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서른의 나이니까,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15년은 족히 넘어간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를 벗어나 '중학생'이 된다는 설렘이 채 가라앉기 전의 일이었다.
중학교 예비소집일, 빼곡하게 작성된 유인물을 받아들고 보니 '앗' 소리가 먼저 나오게 하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바로 수십 년간 중고등학생들을 괴롭히던 '두발규정'이었다.
"제OO조 (두발 규정) 본교 학생은 아래와 같이 두발 규정을 지켜야 한다. 1. 남학생은 3cm 이내의 단정한 스포츠형…"
학교 규정을 지키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기에 앞서, '공포의 학생주임' 선생님의 회초리와 마주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입학 전 동네이발소에서 '스포츠형 머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왜 그 '빡빡' 머리 스타일에 '스포츠형 머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운동선수'들이 하는 '진짜 스포츠형 머리'는 늘 학교에서 요구하는 '스포츠형 머리'와 너무 달랐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 3cm 이내의 '스포츠형 머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필자가 다녔던 중학교가 남녀공학이었던 탓에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새가 가끔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느덧 계절이 늦가을로 치닫고 있을 무렵이었다. 필자가 속한 학급에 전학생이 한 명 왔다. 담임선생님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전학생은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제법 긴 머리에 '무스'로 정돈까지 한 머리였다. 순간 동료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두발 자율화하는 학교에서 왔나봐!" "진짜 좋았겠다!"
그러나 그런 부러움 대신에 제법 '멋진' 머리가 곧 잘려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대다수였다. "별 수 있겠냐. 며칠 안에 분명히 우리꼴 나겠지"라는 한 친구의 말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전학생은 뭔가 달랐다. 그 전학생은 머리를 자르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못내 '네!'라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머리를 자르지 않을 것 같다'는 친구들의 예상만큼이나 그 전학생에게는 뭔가 '이단아'의 기질이 엿보였다.
역시 그는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러 번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오던 그 날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전교 1등'을 계속 유지해 왔다는 풍문과 더불어 전학생이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던 찰나였다.
'공포의 학생주임'을 맡고 있던 수학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너 누구야? 앞으로 나와!" 그 몇 마디의 말에 시선이 학생주임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기도 전에 우리는 누구를 지목하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뚜벅뚜벅 교실 앞쪽으로 걸어가는 학생,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주임 선생님으로 인해 교실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고 있었다. 곧이어 그 전학생과 학생주임 선생님이 마주선 자리에서 선생님의 한 마디만 말씀만 들려왔다.
"가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지고 나와!"
분명 '두발규정'을 어긴 것이 잘못이라면 그 전학생이 떨어야 하는 순간이었는데 오히려 떨고 있는 것은 주변의 동료학생들이었다. 그리고 한 친구가 가위를 들고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교실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학생주임 선생님이 가위를 드셨다. 가위날을 벌리는 선생님의 손, 전학생의 머리카락으로 향하는 가위끝, 그리고 '싹뚝' 소리만 들려왔다. 제법 멋을 부리고 다니던 전학생의 머리카락 앞 부분은 아마도 정확한 '스포츠형 3cm'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다.
"지금 당장 이발소에 가서 이 길이로 머리 자르고 와!" "네…."
냉랭한 교실 분위기를 뚫고 그 전학생이 뒷문을 통해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긴장한 학생들과 어느 때보다 '학생주임의 힘'을 과시한 선생님의 묘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다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업의 내용보다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전학생의 헤어스타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 20분이 지나기 전에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쿡-! 쿡-!' 손으로 막은 입 속에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전학생의 헤어스타일에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의 긴 머리스타일에서 선생님이 가위로 직접 자른 앞머리의 길이에 맞춰 머리 앞부분만 정리를 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긴 머리에서 앞머리만 짧게 자르면 어딘가 모르는 그 어색함, 아니 어색하다 못해 웃음이 먼저 터지는 그 헤어스타일로 돌아온 것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에 대한 이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동료학생들의 예상을 깨고 의외로 침착하게 수업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그 '도전' 덕분인지, 머지않아 머리를 짧게 자르긴 했지만 다른 학생들보다는 두발규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반항적인 아이야!' '대단하다!'라는 부러움 속에서 그는 우리반의 '이단아'로 자리매김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무려 6년 동안 필자는 일명 '스포츠형 머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그 시절 두발규정에는 '단정한'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두발규정을 어기는 학생은 불량학생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웠다.
그러나 '두발규정을 지키는 학생이 과연 모범적인 학생인가'라는 그 시절의 의문은 지금도 여전히 '의문'으로만 남아 있다. 꿈 많은 사춘기의 '두발규정'이 그 시절의 필자,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요즈음 학생들의 꿈마저 '싹뚝' 잘라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씩 '공포의 학생주임 선생님' 가위질에도 불구하고 앞머리만 짧게 정리하고 수업 시간에 돌아왔던 그 전학생의 '패기'가 그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