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4년 6월호에 실은 글 

어우러짐에 대한 기억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함께 하니 참 좋구나'하고 느꼈던 때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우러짐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대학 1학년 때 갔던 춤 전수다. 1학년 겨울방학에 나는 마당극을 하는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경남 고성으로 춤 전수를 갔었다. 전수회관에는 다른 대학 동아리도 여러 팀이 와서 일주일 동안 함께 고성오광대 춤을 배웠다.


강습 시간엔 사부님한테 더 잘 배우기 위해 자리 경쟁도 하고, 어느 동아리에 누가 더 잘 하는지 곁눈질로 보며 질투도 했다. 그리고 연습할 때나 밥 지어먹을 때 동아리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느라 끼리끼리 경계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서로 얼굴 익히고 말 한마디 건네기 시작하면 경계는 슬그머니 허물어졌다. 누가 더 춤을 잘 추느냐보다는 춤을 배우러 왔다는 '같은' 마음에 누구하고나 쉽게 친하게 됐다.


전수 마지막 날엔 그동안 배운 춤으로 각 동아리마다 공연을 올렸다. 다른 동아리 공연을 보며 웃고 박수 치고 격려하다가도 어느 팀이 더 잘하나 또 경쟁하고… 모든 팀의 공연이 끝나면 모두 둥글게 서서 기본무를 추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일주일을 함께 지낸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춤을 추는 모습,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저마다 자신의 춤에 빠져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모습은 아주 황홀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경계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에 짜릿함을 느꼈다.


그 짜릿한 어우러짐은 동아리 사람들과는 함께 한 많은 일들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마당극을 만드느라 함께 밤을 새면서, 공연을 올리고 관객들과 동아리 사람들과 뒷풀이를 하면서, 여름에 여러 동아리가 모여 농활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함께 어우러졌다. 농활 마지막 날 지역주민들과 잔치를 벌이는 자리도 어우러짐의 묘한 흥겨움이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어느 여름 연극학교에 갔을 때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연극을 배우고 놀면서 또 어우러짐에 푹 빠져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춤 전수에서 처음 느꼈던 그 자연스럽고 신명나는 어우러짐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다시 느끼고 느끼며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순간이 그리워 계속 찾아다닌 건 아닐까? 저마다 흥이 나서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함께 있음을 느끼는 순간,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어우러지는 순간을 말이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 한편에 또렷이 남아 빛나는 참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함께 어우러졌던 사람들은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도 어색하지 않다. 이 글에 쓸 사진을 찾으려고 동아리 사람 몇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전화기 저편의 반가운 목소리들.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며 서로의 마음이 잠시 닿았는데 행복하다. 어우러진 기억과 함께 내 인생에 든든한 지원군 같은 사람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또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겠지? 다시 만나면 또 한판 신나게 어우러져요, 우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ongal 2004-06-2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우러진다는 것. 함께한다는 것...
그건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며 나눌 수 있는 것임을 이글을 읽으며 드는생각이네요..^^
나눔....
어릴적 누군가 내게 주던 사랑...선물들.... 주는것을 덥석 받기만을 고집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무언가를 누구에게 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나눔의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 전에 한 번 글을 실었던 잡지사에서 짧은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했다.

함께 해서 좋은 것에 대해 A4 반 장 분량의 글을 써달라고.

전화를 받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고 지난 주 내내 그것을 품어 글로 뱉어내려고 종종거렸다.

마음 속에 각인된 그 장면은 명확해서 글을 시작했는데 결론 부분이 참 안 맺어져서 애를 먹었다.

기자를 꿈꾸고 글쓰기에 대해 막연히 동경했었는데 글쓰는 일을 조금 현실적으로 보게 됐다.

생각이 무르익지 않아 설익은 밥 같은 글을 보내고 휴~ 한숨을 쉬었다.

느낌대로 생각대로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참 힘들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매력적인 일이다.

이번에 쓴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다음달 호에 실린다.

<작아>는 생각이 맞아 올해부터 구독하는 잡지인데 내 글이 실리게 될 줄이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chim2 2004-06-2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하네 친구..^^

이누아 2004-06-2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원고 청탁을 받으시는구요. 어떤 글인지 궁금하면 잡지를 구독해야만 하는 건가요? 이곳에서 볼 수는 없나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