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치는 통계] 80만원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겨레21 616호)

2008년부터 연간 총소득(부부 합산)이 1700만원 이하인 ‘차상위계층’ 근로자 31만 가구에 현금으로 최대 80만원을 지급하는 근로소득 지원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 시행안이 발표됐다. 한국조세연구원이 정부 의뢰로 마련한 방안을 보면 수혜 대상은 △무주택자로 재산(주택·토지·자동차·금융 등) 가액이 1억원 이하이고, △18살 미만 자녀를 둘 이상 부양하고, △근로소득·사업소득·부동산임대소득·이자·배당·연금소득 등을 합해 연간 총소득이 17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일시적 소득인 퇴직금과 양도소득은 총소득을 산정할 때 제외된다. 이혼 등의 사유로 혼자서 자녀 둘을 키워도 지원 대상이 된다. 그러나 부부 중 한 명이 자영업자라면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일용직도 임금 내역 등을 세무당국에 내면 지원 대상이 된다.

구간별로 연간 근로소득 0∼800만원은 소득액의 10%를, 800만∼1200만원은 80만원 정액을 지급하며 1200만∼1700만원의 경우 1700만원에서 소득액을 뺀 나머지 금액의 16%만 받는 방법으로 지원액이 줄어들어 1700만원에 도달하면 ‘제로’가 된다. 이렇게 되면 연간 근로소득 300만원 가구는 30만원, 1천만원 가구는 80만원, 1400만원 가구는 48만원, 1500만원 가구는 32만원을 각각 받게 된다. 수혜 대상 여부를 따질 때는 총소득이 기준이지만, 소득 구간별 급여액을 산정할 때는 근로소득만을 기준으로 한다. 1700만원은 4명 가구 기준 최저 생계비(월 117만원, 연 1400만원)의 1.2배 수준이다. 시행 2단계로 2011년부터는 자녀 1명을 둔 근로자가구까지(약 90만 가구) 혜택을 주고, 3단계로는 2014년부터 자녀 1명 이상을 둔 자영업자는 물론 학습지 교사, 보험 모집원, 골프장 캐디 등도 지원 대상이 된다.

EITC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정부가 일정 금액의 현금을 보조해주는 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EITC를 추가하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대상인 기초수급자는 근로를 하지 않아도 보조금을 받지만 EITC는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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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치는통계] 52.2%의 배짱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겨레21 618호)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할 의무를 지우는 근거 규정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제23조, 24조)에 마련돼 있다. 이 법규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을 소속 공무원 정원의 2% 이상 고용해야 한다. 기준을 지키지 못한 경우 신규 채용 때 장애인을 5% 이상 뽑아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상시 5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각종 공사 등 공공기관도 포함)은 2% 이상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1인당 50만원의 부담금을 내도록 돼 있다.

기획예산처가 관련 부처들과 합동으로 94개 공공기관들의 장애인 고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 의무 비율을 지킨 공공기관은 47.8%에 지나지 않았다. 조사 대상 기관의 52.2%가 의무 비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기관별 실태를 보면, 청소년수련원(장애인 고용 비율 22.9%), 석탄공사(9.0%), 인천항만공사(8.8%) 등 44개 기관은 기준을 맞췄지만 한국전산원(0.3%), 한국소비자보호원(0.4%), 한국산업단지공단(0.5%), 대한무역진흥공사(0.5%) 등 48개 기관은 기준치에 미달했다. 증권선물거래소·방송영상산업진흥원·과학문화재단·시설안전기술공단·건설교통기술평가원·국제방송교류재단·S/W진흥원 등 7개 기관은 장애인 고용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담금 낼 재원을 많이 쌓아둔 모양이다. 공공기관들의 실정이 이런 터에 민간 기업들더러 비율을 지키라고 해봐야 먹혀들기 힘들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계천 홍보협력팀장은 “그래도 장애인 고용률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한가닥 희망으로 꼽는다. 장애인 고용률은 2000년 0.73%에서 2001년 0.87%, 2002년 0.99%, 2003년 1.08%, 2004년 1.26%로 높아졌다. 2005년 수치는 집계 중이라고 한다. 법에 정해진 최소한의 기준선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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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찌감치 버스정류소에 앉았다. 어제처럼 40분을 내쳐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어제 산 [헌겨레21]을 느긋하게 읽으며. 기사아저씨께 우금티 전적비 근처에서 내려주십사 부탁하고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어제 빵 먹느라 미처 보지 못한 여러 풍경이 스친다. '동학혁명군위령비'는 버스정류소에서 생각보다 멀었다. 야트마한 고개 위에 하얀 탑이 삐죽 보였다.  그 옆으로 지도에는 없는 터널이 뚫려있고 그 앞로도 한창 도로확장 공사 중이었다. 대한민국은 온통 '도로공사' 투성이군 투덜거리며 자갈길을 성큼성큼 올랐다.

