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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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폭력적 태도로 으시대는 승리자의 축구

 

월드컵 1차전에서 토고에게 2:1로 이긴 후 한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통쾌’한 승리라고 열광한다. 하루 종일 어젯밤의 축구 승전보로 텔레비전 화면이 정지되어 있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지 승리의 기쁨은 다 같다. 게임에 이기기 위하여 경기장에 나서는 것이지 지기 위하여 입술 꽉 다물고 경기장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치러야할 게임이라면 이기는 것이 좋다. 그동안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준비한 시간과 노력의 땀방울의 대가로 주어지는 쾌감은 고대 원시의 사냥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 직립보행을 시작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부터 사냥은 가열차게 속도감을 높였다. 그 후 인간은 악전고투 끝에 싸움에서 ‘이긴 자’가 차지하게 되는 권력과 명예의 질량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체험했다. 인간이 단순히 먹이 사냥에만 머물지 않고 육체적 운동 경기로 시합을 벌이게 된 것은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권력과 부와 명예의 영역이 얼마나 깊고 넓게 존재하는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속 98km로 달리는 아프리카 가지뿔 영양을 잡는 대신에 축구공을 차며 달린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있어 일반서적을 전혀 읽지 못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공부에 ‘요령’이 없다보니 머리가 아프다. 그럴 때마다 국악방송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놓고 듣는다. 오늘 오전 11시경의 일이다. 방송에서 어젯밤의 승전보를 재탕하는 여자 진행자의 부드러운 말끝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애국가가 두 번 울려 나올 때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 때 이길 것이라고 예감했다. 운동복도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모른다. 토고 선수들이 자꾸 불쌍하게 보였다. 운동복도 조잡하고 선수들도 이상하게 생겼다. 우리 선수들 모두 너무 잘 생기고 스폰도 최고였다고 본다.” 나는 서둘러 발작적으로 마우스를 끌어와 라디오 방송을 닫았다.


여자 진행자의 맨트는 작가가 써 준 대본에 의한 낭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적 우월감을 마음껏 드러낸 승리자의 거만함을 으스대는 철없는 방송작가의 모습이 종일 안방에서 왕왕대는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들과 다르지 않다. 투견장에서 이긴 개의 모습으로 오만가지 다 끌고 나와 승자의 쾌감을 즐기는 저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10분에 11.2km나 냅다 달리는 아프리카 가지뿔 영양을 사냥하는데 성공한 사냥꾼은 마을로 돌아와 무용담을 계속한다. 사실은 몸무게가 100kg이나 나가는 수컷 마운틴고릴라가 나를 노려 보길래 총을 겨눴다가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봐줬다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차저차 가지뿔 영양을 잡았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사자를 잡으려다가 고기가 맛없어 보여 포기했다는 진도까지 나아간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에서 가장 빠른 영양 한 마리를 잡았다는 명예를 무슨 수로 상승시킬 것인가.


월드컵이 열리기 얼마 전 토고의 한 선수가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게 6:0으로 이겨서 수치심을 안겨 주겠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한국인들은 다시 들끓어 왕왕댔다. 그런데 토고선수의 이런 발언이 나오기 직전에 나는 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아프리카 축구는 다 거기서 거기”덧붙여서 토고의 1인당 GNP와 경제수준, 토고 축구협회의 엉성한 내분(대통령 동생이 축구협회장)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3일에 한 번씩 대통령이 바뀌는 아프리카의 열악한 정치상황까지 비하했다. 한마디로 토고라는 한 국가의 국가통계 지수를 월드컵의 목전에까지 바짝 끌고 나와 까발리면서 ‘하위적 열등’의 존재로 토고를 비웃었다. 경제적 수준을 기준으로 삼고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축구공에 질긴 끈다발로 연결짓는다.


