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 안 듣는 아이’를 위하여

박노자칼럼

한겨레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어린시절 필자에게는 한 가지 헷갈리는 일이 있었다. 늘 선생님들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의 청소년이 존경해야 할 사람인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었을 때 그의 삶은 ‘착한 아이’의 모습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잘나가는’ 법률가가 되기를 기대했던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린 채 젊은날을 ‘쓸모없는’ 철학 공부로 보냈다가 빚더미에 앉은 망명객이 돼버린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자본론〉을 쓰고도 자신의 자본은 못 만들었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마르크스의 그러한 ‘탕아 행각’도 만만치 않았지만 부모의 허락도 없이 급진파 유대인과 약혼함으로써 집안에 ‘불명예’를 안겨준 그 부인 예니의 행동 또한 불효막심이 아니었던가? 예니의 이복오빠가 독일 내무장관이 되었어도 예니는 망명지 런던에서 태어난 아이의 요람을 살 돈이 없었고, 아이가 일찍 죽어도 관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탕아들끼리 평생 그렇게도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150년 전의 유럽 유산층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일처럼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월인천강, 하나의 달 그림자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경쟁주의·출세주의는 부모의 마음에 내면화해 가정마다 ‘학업 장려’와 같은 미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의 꿈을 꾸어볼 여유도 없이 부모의 꿈은 곧 아이의 꿈이 되고 만다. 입시 전쟁에서 패배하면 ‘불쌍한 무능아’ 아니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 못하는 배신자’가 되는 줄 알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전쟁 준비’에 몇 해를 허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꼭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서양음악을 아이에게 시켜야 상류층이 된다는 ‘통념’을 익힌 부모들이 “신분 상승을 도모하라”는 사회의 절대명령대로 음악과 별 인연도 없는 자녀에게 악기 공부를 무리하게 시키는가 하면, “조기 유학을 안 보내면 안 된다”는 새로운 ‘상식’대로 부모 곁을 떠날 마음도 없는 불안한 아이들을 억지로 이역으로 떼어 보낸다.

사회가 강권하는 이런 폭력의 결과는 무엇일까? 평생토록 부모에 대한 원망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아이의 심신을 파괴시킬 수도 있으며, 또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찾아내 사고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고 남을 따르기만 하는 세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작은 개발독재와 같은 ‘가국’(家國)에서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인격을 지키고 싶다면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하겠는가? 뜻이 굳건한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겠지만 그에게는, 효도를 아직도 엄숙한 최고 덕목으로 주입시키는 사회에서 150년 전에 카를과 예니가 겪은 고뇌보다 한층 더 심각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역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내세우는 부모라 해도 자신의 자녀가 마르크스처럼 행동할 경우 마르크스의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수능날에 시험장에서 벽이나 문에 기대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 필자는 감동되기는커녕 답답해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아이가 암기 경쟁에서 남을 잘 눌러 올라서서 승리하기를”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하셨듯이 (부모의 의도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도록 기도하는 것이 진정 종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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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이해찬 총리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의 모습을 보며...

먼 저편
-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체 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출전 : 먼 저편/ 체 게바라 지음, 이산하 옮김, 엮음 / 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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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체 게바라의 이 시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이 시가 아깝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강원도 산불 나서 낙산사가 불탈 때도 골프, 7월 남부 지역 호우 피해 때도 골프,
최전선 GP총기 난사 사건 위문 직전에도 골프, 철도 파업하던 날에도 골프...

국회의원들이랑 설전 벌이는 거야 그렇다 쳐도
국민들과도 설전 한 바탕 벌이시려는지...
그래도 당신이 돌베게 출판사 사장 하던 때는 이렇게 살려고 그랬던 건 아닐 텐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이철, 그래 당신이 공산당일리 없고, 그들의 사주를 받았을리는 더더욱 없네요.
긴급조치 시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당신이 이제 2,000명에 이르는 철도공사 노조원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단호한 목소리로 불법 파업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아,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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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1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석춘의 편지] 사형수 이철은 지금도 억울한가

“군사정권시절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 애처롭고 연민까지 느껴진다고 했는데 정말 모욕적인 말이었다. 내겐 가장 심한 욕설이다.”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이 철도노조 위원장의 '연민론'에 발끈해서 쏟아놓은 격정입니다. 철도노조 파업을 탄압하면서 곰비임비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일까요.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여기저기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뜻 돌아보더라도 억울해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는 이미 수구세력으로부터 과도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가령 <조선일보>가 “철도파업 이후 ‘스타’된 이철 철도공사 사장”(2006년 3월 11일치)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수구언론의 ‘칭찬’을 받은 그가 진보나 민주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겠다면 과도한 욕심입니다.

