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눈동자의 소녀에서 최고의 게이샤로…
모든 화려함과 바꿔서라도 꼭 이루고 싶었던 사랑
신비로운 푸른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소녀 ‘치요’는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교토로 팔려가게 된다. 자신이 게이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녀를 시기하여 함정에 몰아넣는 ‘하츠모모’(공리)에게 겪은 갖은 수모 속에서 유일하게 친절을 가르쳐준 회장(와타나베 켄)을 마음에 담고 게이샤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마침내 그녀를 수제자로 선택한 마메하(양자경)에게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 ‘사유리’(장쯔이)로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아름다움과 비밀로 이루어진 매혹적인 세계,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가져도 사랑만은 선택할 수 없는 게이샤의 운명…

은근히 그녀를 사모하는 기업가 노부(야쿠쇼 코지)와 남작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구애도 거절한 채 회장을 향한 사랑을 지켜가던 사유리. 하지만 더욱 집요해진 하츠모모의 질투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회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사유리는 게이샤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질 순 있어도 사랑만큼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일생의 모험이자 배우로서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역할'이라던 장쯔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중국배우이기 때문에 일본 기녀 역할을 사양한다는 애국심이란.. 글쎄? 그보다는 예술가적 욕심을 앞세운 선택을 좇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집으로 가는 길' 이후 장쯔이의 단단하고 다부진 아름다움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 영화가 '집으로 가는 길', 혹은 '와호장룡' 아니 '영웅'에서 보여준 역할보다 뭐가 더 '모험'스러운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허리우드' 영화의 주연급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과 그 화려함에 매혹된 게 아니라면... 이건 100% 허리우드식 영화였다.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의 기녀, '성'을 그저 신비롭게 바라보고자했으며, 따라서 그 속의 여성들의 눈꼽만큼도 자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의 슬픔이나 비애조차 비껴간다. 오로지 최고의 게이샤가 되기 위한 암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택되기 위한' 몸부림.. 그뿐이다. 젠장... 조금의 주체성만이라도 보였으면 그 화려한 화면빨 때문에 조금은 화가 덜 났을지도모르지..(사실 본전 생각은 안났다. 생각의 여지는 많았으므로)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일본으로 대변되는)동양, 일본 남성들이 바라보는 (게이샤로 대변되는) 여성..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그 노골적이고 편협된 시각 때문에 민족주의자도 아닌 내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불편했다. 이건 미국 남자들에 의한, 미국 남자들을 위한,  미국 남자들의 영화다.

도대체 시나리오상의 일관성도 없다. 게이샤는 몸을 파는 기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핏대 세우면서 그 다음 장면에 바로 처녀성을 높은 가격에 경매붙여 팔아먹는 건 뭐냐. 열 살도 안 된 소녀가 빙수 하나 사주는 친절함에 아버지뻘은 됨직한 남자를 첫눈에 사랑할 수 있냔 말이다. 평생을 그 남자만을 바라볼만큼... 그 사장 역시 마찬가지라니...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말을 믿긴하지만 이건 개연성이 너무 없다. 서양 남자들이 동양여자에 대해 성적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중국배우들은 참 작품을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평소에 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을 포함해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주연급 배우라고 해서 조연을 사양하거나 무명 감독의 작품을 거절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데... 장쯔이 뿐만 아니라, 공리, 양자경의 '작품 보는 눈'에 정말 실망했다. 중국에서 상영금지를 한 이유와 같은 관점에서 싸잡아 하는 비난이라는 혐의는 절대 거절이다. 이 영화는 화려함만 있을 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눈씻고 찾아볼래야 없다. 심지어 게이샤, 아니 동양여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영화인지조차도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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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0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어린 '사유리'를 역할을 맡은 소녀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히피드림~ 2006-02-0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두 해콩님 생각에 동의해요.^^

해콩 2006-02-0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겠습니다~ punk님!! 공감해 주신다니 감사~ 근데 솔직히 하츠모모 역의 공리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 서늘한 허무와 상실.. 거기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대단하더군요. 에로스에서 보여준 연기에 값하는... 멋진 연기자인 것 같아요. 동의하시죠? ^^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되었고 부산에도 눈이 오다가 지금은 진눈깨비로 바뀌었네요... 님이 계신 그 곳에도 눈이 오고 있나요?

