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문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세상보기 / 하종강의 쓴소리

하종강

단체협약에 ‘동일한 조건일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직원의 피부양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규정을 체결한 노동조합들이 있다. 회사에 조합원 자녀들을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부가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처럼 한 회사에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하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의 자녀에게 그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한 대상의 권리를 보호할 때에는 늘 그 권리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직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업장에서 정규직만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는 경우, 정규직 사원이 정년퇴직하면서 자신의 자녀를 그 회사에 취업시킬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꽤 좋은 혜택이 되겠지만, 비정규직 처지에서 보면 정규직의 부당한 ‘세습’이나 다름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들로서는 헌법상의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가 대립하는 갈등 구조에서는 약한 쪽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할 때처럼…….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구조에서는 비정규직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적 책임은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경영자에게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노동조건을 적용한다면 비정규직 차별이란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서부터 노사관계를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친다. 교과서에서는 노사관계를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 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중등학교 사회 과목의 한 교과서에서는 모두 340쪽의 분량 중에 93쪽을 노동 교육에 내주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각종 성명서, 노동 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들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모의노사교섭’이 늘 특별 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자 대표들을 뽑고 노동조합 대표들을 뽑아 임금 협상을 하고 단체 협약을 체결해 보기도 한다.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가 되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아무런 개념 정립도 없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의 노동 운동은 같을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그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하는 수준도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노동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히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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