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예쁜 색깔의 종이에 편지를 인쇄하여 복사하고 하나하나 접으면서 좀 망설였다. 편지 내용이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의 공부를 외면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구름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왕 쓴 것이고 또 나의 솔직한 맘이었기에 종례시간 들어가서 아주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며 편지를 꺼내 들었다. 내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는 데는 늘 이렇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편지를 꺼내든 그 순간, 몇몇 아이들 눈빛이 '반짝'했다. '아!'하는 짧은 탄성을 들은 듯도 하다. 그런 눈빛과 반응에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

사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운동장 조례를 하기 전, 교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몰아내면서 "샘~ 외투 입어도 돼요?"하는 질문에 "안돼!!"라고 못박아 말했다. 오늘 무지 추웠는데... 나는 내복에 두꺼운 외투까지 껴입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내 속에 녹아있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로는 '아이들 입장', '아이들 인권'하면서...

그리고 담임 시간. 이런 저런 일들에 쫓겨 허둥대면서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종례를 하면서 우리반 카페에 가입하라는 숙제를 내줄 때, 카페이름이 '강낭콩'인 이유를 퀴즈로 내면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 반응을 보고서야 알았다. 에구.. 나도 참 어지간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미안하고 또 예뻐서 사물함 이름표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래 저래 계획대로 못한 일도 많고, 아직 아이들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못 외우지만...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가야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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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했던 결심 몇 가지

1. 일단 나에게 너그러워지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하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진심만은 상대에게 전달될 것임을 믿자.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2.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함께 즐거워하자.
(아이들이나 나,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즐겁지 않다면 바람직한 활동은 아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원하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유보하고 기다리자.)
3. 단점이나 잘못보다는 칭찬해줄 만한 일에 늘 초점을 맞추자.
4. 상대방이 들어올 만한 허점, 공백, 여유를 가지자
5. 이전의 일로 현재 상황에 선입견을 가지지 말자.
6.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