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건강하다’는 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싹튼 것이었다.

   최근 입시문제를 둘러싼 청소년들의 촛불집회가 열리면서 학생들의 두발규제에 관한 문제도 하나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두발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들과 청소년단체 관계자들이 교육부총리 집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머리 에 떠오른 것은 ‘건강하다’라는 단어였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머리나 길게 해달라는 아이들’이 건강하다니, 나는 혹시 불온한 교사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교사라도 청소년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로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불온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령, 학교 간부 학생들이 교문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뒤진다든지,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호주머니를 뒤지며 생활검열을 하는 것을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얘기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서먹해지고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색을 바꾸는 교사들도 있다.

   ‘모든 문화는 불온한 면이 있다’고 말한 시인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오늘날의 민주국가, 즉 모든 공화국은 당시의 사회통념이나 이념적 잣대로 잰다면 인간의 불온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 아닌가. 문화의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친한 동료교사라고 해도 대화의 장벽이 생기고 만다.

   속내를 털어놓자면, 학교의 수직적인 명령체계와 비민주적인 관행에는 불끈하여 반발하면서도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에는 철저히 모르쇠하든지, 아니면 괘씸죄로 다스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닌 교사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인 셈이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왜 거리에 청소년들이 보이지 않는지 의아해한다고 한다. 그 시간 대다수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의 과도한 교육열이 그들 눈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성적(性的)호기심이 불건전하고 위태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듯이.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 희망자 조사를 할 때 나는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당연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너 왜 멍하니 있는 거야.”
   “저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냐고. 네가 원해서 학교에 남은 거잖아.”
   “아닌데요. 선생님이 강제로 남으라고 해서 남은 건데요.”

   자기 삶을 살고 있지 않는 듯한 이런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 교육의 위기가 동기의 위기요, 자발성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요, 나라의 백년대계가 심히 염려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청소년이 주인이다’라고 외치는 그들의 당당하고 건강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꽃다발이라도 한 아름 안겨주고 싶은 나는 정녕 불온한 교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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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준철 선생님이 전혀 불온해 보이지 않는 나도 혹 불온한 교사? ^^
 

'공포의 학생주임'에 맞선 '이단아 전학생'
[단속의 추억] '두발규정'에 꿈마저 잘려나가는 것은 아닐까
    오마이 뉴스 박성필(geulter) 기자   
이제 곧 서른의 나이니까,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15년은 족히 넘어간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를 벗어나 '중학생'이 된다는 설렘이 채 가라앉기 전의 일이었다.

중학교 예비소집일, 빼곡하게 작성된 유인물을 받아들고 보니 '앗' 소리가 먼저 나오게 하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바로 수십 년간 중고등학생들을 괴롭히던 '두발규정'이었다.

"제OO조 (두발 규정) 본교 학생은 아래와 같이 두발 규정을 지켜야 한다.
1. 남학생은 3cm 이내의 단정한 스포츠형…"


학교 규정을 지키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기에 앞서, '공포의 학생주임' 선생님의 회초리와 마주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입학 전 동네이발소에서 '스포츠형 머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왜 그 '빡빡' 머리 스타일에 '스포츠형 머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운동선수'들이 하는 '진짜 스포츠형 머리'는 늘 학교에서 요구하는 '스포츠형 머리'와 너무 달랐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 3cm 이내의 '스포츠형 머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필자가 다녔던 중학교가 남녀공학이었던 탓에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새가 가끔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느덧 계절이 늦가을로 치닫고 있을 무렵이었다. 필자가 속한 학급에 전학생이 한 명 왔다. 담임선생님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전학생은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제법 긴 머리에 '무스'로 정돈까지 한 머리였다. 순간 동료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두발 자율화하는 학교에서 왔나봐!"
"진짜 좋았겠다!"

그러나 그런 부러움 대신에 제법 '멋진' 머리가 곧 잘려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대다수였다. "별 수 있겠냐. 며칠 안에 분명히 우리꼴 나겠지"라는 한 친구의 말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전학생은 뭔가 달랐다. 그 전학생은 머리를 자르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못내 '네!'라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머리를 자르지 않을 것 같다'는 친구들의 예상만큼이나 그 전학생에게는 뭔가 '이단아'의 기질이 엿보였다.

역시 그는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러 번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오던 그 날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전교 1등'을 계속 유지해 왔다는 풍문과 더불어 전학생이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던 찰나였다.

'공포의 학생주임'을 맡고 있던 수학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너 누구야? 앞으로 나와!" 그 몇 마디의 말에 시선이 학생주임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기도 전에 우리는 누구를 지목하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뚜벅뚜벅 교실 앞쪽으로 걸어가는 학생,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주임 선생님으로 인해 교실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고 있었다. 곧이어 그 전학생과 학생주임 선생님이 마주선 자리에서 선생님의 한 마디만 말씀만 들려왔다.

"가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지고 나와!"