히피드림~ 2006-02-0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너무 늦게 봤네요. 그동안 컴이 고장나서 알라딘에 통 못들어와 봤거든요,^^;; 정말 공리 너무 연기 잘 했죠? 장쯔이 주연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공동주연같았어요. 장쯔이의 해사한 얼굴도 보기 좋았지만, 양자경과 공리의 '연륜'도 빛나던걸요.
눈은 이곳도 조금 오다가 말았어요. 다행이죠 뭐,,,^^
앞으로 자주 뵈요,
 

월트 디즈니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치킨리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에 의해 머리를 강타당한 치킨 리틀은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고향 마을인 오우키 오크를 대혼란으로 몰고간다.
허나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도토리...
이로 인해 1년간 모든 이들의 놀림감이 된 치킨 리틀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결심을 하지만,
마음먹기가 무섭게 또다시 치킨 리틀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지는데...

이번에는 진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일까?!
마른 하늘에 구멍이 뚫린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치킨 리틀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런트, 애비 말라드, 피쉬의 깜짝 놀랄 이야기...

 



캐릭터들이 귀여울 '뿐'이다.

허리우드식 가족주의에 평범하고 작은, 그러나 비일상적인 영웅 보여주기.

외계인? 식상하다.

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앞으로 만화영화도 허리우드, 디즈니 영화는 재고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슈렉정도 된다면 모를까...

아기양과 늑대의 험난한 우정 만들기를 그린 '폭풍우 치는 밤에'가 상대적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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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젊고 아름다운 남자, 그는 아버지의 연인이었다...

오래 전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게이 아버지를 증오하는 사오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녀에게 어느 날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의 연인 하루히코. 하루히코는 사오리의 아버지 히미코가 암에 걸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그녀에게 아버지가 만든 게이들을 위한 실버타운에 와서 일을 도울 것을 부탁한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살아왔지만, 유산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얘기에 매주 한 번씩 그곳에 가기로 결정한 사오리. 일요일 아침, 사오리는 '메종 드 히미코'의 문을 두드린다.

메종 드 히미코, 영원한 우리 모두의 안식처

바닷가에 접한 유럽의 작은 성을 연상시키는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 그 안에 살고 있는 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사람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으로 거리를 두던 사오리는, 점차 그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과 그 이면에 숨은 외로움과 고민을 접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평온한 이곳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아버지와는 완전히 연락을 끊은 줄 알았던 죽은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사오리. 게다가 항상 티격태격하던 하루히코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머리 한 구석으로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이런 영화는 내게 아주 드물다.

개인적으로 '당당한 여성스러움'을 최상의 '인간다움'으로 여기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여성스러움을 선망하는 남성들-호모? 게이? 동성애자? 무엇이든-이 대거 등장한다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난 느낌은 만족! 별 다섯 개! 여주인공 사오리의 캐릭터가 여전히 '귀엽고 깜찍함'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에 부합하려는 오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대로 씩씩했고, 여성성의 덜 보편적인 면-예를 들어 모든 여성들이 그들처럼 드레스나 화장, 화사한 색깔, 연속극 등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을 지나치게 표현했지만 '여성스러운 남성'의 캐릭터는 그럭저럭 흡족했다. 그들은 남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남자는 동성애자였다. 그러나 커밍아웃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는다. 사랑을 찾아 남편이 떠난 후 남겨진 아내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동성애자, 좋아, 인정한다. 타고난 성적 취향을 어찌하리... 그러나 최소한 아이에 대한 책임은 져야한다.' 그러나 히미코를 보면서, 루비를 보면서.. '그들도 어쩔 수 없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성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유럽과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당연시되는 일본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해'는 아닌 것 같다. 나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면 남-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의 행복과 안락만을 위해 끝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히미코처럼 돌아오는 원망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또 사과할 '용기'가 있다면 그런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감정은 '우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히미코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외토리였다'는 하루히코, '나는 지금도 외토리다'라는 독백 아닌 독백을 하는 사오리... 그 외로움과 상처를 매개로 서로에게 느낀 따뜻함이 육체적인 사랑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면 그들은 과연 더 오래 그런 따뜻함을 나눌 수 있었을까? 서로 상처가 되지만 동시에 서로 위안이 되고, 서로 미워하면서 또 서로 아껴주는.. 그런 관계는 아마 '우정'이라는 말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어처피 삶이란 아픔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마음을 서로 나눠갖는 것것일테니까...

