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지요, 어머님?
저는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이들, 선생님, 학교 건물.. 여러 가지 새로운 환경들... 며칠 만에 바뀐 환경이 아직은 너무나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어머님께서도 그러시겠지요? 게다가 학년 초는 어찌나 어수선한지 낯선 길을 거쳐 학교를 오가는 일만으로도 다소 긴장감있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ㅇㅇ이 3학년 담임선생님은 참 좋은 선생님이시더군요. 너그러우시고 자상하시지요. ㅇㅇ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잘 품어주실 분이라 'ㅇㅇ이는 복을 타고 났구나'생각 했답니다. 어머님께서도 안심하셔도 될 듯 합니다.
갑작스런 제 편지를 받으시고 놀라실까요? 실은 편지를 쓰는 이 순간도 무척 고민되고 조금은 망설이고 있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당혹스러워하실까....걱정이 많이 되어서이지요.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것이 지난 12월 말이었으니 3개월이나 지난 지금 이런 답장을 드린다는 것이 스스로 우습기도 하거니와 어머님의 진심을 알면서 거절한다는 것이 제게도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보내주신 화장품은 정말 고맙게 잘 쓰고 있답니다. 요즘 부쩍 '요즘 얼굴이 좋네요~' '흠.. 연애하나? 이뻐진 거 같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도 다 어머님 덕분인 듯 합니다. 만약 올해 제가 연애를 하거나 아니면 그것보다 더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그건 모두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화장품 덕분이지요. 제가 워낙 주름잡힌 피부인데 강력한 '기능성 화장품'이 팽팽하게 당겨주니 제 주름도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
그런데 어머님, 그저 소심하고 평범한 교사의 소박한 신념이라 생각하시고 제겐 너무 과분이 이 선물(?)만은 거두어주셨으면 한답니다. 진심만 받겠다고 말씀드리면 너무 식상한 표현이될까요? 다른 선물은 받았으면서 이것만 거부하는 것은 다소 뻔뻔스런 거절이 될까요? 에구... 스스로 헷갈리기도 하고 고민스럽기도 하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제 행동 때문에 행여 어머님, 마음 상하실까 하는 점이랍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제 마음을 잘 알아주셨고, 이해해주셨고 나아가 인정해주셨기에 이번에도 용기를 내봅니다.
정말 작년과 올해, 학부모님들의 진심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 많은 답문자와 편지에 쓰여진 격려와 믿음의 말씀들.. 제겐 잊지 못할 추억이고 쉽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그 힘만으로도 스스로 정한 교사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저희반 아이들 모두에게 세심한 배려와 애정 배풀어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려요. ^^ 너무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요. 그렇지요, 어머님?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2007. 3. 5. ㅇㅇㅇ 드립니다.
* 참, ㅇㅇ이, 수능 시험 본 후에 저를 한 번 찾아와 달라고 전해주셔요. 솔직히 지난 1년,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요구받아서 스트레스가 나름 많았을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맛난 거라도 사주고 싶답니다. 지난 1일 반창회때 안 와서 자장면도 못먹었을테니...
* 책 선물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지만 제가 읽어보니 이 시집은 부담없고 참 좋더라구요. 어머님과 ㅇㅇ이가 가끔 한 편씩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어 보냅니다. 제 소박한 마지막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