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禁食을 해야겠다.

요즘 내게 남은 욕망이라곤  '식욕'이 유일한 것 같다. 먹어댄다. 살이 찌는 게 문제가 아니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마뜩찮다. 한 달에 한 번은 종일 굶어봐야겠다. 몸의 허기로 마음의 허기를 잊을 수 있을까? 무슨 짓을 해도 배부른 자의 헛짓 같이 느껴지는 죄스러움을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지만...

 

내일부터 한 가지씩 아이들이 내게 남기는 '흔적'을 기록해야겠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아이들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간 잊어버리겠다. 묶어둘 빌미가 필요하다.

사실 며칠 전엔 ㅈ모를 등교길에 만났다. 여름방학 후, 녀석이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 아이가 머리카락에 손 대면 가만히 안둔다고 해서 두발검사가 있는 날이면 결석을 한단다. 어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해주신다나? 졸업하면 뭐할건데? 했더니 처음엔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그거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아냐? 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아이들은 졸업 후 할 일이 궁하면 '농사 짓겠다'는 무책임한 말을 잘 뱉아낸다. 암튼.... 그 말 대신 내가 해준 말이라고는 틀에 박힌 애매한 잔소리... 한심했다. 하지만 그 후론 얼마간 생각해보았는데 뭐 딱히 내가 따로 해줄 말도 생각나질 않는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목요일, 7명의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빠지겠다고 했다. 대부분이 아파서였다. 그 중 네 명은 우리 반 반장을 포함해 녀석과 친한 세 명이었다. 솔직히 의심스러웠다. 한꺼번에 달려와 동시에 생리통이란다. 특히 ㄷ원이는 성실한 녀석은 아니다. 그래서 부모님 확인을 강요했더니 울먹이기까지 했다. 나중 한 녀석은 어머니도 의심한다고 투덜투덜... 내 잘못이다. ㄷ원이 말이 맞다. 같은 날 아프지 말란 법이 어디있어요? 에구... 녀석에게 담임의 입장에 관한 궁색한 변명따위나 늘어놓다니 부끄럽다. 뒷날까지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방학숙제 - self camera로 하루 일과 찍어보기-해온 데 대한 상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받고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안한다. 물론 인사는 평소에도 잘 안하기 때문에 조퇴 의심한 데 대한 앙심의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난 너무 소심-세심하다. 이런...

암튼... 이런 저런 일들로... 아이들로 인해 일렁이는 나의 마음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이건 대단한 노동이 될텐데 감당할 수 있으려나...

이것들이 오늘 내가 느닷없이 한 결심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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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9-1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선생님이란 참 힘든직업인거 같아요..제가 집에서 애들을 키워봐도 그렇고 애들친구가 와도 애매할때가 많은데 다큰녀석들을 어떻게 감당하시는지 늘 존경스럽답니다..어렸을적에 선생님을 꿈꾼적이 있었지요..하지만 애들키우면서 제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자신을 깨닫고는 정말 선생님 안하길 잘했다 싶었어요.ㅎㅎㅎ

프레이야 2006-09-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이 허기져 먹을 걸 입에 달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요.. 그리고 해콩님은 참 좋은 선생님인 것 같아요. 아이들 마음 관리하기 정말 힘들죠..

해콩 2006-09-1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터님, 혜경님.. 안녕하시죠? ^^
내친 김에 오늘 당장 하루를 굶어봐? 생각하다가 다음주 월요일로 미뤘어요. 생리중이라 약간 어지럽고 몸이 다소 가라앉은 상태거든요. 교사도 아이들처럼 생리 휴가를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데 감히 그걸 쓰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네요. 학교는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데 말이요. ㅋㅋ 이제 가을이라 마음은 점점 더 허기질 것이고 먹을 것은 쏟아져 나올텐데... 이 가을에 무모하게 금식 결심을 하다니. 그렇지만 하루쯤 굶는 것,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쵸? 보기보다 제가 독한 구석이 있어놔서리..ㅋㅋ

아이들 마음 보듬는 건.. 정말 힘들죠. 제 마음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데요.. 그렇지만 길지 않지만 제 경험으로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 아이들쪽이 더 너그러웠던 것 같아요. 뭔가 잘못했을 때, 바로 "미안. 샘이 잘못-실수했다"고 사과하면 늘 받아주거든요. 진정으로 대하면 무관심한 녀석은 있어도 외면하는 녀석은 없답니다. 정말이예요~ ^^

BRINY 2006-09-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발검사가 있는 날 결석을 한다니, 그 녀석도 참 단세포네요. 재검사는 안한답니까. 오늘 보니까, 금요일날은 근처 학교 축제했다고 야자 출석부에 줄 좌좌작 그어져있고, 오늘은 이틀 놀고 왔는 데다가 날 춥다고 벌써부터 겨울잠 모드로 들어간 아이들-..-

해콩 2006-09-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 단속이 있는 날은 결석하구요, 아침엔 일찍 와서 교문지도 피하구요. 수업시간엔 대충 뻐팅기거나 자구요. 뭐 그런 식이지요. 그 반 담임샘이나 저나 도무지 아이들 헤어스타일에 신경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