오늘 내가 들은 방송의 진행자 맨트 또한 그 기자와 다르지 않다. 애국가가 두 번 울리는 것에 긍지를 갖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방의 비통함을 동반하는 일에 기뻐하는 일이라면 불타는 로마시내를 내려다보며 ‘황홀하게’ 여기는 눈물을 흘린 폭군 네로의 심장과 너무 닮아 있다고 본다. 운동복이 한국선수보다 품질 면에서 뒤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싸워준 토고 선수들이 더 대단하지 않을까.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발언 앞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말하는 주둥아리를 만들어준 일이 실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누런색의 한국인의 피부도 이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이런저런 글과 말 중에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억지와 편협한 자유분방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승리자의 축배를 드는 일에 패배자의 굴욕감을 재차 확인하는 일도 모자라서 인종적, 국가적, 경제적, 나아가서는 인권적인 모욕감까지 양념으로 삼는 일. 한국인의 폭력성에 갑자기 씁쓸해진다.


말이 여기까지 나왔으니 한 마디 하자. 한국축구는 토고를 만나 결. 코! 잘 하지 못했다. 토고의 아데바요르나 쿠바자같은 포지션이 FW인 선수들의 돌진은 무서웠다. 한국선수들이 좌우로 공을 돌리는 편에 반해 토고선수들은 공을 잡으면 무조건 전진이었다. 나아가는 것, 공을 차면서 앞으로 뛰어 달려가는 것이 축구라면 한국 선수들이 어설픈 패스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안정적인 빈틈만 찾으려는 것에 반해 모험과 도전의 무모함으로 달리는 토고선수들의 축구가 나는 더 재미있었다. 그들에게선 탄력적인 ‘야생 축구’가 분출되고 한국선수들은 계산된 ‘기술 축구’가 주 특기다. 더구나 후반 27분 터진 안정환의 중거리 슛으로 2:1로 역전한 상황이 벌어진고 나서 그 후부터 한국 축구는 실망 그 자체였다. 승리를 굳히려는 작전이었는지 선수들은 백패스로 시간을 끌었다. 얼마나 백패스를 즐겼는지 세 번이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지구상에서 축구장에서 백패스를 기꺼이 즐기는 국가는 한국 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욕까지 했다. 응원을 하면서 목이 쉰 사람이 있는 판국에 자국의 축구 선수를 욕하면서 목이 쉬는 경우도 흔치 않다. 세상에 열성분자인 내가 이렇게 변절하다니!


1인당 GNP가 2만 불 수준인 국가의 축구가 더 나은지, 330달러의 국민 소득 수준의 축구가 더 나은지 모르지만 토고 선수들의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은 한국을 압도했다. 토고 선수들이 끝까지 축구공을 놓지 않은 이유가 패자의 위치였겠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하여 시간 지연작전으로 일관한 듯한 후반 20여분은 한국 축구 팬으로서 내가 계속 남아야 하는 것인가 회의를 갖게 한다. 축구는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언어의 폭력으로 축구를 지배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게 된 어제 오늘, 승리는 했지만 기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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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독일과 2002년 한국

주한 독일인이 본 월드컵…
독일의 스위스 월드컵 우승과 비슷한 2002년 4강 신화…
2006년 여름 한국인에게 다시 기적이 오길 바라지만,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 한네스 B. 모슬러(강미노) 주한 독일인·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1954년 독일 축구대표팀은 스위스 베른에서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면서 전쟁 패배와 나치 범죄로 완전히 꺾였던 독일인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특히 독일축구단은 약팀으로 평가됐지만, 결승까지 진출해서 우승 후보인 헝가리와의 전반전에 골 2개나 허용한 상황에서도 결국 3 대 2로 이겼다. 그래서 이 시합을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적’은 1954년 7월4일에 일어났다. 당시 독일인은 희망을 조금이라도 되찾음으로써 몇십 년 뒤 또 다른 ‘기적’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박정희가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저서에서 그렇게 찬양하는 ‘라인강의 기적’ 말이다.

선전되고 조작된 열기

한국과 독일의 인연(?)은 이미 1954년 스위스에서 시작했다. 당시 한국대표팀은 아시아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여했다. 물론 독일과 붙지도 않았고, 헝가리에 0 대 9, 터키에 0 대 7로 패배했지만 참가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6월20일치에 실린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축구단에 대한 보도는 같은 면에 실린 연고전 보도보다 겨우 몇 줄 더 길었을 뿐이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에서 월드컵 첫 출전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당시 정전(停戰)된 지 15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국가대표단을 성공적으로 세계대회에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비교가 된다.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치러진 월드컵의 열기 말이다. 1954년에 뜨거웠던 독일인들, 그리고 2002년 뜨거웠던 한국인들, 그들이 무엇인가를 공유한 것만 같다.

