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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20년만에 복직하는 해고 노동자 박영제씨가 노동조합건물 자리였던 주차장을 찾아 상념에 잠겨있다. 강선배기자 ksun@
| 박영제(48)씨와 이정식(47)씨는 그 누구보다 특별한 새해를 맞는다. 20대 청년 시절에 쫓겨났던 옛 직장에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꼭 20년만의 일이다. 팔팔했던 청년 노동자들은 어느덧 세월에 꺾여 이제 정년을 얼마 안 남긴 '늙은 노동자'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새해 휴무가 끝나는 오는 3일부터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공장으로 복직한다.
지난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옛 대한조선공사에 동기로 입사해 선각부에서 선박틀을 조립했던 두 노동자. 누구보다 성실했던 이들은 입사 6년차인 1986년 8월 해고됐다. 암울했던 시절,노조원보다 회사의 이익에 더 충실했던 노조와 회사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박씨와 이씨는 당시 같은 부서 동료였던 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46·여) 지도위원과 함께 '노조 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유인물 1천여장을 만들어 회사에 뿌렸다. 회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어용 노조의 문제점을 비판한 호소문 형식의 문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은 식당도 없이 탈의실에 쪼그려앉아 너무도 형편없어 '개밥'이라 불리던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등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었다.
회사와 노조가 발칵 뒤집혔다. 회사측과 노조,정보기관의 거센 탄압이 이어졌다. 회사는 '사내에 불온 좌경세력이 은밀히 활동중'이라는 말을 퍼뜨리며 정지작업을 하더니 결국 이들 모두에게 해고통지서를 날렸다. 회사명예를 실추시키고 상사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였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이들은 기꺼이 고난의 길에 맞섰다. 머리띠를 두르고 매일 회사 앞을 찾아 출근투쟁에 나섰다. '부당해고 철회'와 '노조 민주화'를 외치며 1년을 싸웠지만 결과는 무심했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생계를 위해 잠시 보일러공과 용접공으로 전전하던 박씨는 결국 노동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8년말 부산지역노조연합회 상근 사무차장을 시작으로 지난 3월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무국장직을 떠날 때까지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하며 부산지역 노동운동계의 버팀목이 돼왔다.
이씨는 공사 기술을 익혀 그동안 전국의 공사장을 돌며 생계를 이어왔다.
후배 노동자들과 함께 끝이 없을 것 같던 복직투쟁을 벌여오던 이들은 지난 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과 곽재규 조합원의 잇단 희생의 결과로 마침내 그 해 11월 단계적 복직이 결정됐다. 그러나 이 때도 회사측은 김진숙씨만은 절대 못 받아들이겠다고 버텼다.
"두 동지의 죽음으로 일자리를 되찾게 된 것이라 복직이 됐어도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동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현장에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늙은 노동자' 박씨와 이씨는 조심스럽고도 비장하게 다짐했다. 이현우기자 hooree@busa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