73년 천주교에서 사업을 주관하면서 박정희를 명예회장(직함은 정확하게 생각나질 않네.. 흠--;)으로 위촉,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 세운 비라 하였다. 동학혁명 정신을 등에 엎고 싶었을 그의 얇팍한 계산이 웃기지도 않았다.  위령비에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 비슷한 표현이 두어 번 보인다. 아니다. 이젠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뭉개버렸다.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5,16'이라는 숫자도 가까이 가서 째려봐야 보인다. ㅋㅋ

노랗고 까만 이름 모를 새들이 독특하게 울어주던 뒷 숲은 음산했다. 축축했고 우울했다. 백여 년 전 이 곳엔 악착같이 싸우다 일제에게 빌려온 화승총에 쓰러져간 시체들이 쌓이고 쌓였을거다. 이 곳 뿐만이 아니었겠지. [답사여행의 길잡이]에 '결국 참패한 농민군의 시신이 골을 메운 바람에 이름이 붙게 된 송장배미 등의 전적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기록도 있다. '그때 관군의 좌선봉장은 다음과 같이 농민군의 처절한 전투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 수만이나 되는 비도가 사오십 리에 걸쳐 길을 쟁탈하고 산봉우리를 점거한 뒤,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에서 밀려들고 좌에서 번쩍 우에서 번쩍 하면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앞을 다투어 올라오니, 도대제 저들은 무슨 의리, 무슨 담략을 지녔기에 저리할 수 있는 것일까?"' 불과 백여 년 전에 이 곳에서 그런 죽음이 있었던 거다. 지금은... 지금은... 민중들의 삶이 조금 나아진 세상이 된 걸까? NEF-신경제학재단에서 측정한 나라별 '행복지수'가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실렸는데, 전체 178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102위를 했단다. 주1)  --;

버스 시간을 계산해보니 11시 30분쯤에 다시 정류소로 가면 될 것 같았다. 30분쯤 책을 읽고 일어서 위령탑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잰 걸음으로 고개를 내려왔다. 45분쯤 버스에 오르자마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공주시티투어 안내원이었다. 지난 금요일 오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었었다 . 지금 시청에 있는데 올 수 있겠느냐고. 어제 박물과, 무령왕릉을 다 돌아보기도 했고,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뭔 도자기 체험, 판소리 체험, 이 딴거 하기도 쑥스러울 것 같아 '됐습니다'했다.

버스가 어제 돌던 코스와는 달리 움직인다. 어제는 연문 앞에서 회차했는데 오늘은 연문 사이를 통과하여 무령왕릉, 박물관을 거쳐 곰나루 관광지의 웅비탑앞에서 돌아가네. 같이 연수받는 샘들에게 이 유용한 정보를 꼭 알려주어야겠다. "자동차 없이도 무령왕릉, 박물관 갈 수 있어요~" 아침에 비젼하우스 앞에서 같이 버스를 탔던 꼬맹이 네 녀석이 물에 젖은 채 버스에 올랐다. 강에서 물장구라도 친걸까? 오는 길에 버스정류소 안내판에 2번 갑사, 7번 마곡사 라고 적힌 걸 봤다. 앗! 이런 훌륭한 정보를!! 라식수술이 진가를 발휘하네. 점심 먹고 마곡사나 가볼까?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서 EBS 다큐멘터리와 일요시네마를 보고 움직일까 했는데 이미 다른 사람들이 채널을 선점해버렸다. 바로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간식거리를 사면서 물어봤더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7번을 탈 수 있단다. 배차간격이 만만치 않을거니까 정류소에 죽치고 앉아 책을 꺼내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2시 10분에 차를 탔다. 어라, 차비가 시내버스 요금이랑 같다. 950원!! 공짜다, 공짜! 30분 뒤 마곡사 앞에 도착했다. 가게 아주머니께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여쭤봤더니 3시 4시 5시 6시20분.... 이고 마지막 차도 9시쯤에 있다했다. 저녁먹을 시간에 돌아가려면 6시 20분차는 간당간당하겠는걸.. 시간은 많다.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겠다.

