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찌감치 버스정류소에 앉았다. 어제처럼 40분을 내쳐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어제 산 [헌겨레21]을 느긋하게 읽으며. 기사아저씨께 우금티 전적비 근처에서 내려주십사 부탁하고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어제 빵 먹느라 미처 보지 못한 여러 풍경이 스친다. '동학혁명군위령비'는 버스정류소에서 생각보다 멀었다. 야트마한 고개 위에 하얀 탑이 삐죽 보였다.  그 옆으로 지도에는 없는 터널이 뚫려있고 그 앞로도 한창 도로확장 공사 중이었다. 대한민국은 온통 '도로공사' 투성이군 투덜거리며 자갈길을 성큼성큼 올랐다.

73년 천주교에서 사업을 주관하면서 박정희를 명예회장(직함은 정확하게 생각나질 않네.. 흠--;)으로 위촉,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 세운 비라 하였다. 동학혁명 정신을 등에 엎고 싶었을 그의 얇팍한 계산이 웃기지도 않았다.  위령비에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 비슷한 표현이 두어 번 보인다. 아니다. 이젠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뭉개버렸다.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5,16'이라는 숫자도 가까이 가서 째려봐야 보인다. ㅋㅋ

노랗고 까만 이름 모를 새들이 독특하게 울어주던 뒷 숲은 음산했다. 축축했고 우울했다. 백여 년 전 이 곳엔 악착같이 싸우다 일제에게 빌려온 화승총에 쓰러져간 시체들이 쌓이고 쌓였을거다. 이 곳 뿐만이 아니었겠지. [답사여행의 길잡이]에 '결국 참패한 농민군의 시신이 골을 메운 바람에 이름이 붙게 된 송장배미 등의 전적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기록도 있다. '그때 관군의 좌선봉장은 다음과 같이 농민군의 처절한 전투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 수만이나 되는 비도가 사오십 리에 걸쳐 길을 쟁탈하고 산봉우리를 점거한 뒤,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에서 밀려들고 좌에서 번쩍 우에서 번쩍 하면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앞을 다투어 올라오니, 도대제 저들은 무슨 의리, 무슨 담략을 지녔기에 저리할 수 있는 것일까?"' 불과 백여 년 전에 이 곳에서 그런 죽음이 있었던 거다. 지금은... 지금은... 민중들의 삶이 조금 나아진 세상이 된 걸까? NEF-신경제학재단에서 측정한 나라별 '행복지수'가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실렸는데, 전체 178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102위를 했단다. 주1)  --;

버스 시간을 계산해보니 11시 30분쯤에 다시 정류소로 가면 될 것 같았다. 30분쯤 책을 읽고 일어서 위령탑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잰 걸음으로 고개를 내려왔다. 45분쯤 버스에 오르자마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공주시티투어 안내원이었다. 지난 금요일 오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었었다 . 지금 시청에 있는데 올 수 있겠느냐고. 어제 박물과, 무령왕릉을 다 돌아보기도 했고,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뭔 도자기 체험, 판소리 체험, 이 딴거 하기도 쑥스러울 것 같아 '됐습니다'했다.

버스가 어제 돌던 코스와는 달리 움직인다. 어제는 연문 앞에서 회차했는데 오늘은 연문 사이를 통과하여 무령왕릉, 박물관을 거쳐 곰나루 관광지의 웅비탑앞에서 돌아가네. 같이 연수받는 샘들에게 이 유용한 정보를 꼭 알려주어야겠다. "자동차 없이도 무령왕릉, 박물관 갈 수 있어요~" 아침에 비젼하우스 앞에서 같이 버스를 탔던 꼬맹이 네 녀석이 물에 젖은 채 버스에 올랐다. 강에서 물장구라도 친걸까? 오는 길에 버스정류소 안내판에 2번 갑사, 7번 마곡사 라고 적힌 걸 봤다. 앗! 이런 훌륭한 정보를!! 라식수술이 진가를 발휘하네. 점심 먹고 마곡사나 가볼까?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서 EBS 다큐멘터리와 일요시네마를 보고 움직일까 했는데 이미 다른 사람들이 채널을 선점해버렸다. 바로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간식거리를 사면서 물어봤더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7번을 탈 수 있단다. 배차간격이 만만치 않을거니까 정류소에 죽치고 앉아 책을 꺼내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2시 10분에 차를 탔다. 어라, 차비가 시내버스 요금이랑 같다. 950원!! 공짜다, 공짜! 30분 뒤 마곡사 앞에 도착했다. 가게 아주머니께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여쭤봤더니 3시 4시 5시 6시20분.... 이고 마지막 차도 9시쯤에 있다했다. 저녁먹을 시간에 돌아가려면 6시 20분차는 간당간당하겠는걸.. 시간은 많다.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겠다.