2002년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보여준 ‘열광’도 대단했다. 월드컵은 해외 동포들에게도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대중의 단순한 열기와 쾌락주의 말고는 이런 엄청난 덩어리의 등장은 공포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위험한 순진함이랄까? 왜냐하면 그 열정을 눈치 빠른 산업은 상업화하고 정치계는 정치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시민과 기업들이 자연스러운 열기와 기획으로 반응했지만, 2006년은 선전되고 기획되고 조작된 열기의 성격이 짙다.

스스로에 대한 견제와 책임을

1954년 월드컵을 묘사한 영화 <베른의 기적>의 감독 보르트만은 “세계대회 우승은 당시 독일인에게 새로운 활기와 일체감을 주고, 나치시대와는 다른 의미의 집단적 행복감을 줬다”고 말한다. 역사학자 중에서도 “세계대회 우승은, 당시 독일 사회가 전쟁 뒤에 짓눌려왔던 모든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주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서독연방공화국의 시작이었다”는 평가까지 내린다.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인 독일 대 헝가리 전, 독일이 우승컵을 거머쥐며 '베른의 기적'을 일으켰다. (사진/ 연합)

한국의 입장에서는 2002년 월드컵 때의 업적이 기적에 가까웠다. 2006년의 꿈까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순수한 행복의 축제가 될지, 아니면 상업주의자들의 잔치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오히려 좋지 않은 예감이 강하다. 이번 월드컵의 열기가 스포츠의 악몽이 되지 않도록 가장 먼저 아드보카트호가 책임질 일이겠지만, 한국인이 자신의 사회에서 나아가 세계 시민사회에 빨간 신호의 기억을 남기지 않도록 스스로에 대한 견제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종의 자기 계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1954년 독일의 기적과 1936년 손기정의 기적을 생각하며, 2006년 여름 한국인에게 다시 한 번 ‘베를린의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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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공공의 폭력을 싣고…

인권운동가가 본 월드컵…
승리의 환호 속에 ‘불편한’ 소식은 외면당하는 6월 …
애국의 열기가 치솟는 틈을 타 국가는 약자들의 시위현장에 폭력을 행사한다

▣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야, 6월은 안 돼. 뭔 일을 해도 안 된다고.” “개막 전후 며칠간이 제일 위험해. 그때 칠지 몰라.” 월드컵의 계절이 왔다.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월드컵의 신화여, 어게인(Again)! 한몫 챙기려는 언론과 자본이 다시금 월드컵의 열광을 부추기는 요즘, 운동단체들은 6월을 피해 행사 일정을 조정하고, 6월을 기해 휘몰아칠 국가폭력에 대비하느라 그야말로 똥줄이 탄다. 월드컵은 탈정치화와 정치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련된 정치의 장이다. ‘현실의 전쟁’을 비가시화하는 대신,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국민 총단결의 기치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다. 그래서 월드컵은 인권의 무덤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사람들은 둥근 축구공이 빚어내는 극적 드라마와 묘기대행진, 자국의 순위에 넋을 빼앗긴다.

월드컵의 암운은 오래간다

그사이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불편한’ 소식들은 참담한 외면을 당해야 한다. 지난 2002년에도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사망 소식은 변방에서 소리소문 없이 잊혀졌다.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노점상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공(公)폭력’이 들이닥쳐도 그 현장에 따라붙는 언론은 없었다. 외국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98년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한국을 3 대 1로 격파하자 거리로 쏟아져나온 인파는 “멕시코! 멕시코!”를 외치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며칠 전 치아파스주 사파티스타를 상대로 멕시코 정부가 벌인 폭압적 진압작전은 승리의 환호 속에 ‘잠겨버렸다’. 올해라고 다를까. 가히 인권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총공격이라 부를 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 평택의 고통은 ‘온 국민이 하나’라는 강요된 신화 속에 묻힐 것이다.