분명 '두발규정'을 어긴 것이 잘못이라면 그 전학생이 떨어야 하는 순간이었는데 오히려 떨고 있는 것은 주변의 동료학생들이었다. 그리고 한 친구가 가위를 들고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교실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학생주임 선생님이 가위를 드셨다. 가위날을 벌리는 선생님의 손, 전학생의 머리카락으로 향하는 가위끝, 그리고 '싹뚝' 소리만 들려왔다. 제법 멋을 부리고 다니던 전학생의 머리카락 앞 부분은 아마도 정확한 '스포츠형 3cm'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다.

"지금 당장 이발소에 가서 이 길이로 머리 자르고 와!"
"네…."

냉랭한 교실 분위기를 뚫고 그 전학생이 뒷문을 통해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긴장한 학생들과 어느 때보다 '학생주임의 힘'을 과시한 선생님의 묘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다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업의 내용보다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전학생의 헤어스타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 20분이 지나기 전에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쿡-! 쿡-!' 손으로 막은 입 속에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전학생의 헤어스타일에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의 긴 머리스타일에서 선생님이 가위로 직접 자른 앞머리의 길이에 맞춰 머리 앞부분만 정리를 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긴 머리에서 앞머리만 짧게 자르면 어딘가 모르는 그 어색함, 아니 어색하다 못해 웃음이 먼저 터지는 그 헤어스타일로 돌아온 것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에 대한 이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동료학생들의 예상을 깨고 의외로 침착하게 수업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그 '도전' 덕분인지, 머지않아 머리를 짧게 자르긴 했지만 다른 학생들보다는 두발규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반항적인 아이야!' '대단하다!'라는 부러움 속에서 그는 우리반의 '이단아'로 자리매김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무려 6년 동안 필자는 일명 '스포츠형 머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그 시절 두발규정에는 '단정한'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두발규정을 어기는 학생은 불량학생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웠다.

그러나 '두발규정을 지키는 학생이 과연 모범적인 학생인가'라는 그 시절의 의문은 지금도 여전히 '의문'으로만 남아 있다. 꿈 많은 사춘기의 '두발규정'이 그 시절의 필자,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요즈음 학생들의 꿈마저 '싹뚝' 잘라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씩 '공포의 학생주임 선생님' 가위질에도 불구하고 앞머리만 짧게 정리하고 수업 시간에 돌아왔던 그 전학생의 '패기'가 그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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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6-15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조카가 중학교 다니는데 제가 조카더러 학교에서 네 머리를 강제로 자르거나 하면 담날 박박 깍고 기름 바르고 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뭐라 하면 말하라고....쌈쟁이 이모가 싸워준다고...

해콩 2005-06-1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신 이모님이십니다.. (나도 우리 조카한테 그렇게 말해야지!!)
근데.. 워낙 흥분만 잘하는 성질이라놔서.. 제대로 싸워줄 수 있을까?...
 
 전출처 : 글샘 > 칭찬이 좋은 30가지 이유

1.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에게 기적을 만들어 주었다. 
2. 칭찬을 하면 꼭 칭찬들을 일을 한다. 칭찬하고 칭찬하라. 
3. 한 마디의 칭찬이 건강을 심어준다. 몸에서 엔돌핀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4. 칭찬을 받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입에서 노래가 나오는 법이다. 
5. 칭찬은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 돈은 순간의 기쁨을 주지만 칭찬은 평생의 기쁨을 주는 것이다. 
6. 본인도 모르고 있는 부분을 찾아 칭찬하라. 그 기쁨은 10배, 100배로 증폭된다. 
7. 자기 자신을 칭찬할 줄 하는 사람이라야 남을 칭찬할 수가 있다. 자기부터 칭찬하라. 
8.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칭찬거리를 찾다보면 무수한 칭찬거리가 나타난다. 
9. 칭찬은 자신을 기쁘게 하고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는 공동 승리를 안겨준다. 
10. 누구를 만나든지 칭찬으로 시작하여 칭찬으로 끝내라. 이 세상이 기쁜 세상이 된다. 
11. 운동 선수는 응원 소리에서 힘을 되찾고 사람은 칭찬을 들으며 자신감을 갖는다.
12. 미운 사람일수록 칭찬을 해 주어라. 언젠가 나를 위해 큰 일을 해 줄 것이다.
13. 칭찬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큰 비용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해결해 준다.
14. 칭찬은 어떤 훈장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큰 훈장이다.
15. 칭찬은 보물찾기와 같다. 보물은 많이 찾을수록 좋은 것이다. 
16. 칭찬은 사랑하는 마음의 결정체이고 비난은 원망하는 마음의 결정체이다. 
한 방울의 꿀이 수많은 벌을 끌어 모으지만 1만 톤의 가시는 벌을 모을 수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17. 칭찬은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고 원수도 은인으로 만든다.
18.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내세우지만 칭찬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19.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이 공덕이다. 사람은 너나없이 칭찬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칭찬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20. 10점을 맞다가 20점을 맞는 것은 대단한 향상이다. 칭찬을 듣고 또 들으면 30점이 되고 50점이 되다가 
끝내는 100점이 되어 버린다.
21. 칭찬은 불가능의 벽을 깨뜨리는 놀라운 힘이 있다.
22.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칭찬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사랑의 눈이 만들어지고 사랑의 눈에는 약점만 보이는 것이다. 
23. 상대방의 약점을 보려고 하지 말라. 약점의 눈으로 보니 약점만 보이는 것이다. 
24. 사람의 참모습은 칭찬에서 나타난다. 칭찬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 신나는 세상이 펼쳐진다.
25. 칭찬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바꿔준다. 내가 말하는 한마디 칭찬이 의식개혁의 시작이다.
26. 칭찬은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마술사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웃음이다. 
27. 내가 칭찬을 하면 상대방도 칭찬을 되돌려 준다. 칭찬을 주고 받는 세상이 지상천국이다. 
28. 칭찬을 받으면 더 잘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더욱 더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10배의 능력을 만든다. 
29. 칭찬을 받으면 앞길이 훤하게 열린다. 마음을 열고 활력 있게 행동을 하게 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뀌어진다. 
30. 칭찬을 하다 보면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어 모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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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뭐. 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건데. 아주 간단해. 우선 몸이 없으면 머리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인간은 머리만으로 존재하지 않아. 몸을 자랑할 수 있는 너는 모든 가능성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거야. 응, 바보같이 당연한 말만 하고 말았네."  47쪽

