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젊고 아름다운 남자, 그는 아버지의 연인이었다...

오래 전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게이 아버지를 증오하는 사오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녀에게 어느 날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의 연인 하루히코. 하루히코는 사오리의 아버지 히미코가 암에 걸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그녀에게 아버지가 만든 게이들을 위한 실버타운에 와서 일을 도울 것을 부탁한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살아왔지만, 유산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얘기에 매주 한 번씩 그곳에 가기로 결정한 사오리. 일요일 아침, 사오리는 '메종 드 히미코'의 문을 두드린다.

메종 드 히미코, 영원한 우리 모두의 안식처

바닷가에 접한 유럽의 작은 성을 연상시키는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 그 안에 살고 있는 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사람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으로 거리를 두던 사오리는, 점차 그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과 그 이면에 숨은 외로움과 고민을 접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평온한 이곳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아버지와는 완전히 연락을 끊은 줄 알았던 죽은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사오리. 게다가 항상 티격태격하던 하루히코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머리 한 구석으로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이런 영화는 내게 아주 드물다.

개인적으로 '당당한 여성스러움'을 최상의 '인간다움'으로 여기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여성스러움을 선망하는 남성들-호모? 게이? 동성애자? 무엇이든-이 대거 등장한다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난 느낌은 만족! 별 다섯 개! 여주인공 사오리의 캐릭터가 여전히 '귀엽고 깜찍함'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에 부합하려는 오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대로 씩씩했고, 여성성의 덜 보편적인 면-예를 들어 모든 여성들이 그들처럼 드레스나 화장, 화사한 색깔, 연속극 등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을 지나치게 표현했지만 '여성스러운 남성'의 캐릭터는 그럭저럭 흡족했다. 그들은 남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남자는 동성애자였다. 그러나 커밍아웃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는다. 사랑을 찾아 남편이 떠난 후 남겨진 아내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동성애자, 좋아, 인정한다. 타고난 성적 취향을 어찌하리... 그러나 최소한 아이에 대한 책임은 져야한다.' 그러나 히미코를 보면서, 루비를 보면서.. '그들도 어쩔 수 없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성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유럽과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당연시되는 일본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해'는 아닌 것 같다. 나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면 남-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의 행복과 안락만을 위해 끝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히미코처럼 돌아오는 원망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또 사과할 '용기'가 있다면 그런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감정은 '우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히미코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외토리였다'는 하루히코, '나는 지금도 외토리다'라는 독백 아닌 독백을 하는 사오리... 그 외로움과 상처를 매개로 서로에게 느낀 따뜻함이 육체적인 사랑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면 그들은 과연 더 오래 그런 따뜻함을 나눌 수 있었을까? 서로 상처가 되지만 동시에 서로 위안이 되고, 서로 미워하면서 또 서로 아껴주는.. 그런 관계는 아마 '우정'이라는 말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어처피 삶이란 아픔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마음을 서로 나눠갖는 것것일테니까...

그래서 '분명, 사랑은 그 곳에 있다'를 '분명, 사람이 그 곳에 있다'나, '분명, 우정이 그 곳에 있다'로 바꿔 읽을 수도 잇을 것 같다. 하여 결국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분명, 희망이 그곳에 있다'고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준 상처-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때문에 남이 아파하는 것을 보며 이미 아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서로 위로가 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 그것이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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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06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다른 것에 대해서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일본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른 것에 대한 포용은 배워야 할 거 같애요.

해콩 2006-02-0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정말 그래요..^^ 보셨나요, 이 영화? 늦기 전에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