△ 평택 대추초등학교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에 저항하는 시위대. 월드컵에 평택의 고통은 묻힐 것이다. (사진/ 류우종 기자)

더 큰 문제는 월드컵 동안 치솟을 애국의 물결이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이 사회에 깊은 암운을 드리울 것이라는 점이다. 월드컵은 국가별 대항전으로서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요소를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상업적 이익에 눈먼 언론은 기꺼이 애국의 열기를 주조해낸다. ‘전사’와 ‘정복’이라는 군사주의 용어가 판치는 이유도, 국가의 자존심을 연거푸 읊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승에 집착하는 광적 열기는 자연스레 국가주의와 파시즘적 몰이성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 뒤 12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숨진 사건을 보자. 문제의 경기가 국가 대항전이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응원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축구였다고? 글쎄…. 월드컵은 순수한 축구팬들이 빚어낸 신명나는 축제였을 뿐이라던, K리그에서 다시 보자던 붉은 악마의 공언은 어디로 증발해버렸나.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외치라

‘온 국민의 하나됨’을 강조하며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하나의 열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노동자와 노점상, 장애인들의 정당한 생존에 대한 요구는 어느새 국가 통합을 해치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치부되고 만다. “평택 주민들은 사익(私益)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백기 투항하라!” 땅에서 농사짓는 일이 곧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 하나로 보수언론의 뭇매와 군경의 공포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더 휘몰아칠 ‘국익’ 공세는 여론의 차가운 외면 속에 평택 주민과 지킴이들의 숨통을 아예 끊어놓을지도 모른다. 국익의 신화 속에, 애국의 물결 속에 소수자의 목소리, 다른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지금 평택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말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는 없다. 다시 우리의 외침은 필승도, 애국도 아닌 인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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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1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백배공감. 그야말로 '인권은 월드컵 앞에서 멈춘다'군요.

해콩 2006-06-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말, 그렇군요. ^^
 

짝~짝 짝짝짝 FTA반대!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던 3월16일, 한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격파하고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지상파 방송의 9시 뉴스는 모두 한-일전 승리 소식들로 채워졌다. 이 경기를 생중계했던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정확히 37분을 할애해 승전보를 보도했다. 9시 뉴스 시간이 통상 45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뉴스데스크>는 WBC를 위한, WBC에 의한, WBC에 대한 방송이었다고 할 만하다.

2002년보다 보수화된 2006년

흥미롭게도 이날은 지난 4년7개월 동안 법정 싸움을 벌였던 새만금 공사 매립면허 무효소송이 기각당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한국형 개발주의와 왜곡된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개펄 생태보존 지역을 지도에서 삭제해버린 비극의 날이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새만금 사건은 WBC의 과잉된 승전보 소식에 압도당해 제대로 시청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월드컵 이벤트는 야구의 정치적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1962년 칠레 정권은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을 이용했고, 196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월드컵 우승을 틈타 임금을 동결했다. 1976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정권은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이용했고, 페루 선수단을 매수해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해 본선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6~7월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이다. 주지하듯이 한-미 FTA는 단지 무역 개방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지형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고, 향후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줄 정치적 사안이다. 지난 WBC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스포츠 애국주의의 열기가 지속돼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린다거나, 현실정치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정치적 ‘잠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쉽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단선적으로만 생각해보면 ‘2006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반대, 혹은 평택 미군기지 확정 이전반대 운동 정세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선 탈락이 사회운동에 유리할까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2006년 독일월드컵은 2002년처럼 개최국가로서의 문화적 프리미엄이 없는데다 경기 시간대와 경기 참여 방식이 현장 중심으로 이뤄질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 담론은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주도될 것이 분명하다. 즉, 몸으로 부딪치고 참여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보다는 대부분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 채널을 통해, 상품광고 형식을 통해 월드컵의 열기를 간접 체험하는 방식이 두드러질 것이다.


△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2002년 시민적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한 재앙이다. 월드컵을 통해 FTA의 실상을 알릴 수 있을까.(사진/한겨레 김태형 기자)

여기에 이미 올 초부터 사회적 공분을 야기했던 특정 기업들의 지나친 월드컵 상품 전략들이 문화적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고, 급기야 공공 광장의 사용을 사기업화하는 현상이 초래됐다.

