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칸에서 본 ‘용서받지 못한 자’ / 임범
아침햇발
한겨레
» 임범 대중문화팀장
칸 국제영화제에 취재를 가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처음 봤다.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그곳의 억압적 문화 아래서 ‘죽거나 혹은 버티거나’ 하는 이야기로, 지난해 말 한국에서 개봉한 뒤 이번 칸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더없이 화창하고 쾌적한 칸에서, 그와 상반되는 갑갑하고 우중충한 군대 내무반을 봤기 때문일까. 올해 칸에서 나는 이 영화를 가장 인상 깊게 봤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걱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루는 모순이 국제적으로 소통될 만큼 보편적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한국의 독특한 징병제가 외국인들에게 이해가 될수 있을까?

영화에서 말년 병장이 신병을 능글맞게 ‘갈굴’ 때, 또 고문관 신병이 맥락을 몰라하며 엉뚱한 말을 해댈 때 나는 배꼽을 잡았다. 유치하고 단순 무식해 보이는 그 권력 질서가 더없이 교활?c을 드러낼 때 나의 사병 시절이 떠올라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았다. 나는 군에 복무하는 동안 삶이 정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게 2년반을 버티는 방법이었다. ‘거꾸로 매달아도 시계는 간다’는 군댓말은 빈정댐이 아니라 귀담아들어야 할 격언에 가까웠다. 그 시간을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속으로 끌어들이면 위험하다. 영화의 세 주인공 가운데, 요령껏 잘 버텨내는 이는 제대 뒤 곧 군 시절을 잊어버린다. 고문관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이와, 군의 불합리함을 예민하게 의식했던 이는 자살한다.

알다시피 한국처럼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외출도 극도로 제한하면서 2년 넘게 모든 남자를 복무하게 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 없음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군대에서, 그것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입대해서 저항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군대 문제를 다룬 서양의 다른 영화들처럼 억압과 저항, 또는 굴복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간의 객체가 된 젊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시간을 잘 버텨내지 못하는 이들은 비극을 맞으며, 잘 버텨냈다고 해서 그 태도가 옳았던 것도 결코 아니라고 영화는 일깨운다. 군 시절 내 삶이 정지해 있었다고 생각해 온 나는 영화를 보면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삶이 정지해 있는 시간이란 없다.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고통받고 죽어간다.

그런데 외국 관객들도 나처럼 영화를 읽을까. 기자 시사회에서 한국 기자들은 웃는 동안, 외국 기자들은 조용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제 기간에 데일리를 발행하는 〈할리우드 리포터〉나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를 미국의 군대 영화와 비교하며 “흥미가 덜하다”거나 “군 내부의 억압 기제의 묘사가 약하다”고 썼다. 흥미나 묘사가 약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이들 잡지의 평은 초점이 미묘하게 빗나가 있었다.

영화를 잘 못 만든 걸까.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평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 신문은 “의무병역제가 남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며 “그 점에서 지금은 잊혀졌지만 과거에 있었던 프랑스의 의무병역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문제는 미학이 아니라 모순된 상황 자체에 있다. 미학은 다른 나라, 다른 유형의 모순들 속에서 보편성을 찾아내 소통하게 만든다. 그것을 힘들게 할 만큼 특수한 모순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모순이다. 한국의 의무병역제는 그만큼 특수한 모순이 돼가고 있다.

임범 대중문화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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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빈곤·폭력·실업 부른다”
한국 온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인터뷰
한겨레 조홍섭 기자
1975년 처음 히말라야에 위치한 ‘작은 티베트’ 라다크에 도착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한 젊은이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여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18년 뒤 그는 같은 젊은이가 어느 관광객에게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너무 가난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사이 라다크는 ‘개발’됐다.

사람들이 무역 위해 생산하도록 강요받아
‘성장 신화’ 깨고 자연·공동체로 돌아가야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이 주최한 ‘지식기반사회와 불교생태학’ 국제학술대회의 연사로 방한한 노르베리―호지는 26일 강연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들면서 세계적 빈곤을 창조하고 있는 세계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빈곤과 폭력, 실업 그리고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세계화 대신 그는 생태적,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지역화를 역설했다. 28일에는 문화세상 이프토피아가 주최하는 ‘생태 문화 프로젝트’에서 ‘여성이 만드는 생태적 삶과 문화’ 강연도 한다. 25일 동국대에서 그를 만나 그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세계화의 물결이 한국에도 거세다. 세계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세계화의 구체적 모습은 국제적인 무역과 금융의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그 영향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모든 경제활동의 규모를 점점 더 키우고 세계시장을 상대하도록 이끈다. 그 결과 미국에서조차 소규모 농업이나 식당은 물론 국내기업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세계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상당수 정치 지도자들은 세계화가 초래할 결과도 모른 채 발을 들여놓았다.

