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는 마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꿈을 꾼것 처럼 원대한 꿈울 품고 일제 강점기 이역만리 만주에서 죽음을 담보로 일본군 막사에서 탈출해 임정까지 끝이 없는 길을 헤쳐간 장준하의 체험수기로, 1944년 1월 일제시대에 학병으로 끌려간 일부터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활동한 12월까지 2년간의 감동적인 기록이다.

장준하는 이책의 서문에서,나는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 수기에서 하고 또 했다. 왜냐하면 내가 광막한 중원 대륙 수수밭 속을 누워 침 없이 마른 입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고, 또 눈덩어리를 베개로 하고 동사(凍死)의 기로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없이 울부짖었던 이 말이 곧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못난 조상에 대한 한스러움과 다시는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우리의 단호한 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 펼쳐진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이름없이 피 뿜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칼을 든 자들을 군림시켰다. 내가 보고 들은 그 수없이 많은 의로운 주검들이 서러워질 뿐, 여기 그 불쌍한 선열들 앞에 이 증언을 바람의 묘비로 띄우고자 한다.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었다. 그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준하의 약력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선천 신성중학, 일본 도쿄 신학교를 다녔다. 1944년1월 일본군 학도병에 입대, 중국에 끌려갔으나 그해 7월 탈출, 중국전에 가담하였다. 1945년 1월 광복군에 편입, 광복군 대위에 임관되었으며『등불』『제단』등을 간행하였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입국, 김구 주석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의원 비서 등을 거쳐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교무처장,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 국민사상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사상계』를 발행, 자유ㆍ민주ㆍ반독재 투쟁에 헌신하였으며, 1962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67년 야당통합을 추진하여 신민당에 입당하였으며, 그해 4월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되었고, 6월, 옥중출마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3년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 최고위원에 피임되었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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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선각자들은 아쉽게도 등산하다가... 실족사하고 맙니다.
안타까운 죽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