절 입구에 전통빗을 파는 가게가 있다.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들어갔는데...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그 빗에 마음이 끌려버렸다. 거금 들여 엄마꺼 샀다. 그러니 괜히 올케랑 언니가 맘 쓰여 싼 것으로 두 개를 더 샀다. 수업자료로 쓰면 좋겠다 싶어 문자화(한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 맞나?)엽서와 민화 엽서. 모두 오만원어치다. 내일 계좌로 넣어드려야한다. --;; 나와서는 인절미도 샀다. 떡순이가 떡가게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삼천 원.

어제 갑사에서도 그랬는데 이곳도 템플스테이 체험 온 아이들로 '고즈넉하고 한적한 사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중 속으로 들어오려는 건지, 민중의 자본을 끌어내려는 건지 헷갈리지만 뭐 판단하지 말아야지. 내가 그럴 주제도 못되고. 지나치게 깨끗하고 단정하다. 뭔가 불편하다. 큰조카 녀석 6살 먹은 해에 가족들과 한 번 왔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자본의 '힘'일까? 강산 한 번 변할 유장한 시간 흘렀으니 절집이라고 남아나겠는가마는...

용기가 없어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에 들어섰다. 그저 가만히 앉아 이리 저리 둘러보고 책에 나와있는 문화재를 확인했다. 대광보전 바닥에 130여년 전 어느  앉은뱅이 신자가 짠 참나무껍질 자리가 깔려있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천으로 만든 자리네? 살짝 들춰보니 다행이 세월이 느껴지는 그 참나무껍질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아~ 본존불 비로자나 부처님은 황금색 찬란하셨다. 영산전 부처님들 도금?을 다시 하기 위해 '정성'을 한창 모으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이 비로자나 부처님도 얼마 전에 황금옷을 새로 갈아입으셨나보다. 부처님의 금빛찬란함과 신자들의 신심은 비례하는 걸까? 새 옷을 입혀드리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되기도 한다.

6시에 정류소에 도착! 버스는 칼처럼 6시 20분에 출발했다. 예상밖에 승객이 꽤 많다. 흠... 식당 배식시간이 또한 칼 같아서 7면 쫑인데..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되돌아온 시간은 6시 43분! 열심히 걸어 식당에 도착하니 52분! 엄머 시간이 남네.  이 짧은 다리로 어찌나 잘 걷는지.. ^^;

일기 다 쓰고 [답사여행의 길잡이] 부여 부분이나 읽을까나? 마곡사 앞에서 사온 인절미를 맛나게 먹으며~ ㅋㅋ 이틀, 최선을 다해 논 보람이 팍팍 느껴지는 저녁이다. 역시 최선을 다 한다는 건 뿌듯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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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리치는통계] 102등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겨레 제619호 13쪽)

‘행복은 경제(성적) 순이 아니’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래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늘 화제에 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들 ‘행복’에 굶주려 있어서일까,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도대체 믿기지 않은 낯선 얘기로만 들려서일까?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7월12일치에 보도된 신경제학재단(NEF)의 나라별 ‘행복지수’는 경제 수준과 사람들의 행복은 무관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더 보태고 있다. NEF는 1986년 설립된 영국의 연구기관으로 경제·환경·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는 깃발을 내걸고 있다.

NEF의 나라별 행복지수에서 1위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천달러 안팎이라고 한다. 콜롬비아(2위)와 코스타리카(3위), 쿠바(6위) 등 중남미 국가들이 10위 안에 여덟 나라나 포함된 것도 이채롭다. 178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102위로 나타났고, ‘선진7개국’(G7)에 드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각각 108위, 128위, 150위로 낮았다. 중국은 31위였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과 싱가포르도 110위권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경제 수준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듯하다.

