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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1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들이 대중들의 아픔에도 '피켓을 드는' 것 보고 싶습니다."
그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이면서도 못내 목구멍이 근질근질 하던 말도 바로 이것!

해콩 2006-02-1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그나마' 반대하는 걸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그 자체만을 위해서 돈 안되는 독립영화, 실험영화 제작을 포기하지 못하는 분들.. 열렬한 지지자이며 수요자이기 때문에 또한 반대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구요. 암튼.. 세상이 더 많이 평평해져서 같은 눈높이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행복나침반님.. ^^
 
 전출처 : 글샘 >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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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학급앨범 5분만에 만들기 
작성자: 임대봉,  등록일: 2006.02.08 01:59:00,  조회수: 61
무료로 포토앨범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퀵서비스에 프리로^^
정다운 포토솔루션의 앨범만들기를 이용하면 됩니다.
미리 제가 작업한 방법을 보시고 직접 방문하셔서 종업식 선물로 나눠주세요^^
먼저 무당벌레 오른쪽 날개에 있는 앨범CD를 클릭하시고 쭉 따라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잠깐!

앨범 제목과 정보가 마음에 안든다. 왜? 회사 이름이 박혔으니까!
탐색기를 실행하면 C안에 정다운 포토앨범 폴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표시한 Album DAT파일을 찾아 클릭하면
메모장이 하나 뜹니다. 이미지에 표시해드린대로 제목을 바꾸시면 우리반 앨범 이름을 넣으실 수 있습니다.




앨범이름을 고치셨다면 확인을 해 봐야겠지요.
앨범실행은 폴더안에 있는 cdalbum(응용프로그램)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 폴더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CD-WRITER기로 굽기만 하시면 자동실행 CD앨범이 완성됩니다.^^

이제 학급포토앨범CD 고민하지 말고 5분안에 끝냅시다

배경디자인과 음악변경까지 좀 더 입맛에 맞는 포토앨범은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이 사이트에 물론 다 있습니다. 이번 종업식엔 아이들에게 학급앨범CD를^^
정다운 포토솔루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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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6-02-09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샘 글 보니까 반가워요. 저는 퀴즈넷이라는 사이트에서 학급앨범 만들고 있는데 이곳 사이트도 좋은것 같아요. 얼른 회원가입해서 구경해봐야 겠어요.^^;

해콩 2006-02-10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내일이 개학이예요..샘도 방학 잘 보내셨죠? 이 자료는 [즐거운 학교]에서 퍼온 거랍니다. 내년 이 맘때쯤 혹 제가 앨범만들게 되면 꼭 도와주세요~
 

제목 : 휴대폰도 멋진 학급경영도구 
작성자: 임대봉,  등록일: 2006.02.06 15:37:00,  조회수: 78
휴대폰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를 이어주는 효과적인 의사소통도구이자 학습매체입니다.^^
저에게 답문자를 보낸것들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사용하시는 휴대폰회사 서비스 홈페이지에 접속하시면 무료문자메세지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월100건을 무료로 제공받고 있답니다^^
요렇게 한명 혹은 다섯명까지

주소록을 만들어 놓으면 그룹을 등록해서 한꺼번에도

전송확인까지


요즘은 학교홈페이지와 연동해서 문자메세지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휴대폰회사는 30원인데 20-25원에 서비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학교전체, 학년만, 학급만, 해당아이만 선택해서 문자를 보낼수도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올해부터 학교에서 예산을 잡아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학교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에 10-20만원 정도 비용으로 학부모맘도 잡고 아이들 학습흥미도 높이고요)
(학교에서 안해주시면 선생님개인으로 신청하셔도 됩니다.-검색창에서 문자 서비스 혹은 전자알림장이라고 쳐 보세요^^)

학습퀴즈를 보내면 어떤 반응이 올지 예상이 되실 거고요^^
뒷이야기 하나 하자면
"선생님, 우리 아빠가 학교에서 뭐했는지 다 알고 계셨어요^^ 난 아빠가 우리한테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맞벌이 부부들도 학교일을 알고 싶고 아이들에게 학교일도 물어보고 싶지만 우리네 학교가 워낙 닫혀 있지 않습니까^^;;;
문자메세지로 가족간 화합도 다져주고 교사의 믿음도 되찾고 가끔씩 아이들 학습동기도 환기시키고!^^

지금 바로 선생님 휴대폰 서비스회사를 방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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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자천국'이란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해서 학부모들 폰번호를 등록했어요.
폰번호를 엑셀파일로 만들어 불러들이기를 하면 여러모로 편한 것 같아요.
학부모 이름을 '정** 어머'까지만 등록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문자를 보낼 때는 '자동수신'이란 걸 이용하지요.
자동수신은 일일이 이름을 쓰지 않아도 받는 사람의 이름이 자동으로 붙는 거거든요.
문자 보내는 화면에 보면 '자동수신'메뉴가 있고, 그걸 클릭하면폰 화면에 괄호( )가 떠요. 그 괄호가 내가 등록한 사람 이름 들어가는 부분이거든요.

결론적으로,
문자를 쓸 때는
( )님!
오늘 아이편에...... 등으로 쓰지요.
그럼 받는 학부모님 폰에는
정** 어머님!
오늘 아이편에.....로 찍히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대량전송'에서 한 통의 문자만 보내도 폰번호 선택한 만큼 한꺼번에 각기 다른 이름이 찍힌 문자를 보내게 되는 거지요.
받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한테 개별적으로 보낸 것 같아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지요?
 



"돌베개"는 마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꿈을 꾼것 처럼 원대한 꿈울 품고 일제 강점기 이역만리 만주에서 죽음을 담보로 일본군 막사에서 탈출해 임정까지 끝이 없는 길을 헤쳐간 장준하의 체험수기로, 1944년 1월 일제시대에 학병으로 끌려간 일부터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활동한 12월까지 2년간의 감동적인 기록이다.

장준하는 이책의 서문에서,나는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 수기에서 하고 또 했다. 왜냐하면 내가 광막한 중원 대륙 수수밭 속을 누워 침 없이 마른 입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고, 또 눈덩어리를 베개로 하고 동사(凍死)의 기로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없이 울부짖었던 이 말이 곧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못난 조상에 대한 한스러움과 다시는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우리의 단호한 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 펼쳐진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이름없이 피 뿜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칼을 든 자들을 군림시켰다. 내가 보고 들은 그 수없이 많은 의로운 주검들이 서러워질 뿐, 여기 그 불쌍한 선열들 앞에 이 증언을 바람의 묘비로 띄우고자 한다.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었다. 그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준하의 약력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선천 신성중학, 일본 도쿄 신학교를 다녔다. 1944년1월 일본군 학도병에 입대, 중국에 끌려갔으나 그해 7월 탈출, 중국전에 가담하였다. 1945년 1월 광복군에 편입, 광복군 대위에 임관되었으며『등불』『제단』등을 간행하였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입국, 김구 주석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의원 비서 등을 거쳐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교무처장,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 국민사상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사상계』를 발행, 자유ㆍ민주ㆍ반독재 투쟁에 헌신하였으며, 1962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67년 야당통합을 추진하여 신민당에 입당하였으며, 그해 4월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되었고, 6월, 옥중출마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3년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 최고위원에 피임되었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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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선각자들은 아쉽게도 등산하다가... 실족사하고 맙니다.
안타까운 죽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