―세계화로 인해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 않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든 스웨덴이든 식품, 집값, 의료비, 교육비 등 기본적인 생계비가 올라가고 있다. 물론 수입된 가전제품 등 일부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오른다. 절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세계화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출을 위해 생산하도록 강요한다. 먼 곳에 있는 큰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사야 하는 것이다. 식품이 단적인 예다. 점점 더 먼 곳에서 난 식품을 사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거대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점점 더 먼곳서 온 물건 사게 돼

―예를 들어 대규모 농업이 전통농업보다 생산성 면에선 더 효율적이 아닌가?

=그것은 신화일 뿐이다. 혼자 트랙터를 몰고 방대한 들판에서 농사짓지만 거기에는 정부가 보조한 물,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연료가 들어간다. 그런 요인을 고려한다면 산업형 농업은 효율이 형편없이 낮을 뿐더러 실업을 양산한다.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은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농업이다. 어떤 전통적 농업체계도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법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홍성 등에서 하는 오리농법을 봐라. 이런 집약농업은 단작농업보다 단위 경지당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

―세계화는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

=세계화는 점증하는 폭력의 근본 원인이다. 세계화는 극소수의 첨단산업 일자리를 위해 수많은 일자리를 없앤다. 언론은 젊은이들에게 도시의 고급직장을 모델로 제시하고 선망하게 만든다. 공동체에서 뿌리뽑힌 다양한 인종과 종교의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만나 직장과 생계를 위한 가차없는 경쟁에 휘말린다. 이들이 겪는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와 좌절감, 무력감이 갈등과 폭력의 원인이다. 히말라야에 있는 라다크에는 불교도가 대다수이고 무슬림은 소수이지만 600년 동안 아무런 집단갈등이 없이 살아왔다. 부탄에는 불교도와 이들보다 약간 많은 힌두교도들이 비슷한 기간 평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불과 최근 15년 동안 세계화 영향으로 이곳에선 많은 사람이 죽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일자리를 둘러싸고 자기 집단 안에서, 그리고 이주민과 갈등을 빚는 것이다.

―세계화는 기업에만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왜 그런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계화의 중요한 측면은 점점 많은 나라들이 단지 거래를 위해 똑같은 상품을 한편에선 수입하고 다른 한편에선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해마다 약 90만t의 소고기와 맥주를 수출하는데 비슷한 양을 또 수입한다. 영국은 약 10만ℓ의 우유를 수출하고 또 그만큼 수입한다. 10여년 전 세계의 버터 유통을 연구한 적이 있다. 몽골에는 2500만마리의 가축이 있지만 울란바토르의 버터는 모두 독일제였다. 영국에서는 뉴질랜드산 버터가 인근 농장에서 생산된 버터보다 3분의 1 값에 팔리더라. 동일상품의 교역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무역을 늘리려는 눈먼 근본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단지 값싼 제품을 선택한 결과인가?

=단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무역을 부추기는 구조가 문제다. 만일 저마다 자기 나라 버터와 감자를 소비한다면 다국적기업은 돈을 벌겠는가. 지구 대다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건전한 경제를 지역화하는 것이다. 인류는 전통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난 산물로 의식주를 해결해 왔다. 커피나 목화, 차 등 단작농업이 시작된 것은 노예제의 유산이다. 세계경제의 시작은 노예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들 불행

―자급자족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란 뜻인가?

=완벽한 자급자족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큰 집단과 협력하고 교역을 했다. 세계화냐 아니면 라다크로 돌아가냐 식의 이분법은 위험하다. 내가 <오래된 미래>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사회에는 우리가 몰랐던 삶의 풍요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이용처럼 더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우리에겐 길이 있다. 내가 전하고 싶은 시급한 메시지는 성장에 관한 수많은 헛된 신화를 맹목적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더없이 싸구려가 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의 생존은 정말로 위협받을 것이다. 한 예로 선진국에서조차 폭력이 증가하고 있고 우울증은 하도 크게 늘어나 언론에서 ‘전염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 않나. 사람들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성형수술, 약물중독이 일반화되고 있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와 가족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가 잇따른다. 이런 사회붕괴 현상은 전통 사회에서 결코 없었던 일이다.

―세계화가 이뤄지는 양상은 어떤가?

=세계화는 저 혼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여러 형태의 보조금을 통해 세계화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류의 교육을 시키는지, 어떤 종류의 에너지와 기술에 정부가 지원을 하는지가 모두 세계화와 관련돼 있다. 정부가 무역을 위한 하부구조에 막대한 투자를 한 덕분에 영국의 슈퍼마켓들이 사과의 세척과 왁스칠을 위해 항공기로 임금이 싼 남아프리카로 실어갔다가 되가져오는 ‘미친 짓’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민 공동체 기억…희망 있다

―그런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세계화를 위해 쓰는 돈의 일부라도 지역화를 위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위해 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직거래로 이득을 본다.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살 때 그 돈의 5%만이 생산자에게 간다. 나머지 포장, 운반, 색깔 내기, 냉장, 광고 비용까지 모두 소비자가 부담한다. 직거래가 싼 이유다.