 

사람들은 나를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혼자서 자기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불쌍히 여겼던 거다. 초등학교에서는 모자 가정의 모임이라는 곳에 들어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임의 아이들이 그리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완벽한 가족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제삼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 한탄하면서 평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 부모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하고 떠나야 한다. 부모 없는 아이는 불행하게 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은 사람의 생각을 묶어버리는 인습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와이드 쇼처럼 무책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일을 하면 아버지도 없이 자랐는데 대단하다고 하고, 나쁜 일을 하면 역시 어버지가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한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건 하나의 사실이지 정의가 아니다.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 모든 판단의 기초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실에 ㅇ표를 하거나 x표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옳고 그름을 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8~109쪽

 

"도키다, 세상에는 너 말고도 쓸데없는 간섭 때문에 나쁜 놈이나 좋은 놈이 되는 사람이 많아. 선생도 그럴지 모를지. 인간 전부가 그런 사고방식의 피해자일지도 몰라.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을 거예요."

"그건 몰라. 그때가 돼보지 않으면.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 인간이 인간을 무책임한 입장에서 재단하는 건 안 돼. 그것만 알고 있어도 훨씬 나은 셈이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또 무엇이 나의 앞길을 가로 막을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토 선생의 생활지도 때문에 기가 죽어 있을 수는 없은 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가치 기준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기준에 세상의 정의를 끌어들이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을 거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모든 것에 ㅇ표를 치자.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런 다음 천천히 x표를 선택해가는 거다.' 122~1234쪽

 

 떠들썩하던 교실은 오쿠무라가 들어서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고 이야기에 빠져있던 히데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 사실을 눈치 챈 히데미가 어색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으려는데 오쿠무라가 불러세웠다. "뭐가 그리 재미잇어, 엉! 너 요즘 교실 분위기에도 익숙해져서 제법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히데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머뭇머뭇 했지만, 이윽고 고개를 들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카마와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게 아주 잘된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 그게 자랑거리라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쿠무라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랑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주 좋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뭘 잘못하면 금방 그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아른 곳을 건드리니까. 미야다와 삼각자로 결투를 벌이다가 뾰족한 끄트머리에 손이 찔렸습니다. 아주 아팠습니다. 바로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또 개똥 같은 논리로군. 넌더리나는 놈. 오쿠무라는 그 다음 말을 재촉했다.

"같은 겁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아고 말이에요. 선생님,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180도가 되잖아요. 일직선이 되는 거지요. 고통의 각을 세개 모으면 그것도 일직선이 됩니다. 여섯 개를 모으면 360도가 되는 겁니다. 동그랗게요. 더이상 아프게 하는 뾰족한 각을 없습니다. 나와 아카마는 이미 한개의 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빨리 일직선이나 동그라미가 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구도 둘글잖아요."

오쿠무라는 히데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헛기침만 하고 있었다.

"이제 됐어. 네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겠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자리에 앉아."

"쓸데없는 말이 아니라구요! 내게는 큰 문제예요."

"알았다. 알았어.

히데미는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선생님! 내 말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 순간 아카마 히로코가 책상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오쿠무라는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아카마와 도키다가 아버지가 없다고 놀리기라도 했어?"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뽀족한 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걸 각도기로 잴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일직선이나 동그라미가 되어 없어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히데미는 콧물을 훌쩍였다. 교실은 조용히 가라앉았고, 히로코의 울음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오쿠무라는 멍하니 서 있었다. 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단 말인가. 정작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 ... 이래서는 공부가 안 된다. 너희들, 뭘 하고 싶어? 이번 국어 시간을 여러분에게 줄 테니, 뭘 할래?"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카마 히로코도 눈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

모두 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 있지 않은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뭘 할지 결정하는 데 무척 애를 먹고 있었다.

"다마가와 강변에 가서 놀까? 날씨도 좋은데."

초조해진 오쿠무라의 입에서 나온 제안에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 히데미도 너무 기뻤다.

"길을 걸을 때 두 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우측통행. 열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알았으면 준비해."

264쪽~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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