NEF의 행복지수는 나라별 평균 수명에 생활만족 지수를 곱한 뒤 이를 다시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인구를 유지하고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토지 면적)으로 나눠 산출한 것으로, 한 나라가 주민의 건강과 생활 만족을 위해 자원을 얼마나 적절하게 쓰고 있는지를 뜻한다. 소득이 높고 평균 수명이 길더라도 에너지 소비가 많고 환경 파괴가 심한 나라의 순위는 낮게 나타난다. 물론 주관적인 생활 만족도 또한 영향을 많이 끼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올라갈까, 내려갈까?


2006-07-24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는 낮에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저녁 샤워를 하고나니 시원한 맥주 한 캔이 그리워졌다. 방짝지샘이 내미는 과자와 참외가 '안주'스러워서 갑자기 더 땡겼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근처를 뺑뺑 돌며 가게를 찾다가 터미널까지 가서 캔 세 개랑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위한 음료 두 병을 사가지고 돌아온 시간이 10:30 집에 안 내려간 옆방 샘들께 음료랑 맥주를 내밀었더니 우리 방으로 오셨다.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내려가는 바람에 무섭다는 지리과의 '귀여운' 샘 한 분도 올라와서 다섯 명이 되었다. 홀짝홀짝 한 캔을 거의 다 비웠을 즈음 샘들에 대한 이런 저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9반에 전학왔다가 그 반 아이들의 '위장전입'신고 때문에 결국 다시 그 학교로 재전입하게 된 '난ㅇ'가 다니는 학교의 지구과학 샘도 있었다. 우와!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죄짓고는 정말 못 살겠다. 인간관계에 좀 신경 써야겠다.  강원도 삼척의 물리샘은 다니던 태권도 학원의 사범과 결혼하여 임신 5개월 중이었고, 활달한 지리샘은 방친구샘과 같은 울산에서 왔단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시계를 보니 12:30! 샘들이 다 돌아간 후 방짝지샘이 아까부터 미뤄왔던 무서운 이야기를 단 한 마디로 해주었다. "이 건물 옥상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에요~~" 흠 --;;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남잔지 여잔지, 언제 그랬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잠들었다. 이 건물... open한 지 얼마 안 된다.

평소에도 잘 자지만 알코올 들어가면 거의 시체수준이라 눈을 뜨니 8시 5분. 8시 반까지 아침준다는데... 얼렁 씻고 나와 시계를 보니 27분. 평소에도 아침 굶는데 포기할까? 하는데 방짝지샘이 벌떡 일어나더니 밥 먹으러 간다며 나가신다. 어라~ 지금 가도 되나보네. 스킨로션만 바르고 머리를 산발한 채로 부랴부랴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구과학 샘 만났다. ^^; 배식을 하고 자리에 앉는데 물리샘도 그제서야...

방으로 올라와 준비해서 바로 나섰다. 흠.. 공주시 시티투어 대기자 명단에 1순위로 이름을 올려두었으니 어쩌면 내일 공주는 다 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뭘하나?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까나? 어떻게? 시내버스타고!! 공주대학교 앞에는 유일하게 8번 버스만 다닌다. 마침 8번 버스 한 대가 휘익 지나간다. 편의점에 들러 '한겨레 신문'을 찾았지만 없다. --; '한겨레21'을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안온다. 기다렸다. 흠... 지겹게 안온다. 기다렸다. 시외버스터미널 앞 정류소로 걸어갔으면 벌써 버스 탔겠다. 기다렸다. 안.온.다. 오기가 슬슬 생기기 시작한다. 버스 기다릴 때 내 슬데없는 오기는 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20분~30분을 더 기다리기도 하는 무모함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정말 쓸데없는 오기지만 나는 기.다.렸.다. 10시 30분!! 버스를 타면서 기사아저씨게 여쭤봤더니 학기 중에는 20분마다 한 대씩 운행하지만 방학 때는 40분에 한 대씩 다닌단다. 너무해요~~. 