절 입구에 전통빗을 파는 가게가 있다.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들어갔는데...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그 빗에 마음이 끌려버렸다. 거금 들여 엄마꺼 샀다. 그러니 괜히 올케랑 언니가 맘 쓰여 싼 것으로 두 개를 더 샀다. 수업자료로 쓰면 좋겠다 싶어 문자화(한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 맞나?)엽서와 민화 엽서. 모두 오만원어치다. 내일 계좌로 넣어드려야한다. --;; 나와서는 인절미도 샀다. 떡순이가 떡가게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삼천 원.

어제 갑사에서도 그랬는데 이곳도 템플스테이 체험 온 아이들로 '고즈넉하고 한적한 사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중 속으로 들어오려는 건지, 민중의 자본을 끌어내려는 건지 헷갈리지만 뭐 판단하지 말아야지. 내가 그럴 주제도 못되고. 지나치게 깨끗하고 단정하다. 뭔가 불편하다. 큰조카 녀석 6살 먹은 해에 가족들과 한 번 왔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자본의 '힘'일까? 강산 한 번 변할 유장한 시간 흘렀으니 절집이라고 남아나겠는가마는...

용기가 없어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에 들어섰다. 그저 가만히 앉아 이리 저리 둘러보고 책에 나와있는 문화재를 확인했다. 대광보전 바닥에 130여년 전 어느  앉은뱅이 신자가 짠 참나무껍질 자리가 깔려있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천으로 만든 자리네? 살짝 들춰보니 다행이 세월이 느껴지는 그 참나무껍질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아~ 본존불 비로자나 부처님은 황금색 찬란하셨다. 영산전 부처님들 도금?을 다시 하기 위해 '정성'을 한창 모으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이 비로자나 부처님도 얼마 전에 황금옷을 새로 갈아입으셨나보다. 부처님의 금빛찬란함과 신자들의 신심은 비례하는 걸까? 새 옷을 입혀드리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되기도 한다.

6시에 정류소에 도착! 버스는 칼처럼 6시 20분에 출발했다. 예상밖에 승객이 꽤 많다. 흠... 식당 배식시간이 또한 칼 같아서 7면 쫑인데..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되돌아온 시간은 6시 43분! 열심히 걸어 식당에 도착하니 52분! 엄머 시간이 남네.  이 짧은 다리로 어찌나 잘 걷는지.. ^^;

일기 다 쓰고 [답사여행의 길잡이] 부여 부분이나 읽을까나? 마곡사 앞에서 사온 인절미를 맛나게 먹으며~ ㅋㅋ 이틀, 최선을 다해 논 보람이 팍팍 느껴지는 저녁이다. 역시 최선을 다 한다는 건 뿌듯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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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리치는통계] 102등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겨레 제619호 13쪽)

‘행복은 경제(성적) 순이 아니’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래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늘 화제에 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들 ‘행복’에 굶주려 있어서일까,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도대체 믿기지 않은 낯선 얘기로만 들려서일까?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7월12일치에 보도된 신경제학재단(NEF)의 나라별 ‘행복지수’는 경제 수준과 사람들의 행복은 무관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더 보태고 있다. NEF는 1986년 설립된 영국의 연구기관으로 경제·환경·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는 깃발을 내걸고 있다.

NEF의 나라별 행복지수에서 1위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천달러 안팎이라고 한다. 콜롬비아(2위)와 코스타리카(3위), 쿠바(6위) 등 중남미 국가들이 10위 안에 여덟 나라나 포함된 것도 이채롭다. 178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102위로 나타났고, ‘선진7개국’(G7)에 드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각각 108위, 128위, 150위로 낮았다. 중국은 31위였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과 싱가포르도 110위권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경제 수준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듯하다.

NEF의 행복지수는 나라별 평균 수명에 생활만족 지수를 곱한 뒤 이를 다시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인구를 유지하고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토지 면적)으로 나눠 산출한 것으로, 한 나라가 주민의 건강과 생활 만족을 위해 자원을 얼마나 적절하게 쓰고 있는지를 뜻한다. 소득이 높고 평균 수명이 길더라도 에너지 소비가 많고 환경 파괴가 심한 나라의 순위는 낮게 나타난다. 물론 주관적인 생활 만족도 또한 영향을 많이 끼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올라갈까, 내려갈까?


2006-07-24 0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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