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화물열차를 타는 것, 그리고 끝은 화물열차에서 내려 새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라 배경은 주로 열차 안이다. 불과 며칠 전 떠난다는 통보를 받고 일주일 정도 생활할 식량과 짐을 챙기라는 것 외에 사람들은 아는게 없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사방에는 널빤지가 대어져 있고 바닥에는 건초가 깔려있는 화물열차는 사람이 아닌 동물을 운반하는 열차였고, 창문도 막아버려 빛이 들어오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열차 벽면에 널빤지를 가로질러 놓아 2층처럼 만든 곳에까지 사람을 태웠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40일 넘게 먹고, 자고, 배설하고,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고향이 어딘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가가 공들여 만든 여러 인물이 있지만, 그 인물들의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들이 섞여들어가 있는데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나와있지 않다. 그렇지만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있는 누구라도 할 법한 말이기 때문이다.
화물열차에 실려가는 상황이 노예선이나 강제수용소를 연상시키고, 기차 안에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인민재판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죽으면 날 버리고 가라고 하는 노인의 말도 서글펐지만 가장 서글픈 것은 이 강제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원래 조선에서도 배가 고파서 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를 했고, 연해주 안에서도 땅을 겨우 일구고 나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었다는 사실이었다. 몇 대에 걸쳐 그렇게 옮기고 옮겨 겨우 터전을 잡았는데, 스탈린은 국경 근처에서 조선인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강제 이주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사실 스탈린은 민족을 넘어서는 단일한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겠다며 고려인 외에도 많은 소수 민족들을 이동시켰다. 비옥한 우크라이나 땅에서 수백만명이 굶어죽게도 만들었으니 고려인만 희생된 것은 아니고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초를 겪었지만, 조선에서 간 사람들이라 그런지 좀더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직접 자세히 접하기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열차를 타고 40여일간 이동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보면서 '디아스포라' 라는 말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인물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는데, 기차에서 내리고 이제 막 희망을 갖고 살아가려고 하는 부분에서 끝나서 조금 아쉬웠다. 워낙 척박한 땅이다보니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긴 하다. 사실 이주 과정보다 거기서 정착하는 부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워낙 멀리 왔으니 말도 잘 안 통하고 사는 것도 많이 달랐을텐데.. 각자의 사연이 있는 인물들도 아까웠는데. 작가는 이들의 이전 삶, 이동 과정에 집중하고자 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주인공격인 금실의 시어머니 소덕이었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아들은 오지 못했고 만삭의 며느리와 함께 기차를 타게 된 소덕은 무명 천을 잘라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각종 씨앗을 담고 그것을 입고 있는 옷에 꿰매두었다. '내가 죽으면 시체는 아무데나 버리더라도 옷은 꼭 벗겨서 가지고 가라' 고 금실에게 말했던 소덕은, 기차가 잠시 멈추었을 때 용변을 보려고 기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타지 못했다.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는데, 여자들은 그럴 수 없어서 벌어진 상황... 지금의 나도 올해 그린란드에서 그랬는데,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지. 그런데 소덕이 중앙아시아에 금실과 함께 도착했다면 그 씨앗들을 심어서 수확할 수 있었을까? 연해주에서 키우던 작물들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에서도 키울 수 있었을까...?
새로 도착한 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고, 또 다른 아기가 잉태된다. 노인들은 오지 못하거나 도착해서 명을 다한다.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희망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소덕과 인설의 인연이 이어지는 상황도 진부했지만, 삶이란 게 원래 되풀이되고 진부한 것이니까. 진부한 것이 오히려 평범한 것이니까.
그러고보니 왜 작가는 제목을 <떠도는 땅>이라고 지었을까. 떠도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