다른 한편으로 2006년 한국 사회 정세는 2002년과는 달리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 이는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시민들의 국익우선론이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사례나 동아시아 내 한류에 대한 시민들의 우월의식, 그리고 지난 3월 WBC 정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과열된 내셔널리즘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국익을 기반으로 한 신우익주의의 등장이 월드컵의 열기를 오히려 보수적 애국주의로 무장해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2002년 시민들의 참여 열정으로 탄생한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카드를 정권의 정체성 전략으로 내세우는 마당이고, 스크린쿼터제가 국익을 위해 축소될 수 있다거나 한-미 FTA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협상이라는 대중의 정서들이 예상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2002년과는 다르게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운동 정세와 무관하거나 관련이 있다 해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는 없을까? 차라리 한국 선수단의 예선 탈락과 월드컵 국면의 조기 마감이 사회운동 진영의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월드컵 기간에 월드컵 응원현장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FTA 대미 협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면, 단순히 월드컵 자체를 보이콧하는 운동보다 긍정적인 정치 효과를 낳을 것이다. 한-미 FTA가 스크린쿼터 축소나 전면 폐지를 전제로 한 것이고, 스크린쿼터 폐지는 곧 미국의 다국적 자본의 방송 개방을 전제로 한 것인바, 이번 기회에 한-미 FTA가 문화적 주권의 상실은 물론 한국 문화 기반의 총체적 몰락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사실 1994년 미국원드컵을 기점으로 월드컵의 경제학은 이미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와글로벌 문화자본의 중심에 있다. 월드컵의 모든 광고와 이벤트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락없이는 아무 것도 허가를 받을 수 없다.(주 1참고) 만일 한-미 FTA가 시장의 완전한 개방으로 이어져 공공부문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시민들의 스포츠 채널권이 다국적 미디어기업들에 봉쇄돼 돈을 내지 않으면 중계를 볼 수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 있는 광장마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먼저 거리의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컵의 시민적 열기로 시작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돌이켜보면 시민들의 자발적 열정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정치적 대의권력들이 철저하게 이 열정을 묵살하거나 왜곡해왔음을 알 수 있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에 막대한 부만 안겨주고, 민생의 곳곳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공공성의 파괴와 이로 인한 서민 경제의 파탄을 예고하는 한-미 FTA야말로 현재의 참여정부가 2002년 시민적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NO FTA"골 세리머니를 기대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국가, 자본, 미디어의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흡수 공세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없던 일상을 반전시킨 장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국면은 시민들의 따분한 일상의 신경계를 건드렸고, 국가의 장기 폭력과 자본의 독점, 정치의 치졸한 매수로 오랫동안 감옥의 그늘에 살았던 많은 시민들의 '화려한 외출'을 자극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국면이 2002년보다 보수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하고 자생적인 사건 속에서 현재의 한-미 FTA로 대변되는 한반도 정세의 위기를 반전시킬 계기가 마련될지 모르겠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어질 시민들의 응원 열기의 감수성 안에 잠재되 있는 자율성의 에너지가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는 한-미 FTA에 제동을 걸 수 있지 앟을까 싶다. 아니면 한국 선수 누군가가 월드컵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로 "NO FTA"가 새겨진 러닝셔츠를 들어올리는 사건의 반전을 꿈꾸면서 현장에서 사건들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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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6-1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토고전이 끝났다.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 속에서 '한-미FTA 반대'에 관한 부분을 찾아내는 건 이미 불가능해보인다.

해콩 2006-06-1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 1) 지식채널e( http://www.ebs.co.kr/HOMEPAGE/index.asp)의 "Made in FIFA 참고"

글샘 2006-06-1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축구 선수는 오로지 운동-기계가 되기 쉬우니까요.
중고교에서 수업도 안 받고 공만 차는데 철학을 갖기가 쉽지 않겠죠.(하긴 수업 받아도 철학은 ...ㅠㅠ)

비로그인 2006-06-1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빌려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BRINY 2006-06-1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16강 첫 경기가 기말고사 첫날 새벽이더라구요. 그래서 16강 탈락을 기원한다니까 애들이 일제히 "매국노! 이완용!" 이것들아! 너희가 공부 안하는 게 국력 떨어지는 지름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