자리에 앉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하니 좋다. 공주대교를 건너 시내쪽으로 갔다가 시청쪽으로 갔다가.. 삥 돌아 다시 공산성 연문 앞을 돌아나와 다시 시내쪽.. 공주대교를 건너고 내가 공주대 비전하우스 앞에 내린 시간은  11시. 버스 기다린 시간은 40분인데 버스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 시간이 30분이다. 헐~~ 적어도 한 시간은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비전하우스 뒤 산책로 벤치에 앉아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설렁설렁 읽었다. 12시에 점심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다가 방짝지샘을 만났다. 걸어서 무령왕릉까지 갈거라고 했더니 자기 차로 같이 가잔다. 나야 좋지요~~ 가는 길에 샘도, 나도 가벼운 티 하나씩 사고 무령왕릉과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섬세한 공예품들. 책을 조금 읽고 와서 그런지 눈에 쏙~ 들어왔다. 거리도 유적지도 박물관도 모두 어찌나 조용하고 한적하고 깨끗한지 늘 번잡스러운 부산에서는 꿈도 못 꿀 분위기다. 짝지샘이 내친김에 갑사 앞에 가서 파전에 동동주나 한 잔? 나야 정말 좋지요~~

지도를 못 읽는 나 때문에 겨우겨우 갑사를 찾아갔다. 5시에 도착! 앗 입장료가 쓸데없이 너무 비싸다. 7시이후로는 이 사람들 퇴근한단다. 파전이랑 동동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6시 30분쯤 가벼운 산책을 하며 매표소 앞에서 7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뎌 그들이 퇴근하고 우리는 무사통과! 뉘엿뉘엿 지는 해에 싱싱하게 잘 자란 키 큰 나무들. 대웅전 근처를 돌아보고 그 유명한 보물 256호와 257호인 부도와 철재당간지주를 보고.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통해 슬슬 내려왔다. 해진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몰아 귀가한 시간 8시 30분~~ 정말 알차게 잘 논 하루였다. 내일도 잘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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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7-2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 혹시 룸페이트 샘은 음주운전을??

해콩 2006-07-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지 샘은 거의 안 마시구요... 저만 벌개져서는 부끄러웠어요~ 홍홍홍 *^^*

sooninara 2006-07-2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셨네요. 공주는 친정아버님 고향쪽인데도..
안가게 되네요. 아이들 데리고 탐사여행 가야할텐데..
잘 읽고 갑니다.^^

해콩 2006-07-2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 좋은 곳
1. 무령왕릉
2. 국립공주박물관
3. 공산성 걸어서 한 바퀴
4. 우금티 동학혁명군위령탑
5. 갑사/신원사/동학사를 아우르는 계룡산 자락
6. 마곡사
이 정도밖에 못 가봤어요. 신원사, 동학사, 계룡산도 못 가봤지만... 유명하니까.ㅋㅋ
오시면 일단 공산성 매표소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공주관광지도를 얻으신 후에 움직이시면 좋아요. 거기에 다~~ 나와있더라니까요.
갑사는 시내버스 2번을, 마곡사는 7번을 타시면 좋구요, 공주시내를 한바퀴 슬쩍 둘러보거나, 우금티 동학혁명군위령탑, 무령왕릉, 공주박물관, 곰나루솔밭을 둘러보시려면 8번을 타는 것이 좋더군요. 참참!! 버스가 자주 안 와요. 배차간격이 기본 40분은 되는 듯. --; '백제'에 오셨다 생각하고 시간의 흐름을 즐기게 되면 그 '기다림'도 별 것 아니던걸요. ^^
 

백제 왕궁터에서 찾은 화장실

 

 

왕궁리유적은 고속도로 익산 I.C에서 익산 시내로 들어가다가 금마면 소재지에서 좌측 전주방향으로 약 1km 지점에 있습니다. 이 유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왕궁터로 알려져 왔던 곳이며 조선시대 기록에도 고대 왕궁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고조선의 箕準王이 남으로 내려와서 세운 도읍성이라는 학설부터 마한시대의 왕궁터, 또는 백제시대의 왕궁터, 그리고 백제 멸망 이후에 후백제 견훤이 쌓은 궁성터라는 학설까지 다양하게 알려져 있던 곳입니다. 