그래서 '분명, 사랑은 그 곳에 있다'를 '분명, 사람이 그 곳에 있다'나, '분명, 우정이 그 곳에 있다'로 바꿔 읽을 수도 잇을 것 같다. 하여 결국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분명, 희망이 그곳에 있다'고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준 상처-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때문에 남이 아파하는 것을 보며 이미 아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서로 위로가 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 그것이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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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06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다른 것에 대해서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일본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른 것에 대한 포용은 배워야 할 거 같애요.

해콩 2006-02-0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정말 그래요..^^ 보셨나요, 이 영화? 늦기 전에 꼭 보세요~
 

 

[050000] 전교조의 정체성에 대해서..

조중동과 한나라당등 수구세력의 전교조에 대한 공격은 상당히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장 밑바닥부터 흔들어버릴 강력한 힘을 전교조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현대사중 교육부문만 정리하여 보았으며, 이를 전교조의 출현까지 이어 보았습니다.

.................

 

해방후

 

1). 양심적 교사들에 의한 '조선교육자협회' 결성(1946.2.17)

 

해방과 동시에 조선인 교육자들은 45년 8월말 서울 초등교원들이 초등교육건설회를 결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9월 15일에는 중등교육자대회를 개최하며 민족교육의 부활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1946년 2월17일..
일제의 총칼앞에 굴복했던 교사들은 오욕의 과거를 반성하고 올바른 민족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1946년 2월 17일 '조선교육자협회'를 결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지난날 일제에 굴복했던 나약함을 떨쳐버리고 민족자주교육을 실현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조국의 새교육을 열어갈것을 결의 하였습니다.


2). 미군정에 의한 '조선교육자협회' 강제해산과 '조선교육연합회' 결성

 

그러나 해방후 미군의 지원하에 정치/경제/군경의 모든 기득권을 사실상 장악한 친일기득권 세력은 미군정의 계획적인 지원아래 민족교육의 태동을 제거할 준비를 합니다.
미군정은 앞서 양심적 교사들이 결성한 '조선교육자협회'를 강제해산 투옥시킵니다.
그리고 6명의 악질친일교장출신의 친일기득권교육관료들을 주축으로 세워 1947년 11월 '조선교육연합회'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산하에 10개의 분과위원회를 결성하고 모든 분과에 대위급으로 편성된 미군장교를 책임자로 앉혀놓고 친미교육을 통한 미국식 가치관을 심기위한 교육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 단체는 미군정으로 부터 독자적인 건물까지 지원받으며 미군정의 정책을 지지하고 미군장성들을 찬양하는 발언들을 통한 친미의 전위대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이들은 자유당시절에는 자유당을 찬양하고, 박정희독재정권때는 유신체제를 찬양하는등 반민주적/반민족적 매국매족활동에 앞장서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그 유명했던 방학책과 모든학교에 지급되는 새교육이라는 교육잡지의 독점권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재정적 뒷받침까지 누리며 더욱더 조직을 확대해가며 그 기득권을 향상 시켜 왔습니다.

 

이 단체는 해방이후 대대적으로 자신들의 인맥을 미국으로 유학보내, 미국식가치관을 우리민족에게 주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강자에게 굴종하며 알량한 사익만을 추구하던 매족세력은 절대강자가 바뀌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후에 대한교육연합회로 이름을 바꾼 후에, 87년 전교조가 결성되었을 당시 전교조를 견제할 목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들이 바로 한나라당 이군현의원이 회장으로 있었던 "교총"입니다.