더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장 이철이 늘어놓았던 발언들을 뜯어보면 그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비정규직법안 개정과 직권중재 폐지 등에 대해 노조와 노동계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 건전한 노동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직권중재를 어기면 불법이 된다. 의도가 좋더라도 불법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 점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2006년 3월 11일치).

어떻습니까? 저는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의도가 좋더라도 불법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습니다. ‘흉흉했던 민심’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수습책’으로 살려주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국회의원이 된 그는 지금 철도공사 사장으로 노조파업에 강경대응으로 맞섰습니다. 불법파업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사뭇 자신의 ‘관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박정희가 무엇이 다를 까요.

그는 시대가 변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당시 민주화운동은 명백한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헌법과 법규 아래 말할 자유도 없었다. 지금은 정당한 운동과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있고, 적어도 정상적인 운동이 가능하다. 노동운동 자체를 탄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과거의 잣대로 오늘의 이철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지금도 직권중재 폐지는 명백한 사회정의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노동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자체를 탄압하는 사람은 없다”는 그의 발언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장 이철은 KTX 여승무원들의 농성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비정규직의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화장실 청소 등 철도공사에는 더 열악하게 일하는 비정규직이 많다”고 살천스레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변절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철 사장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철도공사 사장 이철이 지금 할 일은 자리를 걸고 여승무원은 물론, 더 열악하게 일하는 비정규직의 해소에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그의 발언은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 탓으로 돌리는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조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을 비난하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어떤 운동이든 대중(국민)을 떠나면 생명을 상실한다”며 노동운동에 훈계를 늘어놓는 풍경까지 똑같습니다.

무엇보다 노무현과 이철의 닮은 꼴 ‘압권’은 자신이 억울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철도공사에는 사장은 없고 노조위원장은 있다”는 말을 언론에 흘립니다.

철도공사 노조위원장이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발언한 게 모욕이요, 욕설이라는 '사형수' 이철, 그에게 한없이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형수였음을 ‘훈장’처럼 게시하고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묻고싶습니다. 아직도 억울한지를.
 

▶ 지금 이 순간을 살리라 [ 김연희샘 ]
번호 : 20   조회 : 445   스크랩 : 0   날짜 : 2006.03.03 12:58

- 작년에 내가 투병 중에 있을 때

많은 힘이 되어 준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이 글을 바친다 

 

 

내 아버지께서는 재작년에 돌아 가셔서

지금은 우리 곁에 안 계신다

돌아 가시기 전에 한 번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었는데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가망이 없다면서

가족들에게 다들 모이라고 하셨다

 

너무나 뜻밖이라 집안 식구들 모두

한 번만 살려달라고 미친 듯이 기도를 드렸더니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 후로 병원에서 퇴원을 하시고 집에 계시다가

한 달 후에 또 다시 입원을 하셨고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결국은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아버지를 떠나 보낼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면 도저히 감당을 못할 거 같으니까

주님께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더 주신 거 같다

 

나도 작년에 뜻밖에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가족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은 없지만

나 역시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어쩜 나와 가족들에게 준비기간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요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2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어머니께 못다한 효도도 하고

가족들과 주변의 아는 사람들한테 사랑도 흠뻑 쏟고

마지막 정성을 다해 hsk 강의도 하고

잘못 했던 일 회개도 하면서

하루하루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이런 생각하면

젊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무심히 흘려 보낸 수 많은 시간들이 너무 아깝기도 하고

오늘 또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아니 어쩜 내일이나 모레에

사고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이상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후회 속에 살거나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하며

괴로워하지 말자 다짐해 본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지금 현재 이 순간뿐이니까 ……

 

결국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까닭은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마음이 늘 현재를 떠나

과거나 미래 어딘가를 방황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현재 이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 ……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을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식사를 할 때에도

자신의 온 마음과 온 몸을 쏟아

100% 전부를 주어야 한다는 말에

가슴깊이 공감한다 

 

그렇다

현재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면

우리는 후회나 불안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한 때는

'차라리 나같은 건 애초부터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몰래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매 순간 내게 주어진 것에 몰입하고 집중하려고 하니까

지금은 마음이 더없이 평온해졌다 

만약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 속에서

좀 더 많은 친구들과 수업도 같이 하고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살갑게 지낼 수 있길 바란다

 

…….      …….     ………      …….      …….      ………     …….  

