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예쁜 색깔의 종이에 편지를 인쇄하여 복사하고 하나하나 접으면서 좀 망설였다. 편지 내용이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의 공부를 외면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구름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왕 쓴 것이고 또 나의 솔직한 맘이었기에 종례시간 들어가서 아주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며 편지를 꺼내 들었다. 내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는 데는 늘 이렇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편지를 꺼내든 그 순간, 몇몇 아이들 눈빛이 '반짝'했다. '아!'하는 짧은 탄성을 들은 듯도 하다. 그런 눈빛과 반응에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
사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운동장 조례를 하기 전, 교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몰아내면서 "샘~ 외투 입어도 돼요?"하는 질문에 "안돼!!"라고 못박아 말했다. 오늘 무지 추웠는데... 나는 내복에 두꺼운 외투까지 껴입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내 속에 녹아있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로는 '아이들 입장', '아이들 인권'하면서...
그리고 담임 시간. 이런 저런 일들에 쫓겨 허둥대면서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종례를 하면서 우리반 카페에 가입하라는 숙제를 내줄 때, 카페이름이 '강낭콩'인 이유를 퀴즈로 내면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 반응을 보고서야 알았다. 에구.. 나도 참 어지간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미안하고 또 예뻐서 사물함 이름표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래 저래 계획대로 못한 일도 많고, 아직 아이들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못 외우지만...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가야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