―세계화의 흐름은 거침없고 개개인은 이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가?

=가장 시급한 것은 사람들의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다행히 새로운 깨달음이나 이해가 확산되는 속도가 전에 없이 빠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계화가 효율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의 세계화를 위한 보조금 제도를 바꾸고 지역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는 일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2003년에 이어 한국을 두번째 방문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급속한 산업화로부터의 압박이 너무 큰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자연과 공동체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나 유럽보다 희망적이다. 분산형 재생에너지, 지역경제 활성화. 도시와 농촌의 더 나은 균형, 농민 존중 등에서 이 지역이 앞서 나가길 기대한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누구?
언어·환경운동가에서 세계화 반대 전도사로

1946년 스웨덴 태생의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인도의 라다크에서 16년 동안 살면서 느낀 공동체와 개발문제를 다룬 책 〈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 1994)는 전세계 5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라다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1980년 ‘라다크 프로젝트’란 국제조직을 만들었고, 그 공로로 1986년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 생활상’을 받았다. 1991년 국제생태문화협회(ISEC)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으며, 국제 세계화 포럼을 통해 세계화의 문제점을 알리는 전도사 구실을 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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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지 않는 시험이 어디 있나요?
늦깎이 방송고 학생들의 첫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이기원(jgsu98) 기자   
방송고등학교 중간고사를 치르던 전날 우리 반 39명의 학생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첫 시험을 보는 날이니 결석하지 말고 꼭 와서 시험을 보라는 내용입니다. 방송고의 특성상 결석을 하는 학생이 생각 외로 많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한 달에 두 번 출석 수업을 받지만, 그마저도 출석이 어려운 상황도 꽤나 많습니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밤새 물건을 팔다보면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해 결석하기도 하고, 산불조심 기간동안에는 일요일에도 주요 산을 돌아다니며 감시하다보면 출석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사정을 얘기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방송고 학생들의 다수가 주말을 꼭꼭 찾아먹는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지 않은 탓에 일요일에도 일이 있으면 나올 수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 이기원
그래도 시험은 꼭 보길 바란다는 담임의 마음을 문자에 담아 보냈습니다. 문자 전송이 이루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 답장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험이 다가오니 떨리지만 선생님 문자 보니 기운이 나네요."
"공부 하나도 못했어요. 도끼 준비해서 팍팍 찍어야겠어요."
"무서워서 결석하려고 했는데 선생님 문자 보니 가야겠네요. 고맙습니다."


학생들은 나이도 많고 세상의 험한 풍파를 다 겪으며 살아왔지만, 시험 앞에서 떨리고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5월 21일 일요일, 시험 날이 되었습니다. 문자까지 보냈지만 39명 중에 12명이나 결석을 했습니다.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도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책상을 시험 보는 대형으로 정렬을 하고 긴장을 풀고 시험을 잘 보라며 아침 조회를 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면 됩니다. 감독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최선을 다해 시험 잘 보세요."

학생들은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평소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소리였습니다. 다 큰 어른들이지만 시험 앞에서 긴장되는 건 아이들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느라고 공부는 해도 돌아서면 금방 까먹는다"며 걱정하는 아줌마 학생에게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 학생이 우스개 소리를 던집니다.

"그럼 돌아서지 말아요."
"뭐라구요?"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니 안 돌아서면 백점이지요."


"맞는 소리"라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려 시험시간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조회를 끝내고 시험지를 챙겨들고 3학년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방송고에서 3년째를 맞은 분들입니다. 이젠 졸업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이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책을 들고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늦깎이 방송고 학생이라고 교재가 일반 고교생들보다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거의 엇비슷한 수준에 한 달에 두 번 출석수업과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공부해 이해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학원에서 교재를 구석구석까지 들추어 가르쳐주는 일반 고등학교학생들보다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지를 나누어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는 학생도 있습니다. 객관식 답안지에 특정 번호로만 답안을 표시한 채 나가는 것입니다. 시험지와 감독 교사를 번갈아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학생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주변 답안이라도 훔쳐보고 싶어 감독 교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모르는 체 눈감아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험을 보는 데 휴대폰이 울려 쩔쩔매다 휴대폰을 꺼내 배터리를 빼버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 시험에서는 있을 수 없는 풍경입니다. 수능 시험장에서 부정이 적발된 후 시험기간에는 철저하게 휴대폰을 단속합니다. 방송고 시험장에서는 그런 살벌한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공부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합니다. 같은 반 학생을 누르고 올라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 판은 아닙니다. 늦은 나이에 힘들게 공부하는 동료들이 모두들 좋은 성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7교시 시험이 끝나고 우리 반 교실에 들어가 간단히 종례를 했습니다. 종례 후 집에 가셔도 된다고 해도 그냥 앉아 있습니다. 시험도 끝났으니 조촐하게 회식을 하고 가자는 겁니다. 선생님도 함께 가자는 권유가 있었지만 선약 때문에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떨리고 긴장되는 방송고의 첫 시험을 끝낸 늦깎이 학생들의 홀가분한 표정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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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세상보기 / 하종강의 쓴소리