 

3). 4.19 교원노조의 등장과 박정희 군부독재의 탄압

 

자유당독재정권이 민중의 심판을 받아 물러난 후, 미군정과 친일기득권에 의해 해산당하고 말았던 조선교육자협회는 4.19교원노조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후 일본군 장교출신인 박정희의 군사반란으로 인해 4.19교원노조로 살아난 민족교육의 불씨는 참담하게 유린당하고 맙니다.


4). 89년 전교조 결성

 

그러나 꺼져가던 민족교육의 불씨는 89년 전교조의 결성으로 다시 피어 오릅니다. 1300명이 해직당하고 기나긴 수배생활까지 하면서까지 10년간의 끈질기고 기나긴 투쟁을 거듭한 끝에 1999년 합법화를 이루어 낸것입니다.

즉, 지금의 전교조는 해방후 양심적 민족교육자들이 결성했다가 미군정과 친일파들에게 강제해산당했던 '조선교육자협회'에 그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

 

그러나 친일파에 그 더러운 뿌리를 담그고 있는 조중동,한나라당,교총, 그리고 수많은 우익집단들은 지금도 전교조를 빨갱이라며 사사건건 음해하고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럴수 밖에 없을까요...

 

그 정답은 바로 역사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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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1-2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중동처럼 권력의 근처에 있는 개들은 본능적으로 적을 알지요...
그것의 정체는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빨갱이로 보이는 색맹이라지요.
자기들의 뿌리가 썩어빠진 그것이므로 전교조같은 조직이 두려울 수밖에요...
전교조는 정말 위험한 조직이지요.
마약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짜기만 해서 상처에 쓰라림을 주는...
그렇지만 결국 치유법은 그것밖에 없는... 그런 정체입니다.
 
 전출처 : 글샘 >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한국어가 있다 2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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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어 교사이기에, 아이들이 간혹 편지를 보내거나 메일을 보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국어 선생님께 글을 쓰려니, 맞춤법 같은 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것.

그만큼 국어 교사는 맞춤법 같은 형식적인 틀을 강조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은 아주 특이한 언어다.
중국 문화권에서 발달한 말이지만, 중국어와 발음, 낱말이 전혀 다르고, 전혀 다른 언어이며,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일본어와도 게르만어(영어, 불어, 독어)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어느 말에도 없는 <맞춤법>이란 것이 있다는 점이다.
<한글 맞춤법>은 1989년 공포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데, 그 규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거나, 그 시험에 대비하는 사람 정도...

이 규칙은 식민지 시대의 국어 <생존>을 위한 투쟁적 의미에서의 <애국심>이 과도하게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국어를 중흥시킬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국어 교사로서 좀 이상한 발상일는지 몰라도, 한글 맞춤법의 존재와 일반 언중의 <표기> 사이엔 모두에서 쓴 것처럼 <교양있는 사람이 못됨으로서 느끼는 께름칙한 부담감>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한글 맞춤법은 어렵다.
그 원칙이 <소리나는 대로>와 <어법에 맞게>의 두 가지라서 소리나는 대로 쓰자니 어법이 울고, 어법을 따지자니 소리가 우는 현상에서 필자들은 갈등하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 규정 안에서도 <끼어들다>와 <끼여들다>가 혼동되어 쓰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웃기는 <자장>이시다.