 

이 유적은 지난 70년대에 처음 발굴된 이후 1989년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매년 발굴을 계속하여 지금은 약2/3가량이 발굴되면서 점차 베일에 가려진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왕궁리 유적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오층탑 주변부를 조사했는데, 조사 결과 탑의 북편으로 금당지와 강당지가 확인되었고 여기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토대로 이 사찰은 ‘官宮寺’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무열왕조 661년도 기록에는 ‘금마 大官寺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해 넘쳐 五步를 적시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발견된 명문기와 중에는 ‘大官官寺’ 라는 명칭도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이 절이 바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관사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왕궁성은 왕궁리유적의 외곽에 남북이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성벽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이 성벽은 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돌을 바깥면에 맞추어 쌓고 그 내부에는 단단한 흙과 돌을 섞어 채워 넣었으며 무너져 내린 윗면에는 기와편들이 덮여진 것으로 보아 원래는 상부에 기와지붕과 같은 시설을 한 궁성의 담장과 같은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궁성은 평면상으로 보면 동서폭이 약 250m이고 남북길이가 약 500m 로서 한 변 길이가 약250m 되는 정사각형 2개를 합한 구조이며, 발굴 결과 그 내부에일정한 비례를 적용하여 건물과 축대 등을 배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궁성의 모양이 직사각형이고 궁성의 설계에 일정한 비례를 적용하였다는 것인데 이러한 예는 같은 시기 우리나라 삼국시대 궁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중국의 漢代 長安城이나 北魏代의 洛陽城과 같은 경우에 그 모양과 비례상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당시 문화의 흐름으로 보아 중국 도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한 왕궁성의 남성벽에는 궁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지가 세 곳이 확인되었는데 이중 중앙문을 따라 들어가면 현재 탑이 서 있는 부분에 도달합니다. 즉 탑을 포함한 사찰터가 왕궁의 중심터였다는 얘긴데요, 발굴 결과 사찰건물지보다는 왕궁 건물지가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사찰이 있었던 곳에는 먼저 왕궁 건물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결국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이나 발굴된 유구(인공 흔적이 있는 구조물이나 잔해물) 자료를 종합해 볼 때 백제 무왕대에 먼저 여기에 왕궁이 들어서고 얼마 있다가 왕궁이 폐쇄되고 그 기능을 다한 후 다시 백제 말경에 절터로 그 성격이 변해 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3년도에 발굴 도중 재미있는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백제 당시에 사용되었던 화장실이 발굴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동안 잘 알 수 없었던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의 실체를 잘 알 수 있었고 그 내부 퇴적토를 분석하여 백제인들의 식생활과 질병 등과 관련된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발견 경위를 살펴보면, 왕궁성 내부의 서북편 일대는 평평한 대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발굴결과 여기서는 금 은 유리 제품 등을 만들던 공방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공방의 남쪽에 인접하여서 동서방향으로 큰 배수시설이 있는데 화장실은 이 배수로 남쪽 가까이서 배수로와 나란히 3기가 확인되었습니다. 그 구조는 제일 큰 것이 깊이 약3m, 폭 약1.8m, 길이 약10m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좌우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올려 지상에서는 간단한 구조의 화장실 건물로 결구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장실은 내부에서 채취한 퇴적토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여기서 회충, 편충, 간흡충과 같은 기생충 알을 다량 확인하고, 또한 퇴적토에서 당시에 뒤처리용으로 사용되었던 나무막대기를 확인함으로써 그 성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화장실은 어깨 부분에 작은 배수로가 있어서 오물이 어느 정도 차면 배수로를 통해 오수가 처리되는 즉, 오늘날의 정화조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어 간단한 구조이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고안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이러한 화장실이 발견된 예가 거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우리와 유사한 이러한 화장실 유구가 상당히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후쿠오카에 있는 고로칸()유적에서는 8세기경의 화장실이 발견되어 좋은 비교례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그동안 부여 관북리 등에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손잡이 달린 개인용 변기가 나온 예가 있기 때문에 이로 보아 왕궁리 화장실은 아마도 공방생활을 하던 당시 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공동화장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근 이러한 매장문화재를 주로 연구하는 고고학은 진일보하여 단순히 토기나 기와 등의 유물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토양분석이나 유기물분석 또는 인골의 DNA 분석 등 다양한 자연과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대인들의 생활패턴이나 당시의 환경, 그리고 고대 문화 형성 및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얻어내고 있어서 고대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흥미있는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입니다.

 


글쓴이 :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학예연구관 실장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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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란히 보면서 얘기하고 좋겠어요^^

해콩 2006-07-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냄새는 좀 나겠죠? 그렇지만 뭐 어때요, 피차간에 얼굴 드러내 듯 엉덩이도 공개한 마당에. 그 냄새도 내꺼 네꺼 나눌 수 없을테니 구수할 수도 있을 듯...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