하종강

단체협약에 ‘동일한 조건일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직원의 피부양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규정을 체결한 노동조합들이 있다. 회사에 조합원 자녀들을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부가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처럼 한 회사에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하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의 자녀에게 그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한 대상의 권리를 보호할 때에는 늘 그 권리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직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업장에서 정규직만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는 경우, 정규직 사원이 정년퇴직하면서 자신의 자녀를 그 회사에 취업시킬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꽤 좋은 혜택이 되겠지만, 비정규직 처지에서 보면 정규직의 부당한 ‘세습’이나 다름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들로서는 헌법상의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가 대립하는 갈등 구조에서는 약한 쪽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할 때처럼…….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구조에서는 비정규직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적 책임은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경영자에게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노동조건을 적용한다면 비정규직 차별이란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서부터 노사관계를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친다. 교과서에서는 노사관계를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 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중등학교 사회 과목의 한 교과서에서는 모두 340쪽의 분량 중에 93쪽을 노동 교육에 내주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각종 성명서, 노동 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들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모의노사교섭’이 늘 특별 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자 대표들을 뽑고 노동조합 대표들을 뽑아 임금 협상을 하고 단체 협약을 체결해 보기도 한다.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가 되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아무런 개념 정립도 없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의 노동 운동은 같을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그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하는 수준도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노동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히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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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 30년 지난 뒤에 보니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대학교 은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동창생의 아버님이기도 하신 분이다. 은사님의 아들이자 고등학교 동창생인 친구를 어언 30년 만에 빈소에서 만났다.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보기 좋게 기른 동창생은 ‘벽오동 심은 뜻은…`… 와뜨뜨뜨뜨…`…’를 목청껏 부르던 가수 김도향처럼 넉넉하고 보기 좋은 풍채와 인상으로 문상객들을 맞았다. 검은색 상복조차 썩 어울리게 차려입은 옷처럼 느껴지는 게 한눈에 보기에도 나하고는 ‘노는 물’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일주일에 몇 건씩이나 받을 만큼 이제 나이를 먹은 동창생들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병원 영안실에 왁자지껄 모여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그런 동창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대학교 동기들한테 받기 전에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먼저 했어야 마땅한데 그런 연락도 없었다. 이른바 일류, 이류, 삼류를 따지던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우리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동안 같이 다녀서 흔히 말하는 ‘아삼육’이기 마련인데 그 동창생 친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야, 왜 고등학교 동창 놈들이 한 명도 안 보이냐? 벌써 다들 왔다가 갔냐?” 내가 물었을 때 그 친구는 손바닥으로 자기 무릎을 치며 서슴없이 답했다. “내가 그때 낙제했잖냐.”

맞다. 그런 일이 있었다. 서울대학교에 백 명을 넘겨 보내야 한다고 조회시간마다 교장 선생이 교단에 올라서서 “올해에는 반드시 백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하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대. 반 편성이 아예 ‘서울대반’, ‘연고대반’, ‘기타대반’ 이렇게 돼 있어서 교련 시간에 열병분열을 연습하다가 줄이 좀 틀리면 교련 교사가 마이크에 대고 “거기 기타대반! 줄 틀렸잖아. 너희들이 인마, 그러니까 기타대반이지!”하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야단을 치던 시대. 그 살벌한 시대에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겠다고 우리 학년이 고3으로 올라갈 때 학교에서 여든 명 가량을 낙제시킨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바로 낙제생이었던 거다. 그 낙제생에게는 중·고등학교 5년을 같이 다닌 친구들도 ‘동창생’이 아니었던 거다. 그렇다고 잠깐 같이 공부한 1년 후배들과 동창생이라고 어울릴 수도 없었던 거다. 시험 점수 좀 못 받았다는 이유로, 5년 동안 쌓인 학창 생활의 인연을 몽땅 빼앗아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으로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낙제를 했지만 지금 한결 넉넉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나, 힘들게 공부해 명문대를 나왔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동산 불리는 일에만 열심인 친구나,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그 살벌한 노력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들인가.‘입시지옥’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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