둘째, 한글 맞춤법은 교육되지 않고 있다.
초등 1,2학년에서 받아쓰기를 통해 철자법을 익히지만, 그 이후로는 체계적인 문법 교육이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수능은 이 현상을 심화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찍기 시험에 문법은 사족이 되어 버린 현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부록으로 맞춤법을 실어 두었지만, 전국의 어느 선생님이 이 부분을 가르치는지 난 늘 궁금하다.(내가 본 선생님들은 누구도 이 부록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표준어>에 대한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표준어는 통일과 분리, 우월, 준거의 기능 등이 있다. 표준어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란 코걸이, 귀걸이 식의 사정(ㅋㅋ 심사해서 정하는 걸 사정이란다. 그냥 정하는 원칙이라 쓰지.) 원칙도 애매모호, 아리까리, 갸우뚱 하게 하지만,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나는 대로 쓰되, 어법에 맞게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원칙을 아는 성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셋째, 한글 맞춤법이 헷갈릴 때(헛갈릴 때는 틀린 말) 어떻게 할지 가르치지 않는다.
영어 단어를 모르면 어떻게 하는지 누구나 안다. 영어 사전을 찾아 본다. 영어에 맞춤법이란 없다. 영국과 미국은 좀 다르다. 그래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다. 지하철이 서브웨이든 언더그라운드든 튜브든 잘만 간다.
영어 단어는 무조건 띄어쓰기 때문에 띄어쓰기에 대한 어려움은 없고, 철자는 사전을 참고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말은 단어를 무조건 띄어쓰지 않고, 조사나 어미는 붙여 쓰는 어려움이 있고,
영어는 동사가 별로 활용하지 않지만, 국어는 그 활용태가 무한정이다. 참 어렵다.
국어 맞춤법도 어려울 땐, 사전을 참고하도록 적극 가르쳐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집안 가까운 데 국어 사전 비치하시라.
아이들 공부방에, 국어 사전 꼭 필요하다. 국어 못하는 사람, 공부 못한다.

그럼, 한글 맞춤법을 어떻게 해야 자신있게 될까?
많은 학생들이 '논술'에 부딪히면 어법에 맞게 써야 되니까, 자신없는 질문을 한다.
한글 맞춤법 학습에 <정도>는 없다. <왕도>도 없다.
한글 맞춤법을 펴들고 읽을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다.(아마 그걸 읽다가는 맞춤법에 혐오감을 느끼게 될는지도 모른다.)

첫째, 국어 사전을 가까이 두고 궁금한 한자어, 뜻이 명확하지 않은 고유어, 철자가 헷갈리는 낱말 등은 열심히 찾아 보고 단어장을 만든다.(학생이라면 꼭 필요한 일)

둘째, 월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우리말 겨루기'의 우리말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언어에 대한 관심을 늘 갖는다. 내가 헷갈리는 말은 남도 헷갈린다. 그러나 남이 틀릴 때, 나도 틀려도 좋다는 것 좀 억지아닐까?

셋째,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 출전할 예정이라 생각하고, <우리말>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는다.
초등학생 맞춤법과 관련된 책도 서점에 많고, 우리말에 얽힌 다양한 내용들이 요즘은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게 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책들을 좀 읽어 줬으면 좋겠다.

넷째, 이건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중요한 것 같다.
문법에 좀 관심을 갖고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다른 책은 다 버려도, 문법책은 버리지 말았으면...(근디, 교육부에서 나온 문법책 사는 학교가 있기나 한 걸까?)

앞에서 말한대로 우리말은 <한글>이란 뛰어난 표기법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시켜 표기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말을 버리고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단련하는 길만이 한국의 힘을 기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유익하다.
이 책의 장점은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어휘에 대한 설명이 간명하고, 고교 졸업 정도의 학력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두루 쓰는 예문의 선택이 탁월하다.

글쓰기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해 준다면 좋을 책이다.

내가 아는 어떤 훌륭한 선생님은 국가에서 잘못된 맞춤법을 쓰면, 열심히 고치신다.
<교통사고 많은 곳>을 <교통사고 잦은 곳>으로 고친 곳이 많아졌다.
나부터 작은 관심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좀 아쉬운 점,
71쪽의 두 번째 문단, (70-80년의 인생)... 에서 (1970-1980년의 인생)으로 좀 코믹하게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111쪽 예문이 맘에 안 든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안 치렀다(치르지 아니했다). 못 치렀다(치르지 못했다). 같은 문장은 말도 안 되는 글을 예문으로 적어서 국민 의식을 저하시키는 데 기여한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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