 

매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과거나 미래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말고

지금 이순간 깨어있어라

 

당신이 지금 미래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고 불확실해 한다면

그만큼의 시간과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틱낫한 스님의 <<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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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0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틱낫한 스님의 <힘>...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날 읽으며 다독거리기 좋은 책입니다. 저 역시 선물을 받은 소중한 책인데요, 스님의 삶 자체가 주는 포스가 워낙 강해서 책 전체가 경전의 말씀으로 가득하다죠.

해콩 2006-03-0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틱낫한 스님의 책은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읽어볼게요.
 

점심시간... 예쁜 색깔의 종이에 편지를 인쇄하여 복사하고 하나하나 접으면서 좀 망설였다. 편지 내용이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의 공부를 외면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구름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왕 쓴 것이고 또 나의 솔직한 맘이었기에 종례시간 들어가서 아주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며 편지를 꺼내 들었다. 내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는 데는 늘 이렇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편지를 꺼내든 그 순간, 몇몇 아이들 눈빛이 '반짝'했다. '아!'하는 짧은 탄성을 들은 듯도 하다. 그런 눈빛과 반응에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

사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운동장 조례를 하기 전, 교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몰아내면서 "샘~ 외투 입어도 돼요?"하는 질문에 "안돼!!"라고 못박아 말했다. 오늘 무지 추웠는데... 나는 내복에 두꺼운 외투까지 껴입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내 속에 녹아있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로는 '아이들 입장', '아이들 인권'하면서...

그리고 담임 시간. 이런 저런 일들에 쫓겨 허둥대면서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종례를 하면서 우리반 카페에 가입하라는 숙제를 내줄 때, 카페이름이 '강낭콩'인 이유를 퀴즈로 내면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 반응을 보고서야 알았다. 에구.. 나도 참 어지간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미안하고 또 예뻐서 사물함 이름표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래 저래 계획대로 못한 일도 많고, 아직 아이들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못 외우지만...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가야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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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했던 결심 몇 가지

1. 일단 나에게 너그러워지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하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진심만은 상대에게 전달될 것임을 믿자.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2.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함께 즐거워하자.
(아이들이나 나,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즐겁지 않다면 바람직한 활동은 아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원하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유보하고 기다리자.)
3. 단점이나 잘못보다는 칭찬해줄 만한 일에 늘 초점을 맞추자.
4. 상대방이 들어올 만한 허점, 공백, 여유를 가지자
5. 이전의 일로 현재 상황에 선입견을 가지지 말자.
6.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여덟 명의 즐거움

 




어느 날,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다시피 전철 안의 넓은 자리는
일곱 사람 정도가 앉도록 되어 있지만
조금 좁히면 여덟 사람도 앉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젊은 부인이
일곱 명이 앉아 있는 자리에 오더니
조금씩 당겨 같이 앉자고 하면서 끼어 앉았다.
그 부인은 언뜻 보기에 홀몸이 아닌 것 같았다.

먼저 앉아 있던 일곱 사람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쳐갔다.

그런데 잠시 후,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자리를 좁혀 같이 앉아가자던
젊은 부인이 미안한 듯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계속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앉아있던 청년이 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긴 좌석이 한순간
빈 자리가 되어 버렸다.

일어선 사람들은 한동안 서로 앉으라느니
괜찮다느니 하면서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잠시 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보고 웃으며
조금씩 자리를 좁혀가며 앉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Bible 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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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중심의 생각으로 좁혀지면
모두가 이기적으로 변하지만

배려하는 생각으로 넓히면 모두가 다
행복해지는 순간입니다.

당신은 어떤 모습이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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