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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5월
평점 :
저번에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읽고 아르헨티나의 'Dirty War'에 대해 찾아보다가, 좋아하는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 혹은 망겔이 Index on Censorship 계간지에 실은 글 journals.sagepub.com/doi/pdf/10.1177/030642209602500523 을 읽었다.
(Index on Censorship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이며 같은 이름의 계간지를 발행한다.)
이 글에서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에서 메넴 대통령이 군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주동자, 책임자들을 사면 pardon 했다가 일 년 뒤 대사면 (혹은 복권) general amnesty 했던 것을 언급했다. 이 글에 따르면 사면 pardon 은 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벌을 경감해주는 것이고, 대사면 amnesty (복권)은 범죄의 혐의를 완전히 지우는 무죄 인정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메넴 대통령의 이와 같은 조처는 군사 정권 하에서 자행된 많은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고, 아르헨티나는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페루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왜 굳이 남의 나라 과거 청산에 말을 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미국 홍보회사가 관여했다고도 한다 (내가 이해한 대로 대충 쓰자면) 페루의 경험에 대해 언급하며 군부만이 당시 상황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당시 책임이 있었던 인물이 현재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등 모두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논리는 어디서 많이 봤던 것이었다. 우리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들- 친일 부역자, 군부독재에 협조했던 자 등 - 그리고 전두환을 사면해준 김대중 대통령도 떠올랐다. 사놓고 안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정아은 작가의 책은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읽었으며, 이후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도 괜찮았다. 내 취향에 비해서는 조금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편이었지만, 작가의 연령이나 주변 상황을 고려해볼 때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렵고, 또 그 시대에 살던 한국 사람으로서 감정이입을 안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 이전 박정희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중요한 사건들에 전두환이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소개하고, 이해하기 힘든 인간 전두환의 내면을 이해해보고자 시도(..) 했다. 또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 내에서 그가 어떤 처분을 받았고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아본다. 왜 전두환은 국가에 반역죄를 저지르고 수많은 민간인을 죽게 만들고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했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에서 과거사 청산이 왜 어려웠는지, 또 어떻게 어려웠는지.. 또 후에 그것을 시도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나름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읽으며 뼈아픈 부분이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의 시작에 있어 치명적인 일이었고 계속 언급되는 일이지만, 과연 이것은 정말 가능한 일인가? 지금처럼 시간이 지나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정치적 명분은 충분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청산을 원하는가?
읽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지만 이런 책이 좋은 책이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책을 더 찾아읽어야겠다.